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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off

by 백승권

보이지 않는 목소리를 덮고 잠든 지 오래되었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울지 않고도 슬퍼하는 방법에 익숙해져 가는 기쁨


(pause)


불안하면 생각하고

생각하면 불안하고

웃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유일하게 남은 카드를 꺼내듯


사랑하는 사람이 무력하게 될 순 있어도

사랑받는 사람이 무력하길 바라는 폭력

게임이라면 지는 게임이어야 하고

시소라면 기울어지는 건 내쪽이 아니야

내 감정은 한없이 가벼워서

주제도 모르고 나부끼고

고백은 어차피 닿을 길 없어서

문장을 끝내지 않아도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저는 이 겨울을 여기서 끝내고

다음 계절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새로운 계절에도 헌 옷 같은 마음을 품으며

여전히 환자를 흉내 내겠지만

벽이 밝아지면 조명이 달라지면

바람의 색이 변하고 회복된 것들을 기워서

기침을 막을 때 쓸 수 있다면

조금은 더 새것처럼 연기할 수도 있겠죠


낮에는 공기가 된 것 같아요

그림자 없는 형태가 되어 유령처럼 떠다니고

정신을 차리고 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을 뒤집어쓰고 빨간불을 건너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미지의 칼날들에게

깊게 베인 곳들이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사슬을 걸고 재갈을 물린 채 스르르 걷는 포로처럼

생각의 입을 틀어막고 숨소리도 내지 않습니다


판단을 멈추고 응시를 멈추고

자해를 멈추고 증오를... 멈출 수 있는 만큼 멈추고

과한 연기를 바라지 않는 환경에서도

주어진 역할과 동선을 잊지 않으려 애써요

같은 대사와 같은 침묵을 번갈아 가며


올해는 모든 날이 힘겨웠어요

찢은 일력을 모두 다시 찢으며

부관참시를 떠올릴 만큼


이만 건너갈게요

내일이 영화 70도여도

새로운 계절의 첫날에게

사랑의 이불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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