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 감독. 디피 시즌2
군대를 아무리 지옥이라고 부르짖어도 내일 당장 누군가는 입소해야 한다. 회사와 학교를 아무리 지옥이라고 부르짖어도 내일 당장 누군가는 가야 하듯이. 현실을 넷플릭스가 대신 플레이해 줄 수는 없다. 넷플릭스 본사가 대한민국 정부와 거래해서 국방부를 후한 가격에 즉시 구매한 후 완전 해체하더라도 시일이 걸릴 뿐더러 군복무 의무가 같이 사라질지 알 수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디피는 원작자 김보통 작가에 의해 시작되었고 한준희 감독과 넷플릭스에 의해 영상화되어 전 세계에 알려졌지만 거기까지다. 시즌2도 보는 내내 컴컴하고 찜찜했다. 아무튼 어쩔 수 없고 여전히 어쩔 수 없다는 말이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 플랫폼에서 내내 나오고 있어서. 다른 나라 상황이었다면 혀만 차며 감상했겠지만 그게 아니라서 말없이 응시해야 했다. 피해자들이 더 피해 보고 가해자들은 더 가해하는 모든 현실의 장면들을.
다만 믿고 싶을 뿐이다. 누군가는 저렇게 애쓰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 피해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저렇게 애썼듯 일부 보이지 않는 조력자들은 저들을 하나라도 더 살리기 위해 저렇게 애썼다고.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는 말은 더 못 하겠다. 어쩔 수 없다는 말로만 돌아와서. 철벽 같은 시스템 안에서 권력을 획득한 자들이 이익을 더 오래 누리기 위해서 폭력과 살인을 방조하고 부추기고 변호하고 강화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입대해서 어쩔 수 없이 맞다가 어쩔 수 없이 때리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다 과거로 묻고 책임을 세분화하고 가해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은 척 침묵하고 피해 당사자는 모든 폭력의 고통과 억울함을 어제일처럼 기억하며 여전히 악몽을 꾸고. 디피 안준호(정해인)는 금세 깨달았을 것이다. 이게 도망친 애들만 아무리 잡아서 달래고 제자리로 보낸다고 될 일이 아니구나. 아무것도 바꿀 리가 없겠구나. 북한 수뇌부의 목을 모조리 따든 남한 수뇌부의 추악한 비리를 모조리 법정에 세워 처벌을 받게 하든, 위를 흔들어야 그나마 아래가 덜 죽어 나가겠구나. 그래서 스스로의 안전을 희생해 저항과 도발을 시도하고 비밀과 진실을 폭로하지만, 고인 웅덩이를 흙탕으로 휘젓고 찻잔 속에 태풍을 일으키려 극단적인 안간힘을 써보지만 바위에 계란 얼룩을 묻힐 뿐이다. 바위가 기분 나쁘다고 존재가 사라질까. 아니. 그런데 계속 계란이 깨지고 깨지며 얼룩을 묻히다 보면 바위든 산이든 뒤덮을 수 있지 않을까. 안준호가 10명 100명 1000명 도발하고 저항하면 덜 때리고 그래서 덜 다치고 덜 아프고 덜 죽게 되지 않을까. 그런 날이 동시대에 도래할지 확언할 수 없지만 결국엔 계란이 바위를 이길 것이다. 어차피 바위도 계란이었으니까. 허황되게 들리나. 너무 말이 안 되는 거 같나. 비인간적인 상황에 상식적으로 대처하며 해결되길 바라긴 어렵다. 다음 시즌엔 여군 피해와 사건을 다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