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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땀 쏟으며 돈 벌면 뭐하냐! 사냥개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김주환 감독. 사냥개들

by 백승권


힘없고 철든 늙은이에게 돈은 자기 앞에서 불쌍한 사람들의 머리를 조아리게 만드는 신의 권능이다. 모든 벽에 가득 찬 돈다발 속에서 몇 장만 건네주어도 불쌍한 사람들은 목숨을 구하고 허기를 채우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눈물을 글썽이며 다시 새로운 삶을 꿈꾼다. 그걸 보고 있자니 늙은이 눈망울에서 꿀이 떨어지고 입가에 꽃이 만개한다. 아이고 천천히 돌려줘도 되는데… 손사래를 치지만 거절할 순 없다. 거래였고 약속이었으며 갚지 않는다고 이제 와서 막대한 피해를 보는 건 아니지만 기분은 좋지 않을 것이다. 늙은이는 평생 이 일을 했고 과거에는 높은 이자로 여럿 보냈다. 명동의 신화다 뭐다 포장지와 구전의 덕을 보고 있지만 그는 자기가 채용한 직원에게 칼에 찔리고 고층 창밖에 던져져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으며 금고 속의 자산을 강탈당했다. 더 나쁜 사채업자에게 배신 당해 죽음의 아가리 속까지 머리를 집어넣야 했던 사채업자였다. 그는 당시의 충격과 공포로 가해자에게 복수는 꿈에도 꾸지 못했다. 뼛속까지 각인된 두려움이란 그런 것이었다. 시간이 지난 들 제대로 걸을 수 없는 휠체어의 다리처럼.


배신자의 횡포는 여전히 드러나지 않는 이들의 존재를 소멸시키고 있었다. 신분증을 훔치고 고액을 대출받고 사기로 유혹해 수백 배의 이자를 뜯어내고 한번 걸리면 죽을 때까지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돈으로 없는 자들의 남은 생을 갈갈이 분쇄하고 있었다. 꾸준히 갚지 않으면 죽거나 부서졌다. 가게가 부서지거나 얼굴이 부서지거나 온몸의 근육과 뼈가 부서졌다. 난세가 (어쩔 수 없이) 히어로를 만든다고 했지만 전투력을 아무리 키워도 다수의 사람을 죽여본 폭력 앞에서는 짓이겨질 뿐이었다. 가족의 인생이 한순간에 날아갔고 복수의 명분은 충분했다. 주먹을 모으고 머리를 모으고 체력을 모으고 의지와 전략을 모은 청년들이 늙은 사채업자 앞에 모인다. 마침내 늙은이는 어둠의 거물이 된 배신자에게 복수의 기회를 본다. 채무를 청산해 주고 과거의 칼잡이들을 모으고 영영 지켜주겠다던 손녀 같은 여성까지 앞세우며 빼앗긴 돈을 되찾기 위해 컨트롤 타워가 된다. 그리고 이 계획에 가담한 대다수가 배신자들과 그 세력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신경이 몰린 신체 부위의 피부를 목공용 기계로 벗기고 소금물로 지지는 고문으로 얻은 정보로 적들의 목을 가르고 아킬레스건을 끊으며 분투했지만 상대은 더 교묘하고 악랄했다. 늙은 사채업자의 복수 플랜은 불타는 집과 난자당한 동료들의 수많은 시체와 함께 실패한다. 가지고 있던 막대한 돈마저 모조리 빼앗긴다. 배신자의 금고는 이제 더 많은 금덩이로 가득 차게 되었다. 청년들은 온몸이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매고 자살 충동에 시달리며 도망치고 숨는다. 여전히 복수에 굶주린 남은 청년들은 다시 일어나 힘을 키우고 체급을 높여 재도전의 의지를 체지방율 제로로 만들 것처럼 불태운다. 여차여차해서 성공은 하지만 그다음 계획이 딱히 없었다. 그래서 이번 건으로 가까워진 재벌에게 모조리 갖다 바친다. 재벌은 웃는다. 아마 땀 흘리며 버는 돈이 이런 거구나 하고 목숨 걸며 실전으로 배우는 비싼 경영 수업받은 셈 칠지도 모른다.


돈(금덩이 포함)의 관점에서 인간들의 아수라장은 별일이다. 빌리고 갚고 모으고 빼앗고 지키고 죽이고 때리고 속이고 불태우고 부수고 욕하고 달려들고 엉키고 피를 쏟고 찢고 레이싱을 벌이고... 돈은 가방에 담기고 박스에 담기고 차에 실리고 손과 손으로 오가며 위치를 바꾼다. 인간들의 모든 폭력은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돈의 위치를 이동시키기 위해 인간들은 서로의 목을 따며 세계를 도살장으로 만든다. 회도 쳐본 사람이 치고 칼도 휘두른 자가 휘두르고 주먹질도 해본 사람이 하듯이 돈 역시 가져본 사람이 가져볼 줄 아는 것 같아서 애초 링에서 상대를 때려눕히는 일에 익숙했던 청년들은 갑자기 되찾은 막대한 금덩이들 앞에서 벌벌 떨다가 소유권을 모조리 포기한다. 늘 빼앗겨봐서 그런지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잘 빼앗긴다. 공익 운운하는 재벌의 농담 앞에서. 돈이 어느 곳으로 가든 누구에게 가든 돈은 아무 말 없다. 돈에게 가치와 사연을 부여한 인간들만 울고 웃고 찌르고 찔리고 죽이고 죽어가며 열심히 칼춤을 춘다. 종교가 마케팅을 실패한 탓인지 현세에는 기존 신들이 신뢰를 잃어서 남은 인간들은 돈에게 신의 자리를 기꺼이 내주고 경배와 찬양, 번제와 고해성사하느라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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