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어둠이 끝나도
춤을 추지 않을 거야
(춤을 못 춰요)
조용히 기뻐할게요
적당히 두려워하며
만약 꿈이라면 그날은
욕만 할 것 같아요
(그럴 리 없어야 하겠지만)
THE HARD CORE OF BEAUTY
아름다움의 견고한 본질
*브루탈리스트 챕터 제목
어제까지 위와 같은
몇 줄의 메모를 적다가
오늘에 이르렀고
어느 유대인 건축가의
미국 생존기 실화를 그린
영화 속에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두 개의 단어를 하나의 문장에서
발견했어요
아름다움과 본질
언어를 개발하고
단어로 밥을 지어먹는 인간들은
'아름다움'을 끝내 하나로 정의하지 못하고
누가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정의를 지닌다고 펼쳐놓았었죠
누군가에겐 아름답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그렇지 못하다고
이건 그저 투명한 셀로판지 같은 것 아닌가요
어디에 가져가든 배경의 풍경에 따라 달리 보인다면
아름다움은 특정 대상에 대한 결과적 표현이 아니라
렌즈의 이름이어야 하지 않나
'본질'은 더더욱 그렇죠
결국 정의하고 바라보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이야기될 수 있어요
종교, 국가적 정체성, 역사로 들어간다면
각자가 배우고 기억하거나 세뇌되었거나
잘못된 정보로 알고 있는 데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너무 가변적이죠
지식과 정보와 세상과 인간처럼
저 (문장이 적힌) 영화에 대해
리뷰에서 언급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여기서 잠깐 꺼내면 유대인 건축가가
기독교 건축물을 지어야 했다는 점이었어요
십자가는 십자가지만
유대인은 (신의 아들로 주장했다고 알려진)
예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말살의 공포를 겪으며 망명한 사람이
유대인이 인정하지 않는 신을 모시는 공간을
만드는 심정이 어땠을까
과연 그가 빛의 움직임으로 설계한
살아 움직이는 십자가는 누구를 위한 걸까
만인은 모두 기독교가 추앙하는
신의 아들을 떠올릴 텐데. 그에게도 그럴까.
자기 민족이 인정하지 않는 신을 위해
자신의 평생을 기꺼이 바쳐 가며
거대한 작품을 만든 걸까
예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민족에 소속된 자가
아름다운 십자가를 만들고 이것을 바라보며
예수의 존재를 더 드높고 가치 있게 인정하게 된다면
이건 누구에게 더 유리한 의도일까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 모시는 신의 배려일까
이들조차 기꺼이 자녀로 여기는
기독교의 신의 관용일까
*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실화가 아니었다.
주인공인 라즐로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동일한
1950~70년대 건축양식인
브루탈리즘을 상징화한 인물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EB%B8%8C%EB%A3%A8%ED%83%88%EB%A6%AC%EC%A6%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