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시즌 1-4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원제: Sex Education)의 주인공은 수십 명이다. 수십 명의 학생과 교사, 부모들이 각자의 고민을 지니고 있고 해결하지 못해 종종 괴로워하며 그 중간과 입구와 모든 통로와 틈 사이에 섹스가 있다. 섹스는 가장 비중 있는 주인공이다. 등장인물들을 이어주는 관계의 도구이자 목적이며, 자아성찰이자 성장을 위한 과정의 일부, 또는 고민 자체이자 해결책으로 다채롭고 끈끈하게 기능한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는 어떤 등장인물도 소홀히 다루지 않는다. 성욕과 성정체성, 이혼과 자녀의 트라우마, 육아와 아동학대, 마약과 자위, 임신과 경력 단절, 성범죄와 차별, 장애와 비장애, 인정욕구와 가족 내 권력 문제 등 다양한 스펙트럼 속을 다루며 편견과 몰이해를 과감하고 현명하며 참신하고도 따스하게 돌파한다.
그중 메이브의 캐릭터는 가장 심금을 뒤흔든다. 메이브(에마 매키)는 오티스(에이사 버터필드)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위한 조연이 아닌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수렁 같은 성장과 환경의 한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모든 순간 안간힘을 쓴다. 마약중독자 부모 밑에서 가난과 (환경적 정서적) 학대 속에 방치되며 자랐다. 안정적으로 사는 법을 물려받지도 배우지도 못해 일탈은 그저 수순이었다. 가장 외로웠지만 모두를 외면했지만 오티스를 시작으로 조금씩 자신을 알아주는 무리 속에 섞이고 사려 깊은 교사를 만나 인생이 바뀔만한 거대한 기회를 획득한다. 메이브는 교내에서 가장 우수한 지성을 인정받으며 미국 교육 기관으로 건너가 새로운 트레이닝을 겪으며 다양한 한계와 자극, 인정을 마주하게 된다.
메이브에게 동네를 떠난다는 건 그저 거주지가 바뀌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스스로의 능력을 통해 지옥 같은 과거로부터 당당하게 결별할 수 있는 혁명적인 성취였다. 부모가 저지른 최악의 상황에서 그만 벗어나 자신만의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는 최선의 옵션이었다. 하지만 한 줌의 파도도 넘실거리지 않는 순항은 없었다. 메이브는 집보다 먼 곳에서 작가가 될 수 있는 트레이닝을 거치기 위해 오티스와 연애를 시작하자마자 장거리 관계에 봉착하고 오해와 서운함, 말싸움이 겹겹이 쌓이게 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엄마의 사망 소식에 메이브는 돌연 귀향하게 된다. 남자친구가 있지만 벗어나고 싶은 고향이었고 벗어나고 싶지만 일단 엄마의 장례는 치러야 할 상황이었다.
어떻게 떠난 동네인데... 죽은 엄마가 산 자식의 몸뚱이마저 결박하며 삶을 옥죄고 있었다. 메이브는 제정신일 수 없었다. 탈옥을 했다가 다시 붙잡힌 것도 아닌데 세상 모두가 자신의 비극과 슬픔, 불행과 멈춤을 알아야 한다는 듯이 메이브는 다시 일탈과 방종으로 얽힌 생태계로 발을 들이려 한다. 금지된 것들에 다시 손을 뻗고 몸을 들이민다. 유일한게 남은 가족은 엄마 같은 마약중독자가 된 오빠뿐. 그는 기댈 곳이 아닌 짐이자 형벌, 치욕스러운 흉물처럼 굴었다. 메이브의 삶은 마약 중독처럼 다시 오염되고 있었다. 엄마가 그리웠지만 지난 시절은 끔찍했고 여기 남는 것은 메이브 삶에 어떤 비전도 보장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정한 남자친구, 타지에서 인정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등이 덫처럼 메이브의 발목을 휘감고 있었다. 결정적 조언이 필요했고 메이브는 좀 더 위험한 선택을 하기로 한다. 현재의 사랑을 끝내고 과거의 동네를 떠나 미지의 미래로 나아간다. 오티스는 이 결정에 하염없이 절망하고 발광한다.
메이브는 오랜 불안과 싸워야 했다. 등장인물 각각 자신을 둘러싼 유무형의 괴물과 다투고 있었지만 메이브만큼 환경적 결핍이 큰 캐릭터는 드물었다. 그의 가족처럼 당장이라도 마약, 범죄, 감옥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생계와 금전적 수입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해야 하는 게 메이브에게 닥친 가혹한 운명이었다. 이런 메이브에게 글쓰기는 차원이 다른 결핍이었다. 채울 수 있었고 보상과 인정, 비전과 희망이 뒤따라 왔다. 어떤 지도 교수의 무례함도 자기 삶을 바로잡으려는 메이브의 시도를 결박할 수 없었다. 자신을 인정하기 위해 타인의 인정이 필수인 세계였지만 메이브는 재능과 집념을 갖춘 자였고 새로운 작가를 늘 기다리는 출판계에서 가만둘 수 없는 뾰족한 가능성이었다. 메이브는 떠난다. 과거의 부모와 연인이 사는 동네로부터. 메이브는 이제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새로운 궤도에 진입하고 있었다. 메이브의 이야기는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에서 표현한 가장 드라마틱하고 뭉클한 성장 서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