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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버드, 살인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블랙 버드

by 백승권

꿈에서 저는 여자들을 죽이곤 해요.


내 전성기는 태아 때일 거야.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미 위험한 거야.


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에요.


죽을 수는 있지만

살아온 시간을 빼앗을 수는 없어요.


모두 살면서 같은 걸 원하지. 존재감


한 번이라도 자기를 봐주기를

절박하게 바랄 뿐이죠.



래리는 21명을 살해한다. 시체를 매장한 모든 위치를 세세하게 알고 있었다. 지도에 정확히 표시할 만큼. 지미(테런 에저튼)는 그 위치를 알아야 했다. 알아낸 위치를 FBI에 전달하면 마약범죄자 지미의 10년 형량은 지워질 수 있었다. 목숨 건 거래였다. 특유의 친근한 매력으로 다가갈 수 있었지만, 거긴 풀려날 길 없는 중범죄자들이 수감된 감옥이었고 살인과 폭력은 언제든 폭발하듯 터질 수 있었으며 외부와의 연락이 단절된다면 지미의 생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실패하면 죽거나 남은 10년 복역이었고 정보를 알아내는 것만이 유일한 성공이자 살 길이었다.


래리(폴 월터 하우저)는 지미와 이야기하며 자주 웃었다. 살면서 자기 이야기를 들어준 건 형제 한 명뿐이었는데. 지미는 살과 뼈를 뚫고 스미는 공포에 떨며 래리와 대화를 이어간다. 래리의 살해 방식과 지도 위 그려진 매장 위치를 기억한다. 살인은 래리가 세상의 관심을 얻고 귀를 기울이게 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가까운 사람들은 농담과 진실을 구분할 수 없었고 그저 특이하고 무해하다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동네의 여성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들에겐 이름과 얼굴, 가족과 개인의 삶이 있었고 살인은 한 인간과 주변의 모든 걸 무효로 만들었다. 살인자가 된 남성과 그를 키운 윗세대에 의해.


인물과 대화에 집중하던 이야기는 끝을 향하던 어느 순간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들판을 하늘 높이에서 고요히 응시한다. 그곳 수많은 어딘가에 희생자들이 매장되어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얼굴들이 있었고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끝까지 밝혀지지 않은 죄가 묻혀 있었고 여전히 기다리는 마른 눈물이 묻혀 있었다. 래리는 범죄를 부인했고 지금도 수감 중이며 이 이야기는 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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