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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D-22

by 백승권

오랫동안 심하게 싫은 사람들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 싶다가

안 없어졌으면 좋겠다 싶었던

오랫동안 애틋이 아낀 사람들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를 날짜를

정하고 준비하고 대기하는 중


진료

검사

수술

회복 또는 장례


생각이 어쩌다 여기까지 온 게 아닌

수술에 대한 신경외과 의사의 설명 안에는

환자의 사망 위험이 있었다

전신마취 과정이 있고

같은 연령대에 비해 현저히 낮아 보이는

환자의 기력에 따라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고


환자의 강력한 의지로 수술은

(두 가지 옵션 중 비교적 난이도가 낮은 쪽으로)

진행은 하기로 하고 날짜를 정했지만

보호자들은 난감했다


왜 우리의 환자는

수술과 목숨을 바꾸려 들까

잘 서 있기도 힘든 분이

젊을 때 화투를 좀 치셨는데

이제 판돈이 이거밖에 안 남았나

나는 당신이 앞날을 그렇게 결정한 모든 맥락을

그 복잡한 어둠과 비명과 불면과 방황을

결코 다 이해할 수 없겠지


척추 0번과 0번 사이와

척추 0번과 0번 사이의

두꺼운 인대와 관절 제거를 통해

현재의 눌리고 좁아진 신경 통로 확보하여

하체 움직임이 나아질 수 있도록 유도

라고 적은 메모를 자꾸 들여다보고


환자와 보호자는

수술을 위한 여러 검사를 위해

느리고 무겁게 거대한 공간을 오가고

다시 필요한 내용을 듣고

입원 접수를 하고 각자가 온 길로 돌아갔어요

남은 과정은 몇 주 후

입원을 하고 수술 동의서를 작성하고

다시 설명을 하고 수술


병원에 다녀오고 며칠 째

그의 목숨이 정말

얼마 안 남았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부재나 충격 같은

추상의 영역을 지나

장례 절차 준비 가능성이라는 대안을

떠올리다가 떠오르는 것들을

여기 적는다


누구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하지만

희망과 낙관은 실제 일이 벌어지고 난

다음엔 아무 소용이 없지


도망치고 싶은 건 아닌데

뭘 준비해도 준비하지 않아도

뭐가 다를지 모르겠다 지금은


절망도 유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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