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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에 대한 조롱. 프랑켄슈타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프랑켄슈타인

by 백승권

신께서 실수하신 거라면요?


옳은 답을 얻기 위해선

순종 아닌 도전이 필요합니다

두려움과 비겁한 독단에서

벗어나자고요


불을 감당할 수 있겠어요 프로메테우스?

불을 전파하기도 전에 손이 타버릴 수도 있는데


사냥꾼은 늑대를 미워하지 않았고

늑대는 양을 미워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들 사이의 폭력은 피할 수 없었지


죽이는 게 감정과 무관한 존재의 이유라면?


나는 시체조각들의 모음이에요


끔찍하고 기이한 의지로 날 만들어 놓고선

이제 날 비난해?


넌 나에게 원치 않는 생명을 줬어


마음은 부서질지라도

부서진 채로 살아가리




시간에 쫓기는 인간은 쉽고 빠른 걸 원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세상도 자연도 인간도

우리보다 엄청 거대하고 대단한 존재가

다 나름대로 생각과 계획이 있어서

뚝딱 만들지 않았겠어?

그게 신이고 신을 닮은 게 우리잖아

이런 식이다


물론 오래 고민했는데

설명할 길이 없어

신이라는 존재를 창조한 거라면

그 또한 인간 사고의 한계이자

불완전함의 산물


불완전한 인간이

불완전한 신을 만들어놓고

불완전한 신에게 권한을 부여한 후

불완전한 인간들끼리 벌벌 떨며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불완전한 삶을 살고 있다


불완전함이 불완전함을 낳고

불완전함이 불완전함을 키우고

불완전함이 자라 다시

불완전함의 불완전함을 만들고


쉽고 빠른 걸 원하는 인간답게

이걸 괴물이라 부르자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이 아니다

괴물을 만든 자의 이름이지

괴물을 만든 괴물의 이름, 인간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란

얼마나 재앙적 존재인가

그의 무관심이 한 인간과 그의 세상을

처참하게 망가뜨려 놓았다


결핍과 광기는 시체 조각을 모아

전류를 주입해 움직이게 하고

신에게 만들기 방학숙제를 제출하듯

스스로 감탄하며 어쩔 줄 모른다


신생아 같은 거인은 태어나자마자

이유도 모른 채 감금과 폭력에 시달리고

존재를 부정당하고 미움받으며

탄생과 동시에 지옥의 고통을 겪는다


인간들이 서로의 어리석음으로

장기자랑을 하다가 서로를 몰살하고

이런 환경에서 새로운 생명이 뭘 보고 배우겠나

자식도 죽이고 사랑하는 사람도 죽이고

그렇제 스스로도 죽이고 있었다

하지만 괴물(제이콥 옐로디)은 조립품이라서

스스로 죽을 수 없도록 설계되었고


따뜻한 마음을 배우고 싶었지만

그들은 모두 짐승의 이빨과

짐승만도 못한 인간에게서 죽었고

괴물이 유일하게 이름을 발음할 줄 알던

두 인간마저 불과 얼음 곁에서 죽는다


분쇄되지 않는 이상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는 괴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빅터(오스카 아이작) 앞에서는 대들기나 할 뿐이다

초등학교 남자애가 부모에게 느닷없이 이럴 거면

자기 왜 낳았냐고 싸가지 없는 소릴 내뱉듯이


AI의 미래를 다룬 우화로 읽히기도 한다

감당도 못할 거를 만들어놓고

제대로 컨트롤 안된다고 망가뜨리려다가

모두가 덤벼도 모자랄만한 괴력이라서

결국 세상을 파멸시킬 가능성을

깊이 안고 있는 사고뭉치의 이름


아버지를 미리 고르지 못하고 태어난 애들의

수습할 능력은 없고 탐욕과 야망만 넘치는

아버지 세대에 대한 깊고 어두운 원망도 있었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만 퍼주다가

-흥분에 휩싸여 남은 판단력마저 날아간 남성의

폭력에 의해- 죽고 마는 여성(미아 고스)


남자애들끼리 옛날이야기 털어놓고

얼음 깨고 만세 부르고 서로 용서하고


인간은 자신과 같은

인간의 형상을 혼자 흥분하며 만들고

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이 튀어나왔지 하며

스스로에 대한 혐오를 고스란히

갓 태어난 생명체에게 옮겨 놓는다


교육 혜택 없이 자기의 힘만 실감하고

죽고 싶지만 죽을 수 조차 없고

아무리 헌신해도 숨을 수밖에 없고


주인이자 부모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런 생명들은 스스로의 운명을 저주하고

창조주를 죽이고 자신의 앞을 막는 모두를

집어던지거나 찢어버린 후 자기만의 길을 떠난다

처음부터 이래야 했던 것처럼

모든 것을 잃고 점점 자기 자신이 된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이런 식으로 궁금해한다

근원적인 불안감은 앞으로도 재생산될 것이다

1818년의 메리 셀리와

2025년의 기예르모 델 토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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