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정신의 미래

by 백승권

못다 한 말들을 쌓아놓으면

다 쓰지 못한 느낌을 쌓아놓으면

흘리지 않은 눈물을 모아놓으면

억지로 웃은 시간을 모아놓으면

모두 뭉쳐서 예쁘게 빚으면

고운 햇볕에 잘 말려서

정성 들여 포장하여 상자에 넣으면

쇼핑백에 담아 선물할 날을 기다리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잠시 이성이 돌아온 듯

스위치가 켜지면

잠에서 깬 걸까

다른 차원으로 건너온 걸까

웅크렸던 다른 자아의 기지개일까

수면 부족의 몽환적인 부작용일까


한번 떠난 것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비관한다고 하여

지금까지의 기다림이 헛수고는 아니겠지

덕분에 지금껏 숨이 붙어 있으니까


나는 어쩌면

아무도 동의하지 않은 태도를 지니고

타인의 인내 안에 안전하게 거하며

하지 말아야 할 생각과

닿지 말아야 할 촉감과

가지 말아야 할 길 위에서


잠시 기절한 건지도 몰라


세상은 알아서 돌아가고

타인은 그들의 삶을 알아서 살고

내가 굳이 개입하지 않거나

뭔가를 하려고 하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는 그런 상황일지 모르지


책임을 지고는 있을까

권리가 어디 있는지는 알까

기본적인 의무는 이행하고 있는 걸까


어딜 보고 있을까

똑같은 밤이 온다고

제대로 낮을 소비 했을까


지금까지의 모든 답을 딛고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듯

어떤 질문으로 접근하는 게 맞는지

확신이 드는 게 아무것도 없다


결국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가장 빠지기 쉽고 편안해지고

해롭고 유독하지


진실은 여러 개고

가끔씩 몇 개를 열어본다


원래 내가 누구였는지는 관심 없지만

누구의 누가 될지는 알고 싶어

미래의 내가

티저 필름 정도는 보내줬으면 좋겠어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