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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의 원류에 대하여 2

by 백승권

작곡가 마이클 니만의 더 피아노 OST 삽입곡

The Scent Of Love를 아주 오랫동안 들었어.

지금도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저 영화에는

피아노 선율로 말하는 여인이 나와.

보통 사람들과 같은 소리를 내며 말하지 못해.

평생을 말해도 해소되지 못하는 일들이

격랑처럼 넘실거리는 삶 속에서

저 여인은 오직 피아노로 언어를 대신해.

피아노를 잃으면 목숨이라도 잃는다는 듯이

이름 모를 섬으로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저 피아노를 운반해 올 정도.

피아노 선율로 말하고 울고 소리 지르고 그리워하고

모든 감정과 기억과 울분을 토해내고

재구성하고 새로운 지점으로 나아가.

피아노를 치며 여전히 아련한 과거의 사랑을 재생하고

피아노를 지켜준 사람과 새로운 연정과 연민에 빠지고

피아노를 지키려다 손가락을 잃기도 하고

피아노를 영영 포기함으로써 과거의 자신과 이별하기도 해.

The Scent Of Love를 듣다 보면

3분 5초 지점부터 격정적인 감정이 휘몰아쳐.

저 지점을 들으려고 자꾸 듣는 건가 싶을 정도로

아무리 들어도 지겨워지지 않아.

마치 저 감정에 빠지고 싶어 하는 것처럼.

오늘은 듣다가 문득 울음소리라는 생각이 들었어.

저 곡 전체가 영화에서 말을 할 수 없었던 여성의

울음소리를 표현한 것 같다고.

울고 싶을 때마다 피아노를 쳤고

저 곡은 특히 더 그렇게 들리기도 했어.

울음소리가 같아서 저 곡이 슬픈 건지

저 곡이 슬퍼서 울음소리 같은 건지

순서는 알 수 없지만 저 울음소리에는

저렇게 울어본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 같아.

음의 높낮이와 음 하나하나의 길이와 연결되는 흐름과

현악이 등장하는 순간과 깊게 부드럽게

찌르듯이 몰아치는 시간들 속에서

울음은 선율이 되어 물결처럼 그려지기도 하고

모래와 바위를 뒤덮는 파도처럼 공기를 흔들기도 해.

저렇게 울 수도 있구나.

저렇게 울 수 있다면 누군가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울지 못하고 삶을 떠날 수 있겠구나.

피아노로 울어보지 못한 사람은

피아노로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피아노를 치고 싶어도 치지 못했을 때

피아노로 울고 싶어도 울지 못했을 때

얼마나 슬펐을까 짐작조차 어려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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