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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세션, 따스한 인간미 가득한 중산층 가족 이야기

HBO 석세션

by 백승권

따스함 없다. 인간미 없다. 중산층 아니다. 가족? 가족이라... 가족이긴 하다. 상황이 불리해져 궁지에 몰리면 그때서야 살려고 발버둥 치며 우리는 가족이야!!라고 고함치니까. 따라서 이 글의 제목은 거짓말이다. 웨이스타 패밀리의 대화 스타일을 따라 했다. 아빠, 첫째, 둘째, 셋째, 넷째 그리고 나머지. 나머지는 대체품이다. 사람이긴 한데 대체되었거나 언제든 대체될 예정인 지위들. 사위, 비서, 아무도 어머니로 부르지 않는 새 아내, 사내 임원들 등등 글로벌 미디어 그룹 웨이스타 회장 로이의 눈밖에 나면 즉시 아웃이다.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초긴장 상태를 24시간 유지한다. 자식들은 다른가. 아니 자식들은 더하다. 자식들은 마치 회장 로건 로이를 반건조시켜서 다섯 조각으로 찢어놓은 모양 같다. 로이는 80대에도 전무후무한 영향력이 건재한 노련하고 영악한 미디어 재벌의 아이콘이지만 인종차별, 여성혐오 등 인간성은 처참하다. 자식들은 그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자 다섯 개 버전이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어디 한두 군데 정도 부족하기 마련이고 이를 상쇄하기 위해 다른 노력을 기울이는데 이들은 각자의 모자람을 넘치는 부를 통해 극대화시켰다. 뭐가 모자라던 알아서 방치되었고 상처를 안고 있지만 그걸 자신조차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로이는 넘치는 부유함을 물려주었지만 한없이 말 안 듣고 짖어대는 자식들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었다. 짓누르고 증오했고 자기 자릴 넘볼까 봐 모든 순간 경계했다. 건강이 악화되어 사무실에서 갑자기 오줌을 쏟고 사람을 갑자기 못 알아보거나 걷지도 못할 정도가 되자 승계를 위한 탐색을 시작하지만 경쟁 구도만 가중시킬 뿐 그는 한 번도 자기 자리에 대한 공석을 허용하지 않는다.


첫째 아들은 회사 경영과 가장 거리가 있다. 나이차 많은 연하 여성과 사귀다가 미국 대통령을 꿈꾼다. 가족과 주변인 누구도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가장 현실감각이 없어 가족 내에서 가장 무시당한다. 둘째 아들은 자신이 웨이스타 미디어 그룹의 차기 회장이라고 확신한다. 외형적으로는 로건 로이 회장이 신임하는 듯 보이고 이는 라이벌 구도로 확대된다. 로건 로이는 둘째 아들의 야망과 권력 찬탈 시도를 철저하게 차단한다. 과거 계열사 유람선에서 벌어진 집단 성추행 및 사망 사건으로 재판정에 서게 되고 둘째는 아버지를 순발력 있는 언변으로 비호한다. 하지만 곧 아버지의 최대 적수가 된다. 법과 외부 자본의 힘을 끌어들여 가족을 분열시키고 회사를 차지하려는 야망을 끝까지 몰아붙인다. 하지만 그는 심각한 마약중독자이고 조울증에 시달리며 충동과 이성이 삐걱거리며 작동한다. 살인사건에 연루되고 이는 그의 플랜과 인생에 최대 약점이 된다. 그리고 아버지 로건 로이는 이 약점을 처절하게 악용한다. 셋째 아들은 뭐랄까. 남매들 중 가장 외모가 뛰어나고 인성이 쓰레기이며 성불구가 의심된다. 첫째 아들처럼 성매매 종사자와 연인처럼 다니고 회사 여성 임원에게 중대한 미팅 중 자기 성기 사진을 보내고 새로 갖게 된 사무실에 감탄하며 유리벽에 자위를 하는 열등감 가득한 성도착자다. 종종 어려운 계약을 이끌어 내며 아버지 눈에 들기도 하지만 눈치 없이 때와 장소 안 가리고 음담패설 헛소리만 지껄이다가 주둥이를 쳐 맞기도 한다. 그의 개소리는 신분과 성역을 가리지 않는다. 넷째 딸은 킹메이커다. 미국의 다음 대권을 이을 유력 후보를 보좌하다가 능력을 인정받아 반대쪽 진보 진영 대권 후보의 2인자로 스카웃되기도 한다. 현실감각, 상황판단력,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남매들 중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로이 회장 관점에서 넷째의 단점은 성별이다. 뼛속 깊이 성차별 인종차별주의자인 로이 회장에게 여성이라는 성별은 위기관리 과정에서 전략적 장치나 도구가 될 수 있으나 결코 자신을 이어 그룹을 운영할 권력자의 자격이 아니다. 하지만 로이 회장은 딸의 광기에 가까운 권력욕을 알고 있고 이를 야비하게 활용하면서도 최후의 자리를 절대 내어주지 않는다. 넷째는 후계자 다툼 과정에서 남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린다. 아버지와 오빠들은 이 결혼이 진심이나 사랑이 아닌 자신보다 낮은 지위의 이성을 컨트롤하기 위한 것이라고 간파한다. 당사자 역시 결혼 후에도 타자와 ‘자연스러운’ 자유연애 및 섹스를 하자고 남편에게 제안한다. 넷째의 남편이자 로이 가의 유일한 사위인 그는 아무 말 못 한다. 아내는 재벌 회장 후보이고 자신 역시 그 덕으로 능력과 별개로 한 자리 차지하고 있어서.


HBO 석세션은 이들이 뒤엉켜 온갖 오물을 뱉고 삼키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서로를 죽이려고 난리를 치는 가슴 뭉클해지는 감동 대서사시 휴먼 드라마다. 웨이스터 집안을 풍비박산 내는 아빠와 남매들 외에도 다양한 주변인들이 각자에 욕망을 한없이 내뿜으며 더러운 지옥의 행진을 이어나간다. 자신을 증오하는 만큼 서로를 한없이 증오하고 모두가 공격받을 때는 하나로 뭉치는 척 기꺼이 연기에 동참하며 상황이 급변하면 유리해지기 위해 편을 가르고 계략을 짠다. 이들이 서로 싸우지 않아도 올드 매체가 된 TV 중심의 미디어 재벌의 적들은 차고 넘친다. 진보 진영 경쟁언론사를 인수하려다 위기관리 실패로 최종 결렬 되기도 하고 젊은 대표가 만들어 폭발적으로 성장한 디지털 뉴 미디어 회사에 인수될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이는 웨이스타 남매들의 경영권 승계 다툼이 한순간에 무의미한 전쟁으로 바뀔 수도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서로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을 때 로이 회장은 자신의 음식을 손자에게 먼저 먹인다. 아들이 자신을 독살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들의 세계 안에서 보이는 것은 그들뿐이다. 헬기로 주로 이동하기 때문에 대중과 멀기 때문이다. 거대한 우물 안에 갇혀 서로에게 돌을 던진다. 누구도 자신은 물론 타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아서. 그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자신을 혐오하고 이로 인해 생긴 공허를 타자를 향한 지독한 멸시로 채운다는 점이다. 그렇게 매번 서로를 공격하고 물어뜯는다. 너는 사랑받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우리는 모두 알고 있고 가장 고통스럽겠지만 영영 후벼 파며 괴롭힐 거라고. 남매들 중 가장 비중 있게 등장하는 둘째가 처음부터 끝까지 대부의 마이클 꼴레오네(알 파치노)와 외형이 겹쳐 보였다. (원본과 다르게) 시간 여행을 잘못해서 계획과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나 평생 불운해 보이는 초등학생 저학년 남자아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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