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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Apr 26. 2024

아빠 잠이 안 와

도로시는 눕자마자 잠들지 않는다. 도로시는 밤에 잠들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 들썩였던 하루를 진정시키고 잠으로 향하는 길을 지나 잠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고 잠으로 하나 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태어나 거의 모든 날을 아내 품에서 잠들었고 아내를 마주 보며 잠들었고 아내를 껴안고 잠들었다. 이건 마치 지구의 자전과 공전, 태양과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처럼 우리의 역사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처럼 굳어졌다. 잠들기 전까지는 아빠와 책 읽고 떠들고 웃고 농담하고 뒹굴고 장난치고 화장실 다녀오고 양치질하고 웃고 떠들고 그런 과정을 지나쳤지만 잠의 챕터로 깊이 들어서면 끝은 모두 아내, 엄마였다. 얼마 전부터 아내는 감기 몸살에 시달렸고 도로시는 잠의 챕터 앞에서 서성거리고 뒤척거리며 아내를 채근했다. 나는 목소리로만 달래는 일을 그만두고 도로시의 옆으로 갔다. 베개를 가져가 누웠고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늘 그랬듯 사랑하고 속삭이고 고맙다고 속삭이고 좋은 꿈 꾸라고 속삭이고 내일 또 재밌게 놀자라고 속삭이고 속삭이고 토닥이고 토닥이고 토닥이고 토닥였다. 처음엔 아빠 잠이 안 와... 하던 도로시는 고요해졌다. 감기 몸살에 걸려 잠든 아내의 숨소리가 조금 커졌고 도로시가 크게 들린다고 해서 아내의 머리가 베개에 잘 눕도록 조정해 주고 다시 도로시 곁으로 와서 토닥였다. 다시 고요해지고 도로시는 내 품에서 웅크렸다. 내 손을 쥐고 이마를 붙이고 새근새근 잠들었다. 나는 이럴 때마다 털북숭이 작은 동물을 떠올린다. 그보다 더 귀엽고 뽀송하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도로시를 품고 토닥거리며 밤의 시간을 샌다. 나는 오래전부터 벅차오르는 도로시에 대한 행복을 기록으로 옮겨두고 싶었다. 내 안에 행복을 포용할 수 있는 저장고가 10리터 정도 있다면 아내와 도로시와 함께 있을 때 나를 덮치는 행복의 총량은 5억 갤론 정도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허우적거리며 중심을 잃는다. 영영 녹지 않도록 얼리거나 영영 마르지 않도록 얼룩으로 남길 방법을 고민한다. 토닥토닥토닥이며 품에서 잠든 도로시의 온기와 호흡을 감지하고 살핀다. 자세를 바꾸면 배와 다리에 이불을 덮어주고 시간이 지나면 이마에 땀이 맺혔는지 이마를 짚고 머리칼을 쓸어 넘겨 확인한다. 우리는 요즘 잠들기 전 고구려에 대한 책을 읽으며 고구마로 단어를 바꿔 읽으며 숨이 넘어가도록 깔깔거리고 교실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좀 웃긴 반 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불을 끄고 무드등을 켜고 도로시는 요즘 며칠 내 품에서 잠이 든다. 나는 도로시가 입장할 잠의 문 앞에서 아내의 대안이 될 수 있어 안도한다. 집에 있는 모든 시간, 도로시를 바라보며 감탄한다. 어떻게 저렇게 귀엽고 예쁠까. 아내는 종종 그런다. 이런 시선과 감탄이 지난날엔 모두 자신을 향했었다고. 지금은 아내를 닮은 도로시를 보며 내내 감탄하고 부비고 뛰고 마구 떠들며 만담을 나눈다. 도로시는 늘 평일 귀가한 내게 밥을 직접 먹여주려고 난리다. 국을 떠먹이고 고기반찬을 집어주고 닭고기를 떼어주고 짜장과 카레를 완전히 비벼주기도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간식을 나눠주고 부루마블을 할 때 내가 돈이 없으면 용돈을 주기도 한다. 그런 도로시가 요즘은 내 품에서 잠들고 있다. 내 손을 꼭 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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