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린 송 감독. 머티리얼리스트
사랑은 어떻게 못하니까요
가끔 우리 인생에 걸어 들어올 뿐이죠
돈 없는 걸로 미워하기 싫은데
지금은 네가 너무 미워서 나 자신이 너무 싫어
네가 날 얼마나 미워하든지 내가 나를 더 미워해
우리가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야
빈털터리라 그런 거지
부모님이 돈 문제로 싸우신 적 있어요?
아뇨
당신을 좋아하는 건지
당신이 데려가는 곳들을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당신은 완벽해요.
이상적인 수입, 이상적인 학력,
이상적인 라이프 스타일, 이상적인 신장,
잘생겼고, 몸 좋고, 매력도 있고,
부자로 태어나 부자로 자랐고 아직도 부자죠.
왜 나 같은 사람에게 시간을 낭비해요?
다 따져 봐도 계산이 안 맞아요.
지금 나랑 뭐 하는 거예요?
내가 가치 있는 사람으로 느껴지니까요
이 아파트 얼마예요?
1,200만 달러
난 네 앞에선 구걸하는 사람이야
시간이 흘렀는데도 너와 함께할 여력이 없어
예쁜 말도 한두 번
아무리 포장하려 해도
사랑은 가난을 가리는 데
늘 실패한다
당당한 가난조차
사랑에게는 부끄러울 때가 많다
기념일에 예약한 레스토랑 주변을
주차비 아끼려고 돌고 돌다
싸우고 헤어지는 것처럼
최악은 혐오다. 자기혐오
자신을 사랑한 상대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
대신 가난한 자신과
가난한 상대를 선택한 자신과
가난한 데이트를 선택한 자신과
이 모든 궁색함을 선택한 자신을 혐오한다.
이 혐오는 치료제가 없다
한번 발생하면 정신에서 나가지 않는다
재벌을 만나 재력에 혼미하게 마취되어도
오래가지 않는다
사지 멀쩡한 재벌이 가난한 나를 왜 만나?
같은 생각만 떠나지 않을 뿐
가난은 가난한 환경에
오랫동안 젖었던 대상을 길들인다
너에겐 가난이 어울린다고
잠시 가난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결국 돌아올 곳은
가장 편안한 너의 집은
가난 가난 가난이라고
가난은 살아 움직이며 쫓아다니고
관점과 정신과 모든 선택과 결정에 영향을 미치며
미래와 현재를 뒤흔든다. 잊고 싶은 과거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의 서슬 퍼런 피부가 된다.
낫지 않은 화상, 너무 낡아 닫히지 않는 문이 된다
후천적 지식과 정보, 비즈니스 매너를
토핑으로 가득 올려 시간과 노력이란 오븐에서
아무리 익히고 조리해도 가난이란 베이스 위에서는
뒤덮는 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받아들인다 스스로 설득한다
그래 내게 어울리는 건 가난이었지
내가 돌아갈 곳은 가난이었지
가난한 집 가난한 음식
가난한 얼굴 가난한 옷
가난한 만남 가난한 대화
끔찍하지만 익숙하고
편안하지만 절망적인
내가 저주하고 사랑하는 나의 가난
그리고 우리의 가난한 사랑
환자가 되면 병원이 마음이 놓인다
인생의 가난을 받아들이면
가난한 애인도 받아들일 수 있다
물질적이고 환경적인 가난은
정신적이고 관계적인 가난으로 쉽게 전염된다
어느 하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부분이 없다
벗어난 척 이제 괜찮은 척은 할 수 있지만
당사자는 진실을 안다
모든 순간 내가 뭘 보고 느끼며 비교하고 있는지
심지어 조금 여유로워진 현재에서 조차
언제든 가난해질 수 있는 불안과 싸우고 있는지
가난엔 농담과 유머가 깃들 수 있다
가난하지 않은 자들에게 그것은
공감하기 어려운 타인의
스탠딩 코미디 소재일 수 있지만
처음부터 가난하고 지금도 가난한 자들에게
가난한 농담과 가난한 유머는 현재를 직시하게 하고
가난의 그물에서 영영 헤어 나오지 못할 거라는
슬픈 예언을 담고 있다
거기에서 도망쳤고
영영 벗어날 기회가 있었으면서도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못한
루시(다코타 존스)는 자기 합리화에 성공한다
다시 희망을 갖는다. 다시 춤을 추고
다시 낡은 아파트 앞으로 돌아온다
다시 후회할 거라는 것을 알면서
가난한 결정을 내린다
인생은 가난해도 너무 길어서
루시에게는 앞으로도
여러 번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영화 속 루시의 선택은 어떤 인류에게는
(마블팬에게는 캡틴 아메리카와 마담 웹의)
낭만적인 로맨스로 남을 수 있지만
(나 같은) 선택적 현실주의자에게는
의아하고 답답했다
부자라고 모두 악마가 아니듯
가난하다고 모두 순수하고
다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심이 심장에 닿을 때마다
저릿한 사랑을 느끼겠지만
그 진심의 주체가 부자라면 훨씬 더 자주
강렬하게 느낄 확률이 높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