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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13구

자크 오디아르 감독. 파리, 13구

by 백승권

결핍은 채워지지 않는 방식으로

삶을 완성하기도 한다


결핍에 시달리는 자들에게 접근하여 집요하게

독약과 착취를 넣으려는 자들을 겪다 보면

달궈진 쇠막대기를 피부에 붙이듯

한번 자리 잡은 결핍이 얼마나 생을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하는지 실감하게 한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한 가정

대인 관계 접근 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

친척에게 당한 10년의 성적 착취를

연인 관계로 이해하려는 시도

어머니의 죽음과 불화하는 유족들

병든 조모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는 죄책감

성매매에 대한 양면적 태도들

사랑과 성욕의 혼동, 질투와 거짓말

더러운 입과 우아한 발레 포즈

거만하고 지적인 남성과 그를 우습게 보는 시선들

애정 결핍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깊은 회의

자신이 어떻게 길들여졌는지 깨달은 순간의 절망

가장 은밀한 방식으로 나누는 가장 진실한 대화

교감할 줄 모르는 남성은 필요 없다는 결론과

여러 명과 잤어도 마음 가는 건

너밖에 없었다는 충동적 선언

이상한 화해와 균열은 반복될 거라는 불안

자신이 대체 뭐가 문제인지

더 이상 알고 싶지 않다는 표정


영화는 세 주인공의 표정과 몸에

모든 장면과 초점을 할애한다

몸과 눈은 하나의 표정으로 움직인다

타인에 대한 의존과 의지에서 벗어날 때

눈은 가장 단단하게 빛나는 심장이 된다


에밀리(루시 장)

노라(노에미 메를랑)

카미유(마키타 삼바)


셋은 서로의 몸을 맞추지만

대화엔 실패했고 간격은 좁히지만

설득의 방식을 찾지 못한다

한쪽이 공간을 비우는 방식으로 분리되고

한쪽이 다른 한쪽을 무시하며 싸우게 된다

늘 공허했고 자신이 몰랐던 것들에 대해

늘 원망스러웠다.


얼마나 긴 시간을 부끄럽게 지냈던 걸까

스스로가 누군지 알지도 못한 채


도시의 풍경은 늘 창밖이고

감정은 흑백 컬러 안에서 절제

헤어스타일이 바뀌면

정체성이 바뀌고


가장 상처받았던 시절의 나와

가장 닮은 타인에게서 결국

가장 위로받는다는 아이러니


오래 불편하고

잠시 자유로운 삶


청춘이고 낭만이고

듣기 좋은 소리만 찾느라

허덕이는 시대에


파리, 13구는

월세 인생은 끝나지 않고

결핍과 죄책감은 계속될 것이며

우린 마치 사랑이 최후의 구원인 것처럼

육체와 정신의 충족을 갈망하다가

가장 낮고 어두운 존재에게서

가장 절실했던 자신을

마주하게 될 거라고 전한다


여긴 지옥이 아니고

천사는 어디에도 없으며

우린 내내 길을 잃었고

그걸 여태 몰랐으며

앞으로 잃을 거라고


말과 몸을 섞는

모든 자들에게

상처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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