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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두려움

by 백승권

해보지도 않은 사랑에 빠져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날린 걸까

되돌려 받지도 못할 영역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염치도 없이

질끈 감은 눈으로


통증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마지막 단계라고 비로소 생각하기엔

마지막 단계가 아닌 적이 없었어

모든 장면이 마지막이어서

모든 시도가 처음이어야 했어

기어이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었다

의지가 있긴 했을까

자의식이라는 게 있기나 했나

주입되고 세뇌된 것들을 내 것이라

믿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나

모든 선택과 동작이 수동이었어


내 것인 적이 없어서

그렇게 부자연스러웠다

소유하지 못해서 늘 어색하고

좁은 옷장 속에 걸어만 두기에

너무 컸어, 팔길이도 어깨도 맞지 않는데

입고 싶었어 갖고 싶었어 안고 싶었어

내 것일 수 없어서 내 것이어야 했어


우린 언젠가 버려지겠지

가만히 있어도 쓰러지겠지

울고만 있어도 눈은 없어지겠지

말하지 않아도 입이 지워지겠지


남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싫지 않아서

내가 누구든 누구였든 더 껍질을 태우고

지문을 지우고 발자국을 지우고

잠시 자고 싶어요


일어나면 나를 잊고

좋아하는 기억만 넣고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너를 데리러 가고 싶어요


끝으로 가자

끝으로 가자

두려워하며

우리가 되어

눈을 감으며

첫 문장을 다시 쓰며

다시 첫 장을 채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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