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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고백*

by 백승권

self-editing


계산해서 될 거였으면 예전에 끝났어요


긴 사랑을 생각한 적 없지

영원은 길이가 없어요

시간은 측정이 아닌 대화의 편의를 위한 장치


언제까지 서로를 좋아할 수 있을까

이런 합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기

우리는 물어본 적 없어요

걱정을 마지막 인사로 오해한 적 있었어


걱정이 그런 의도였다면

우리는 서로를 너무 많이 죽였어

걱정이 송곳이라면 우린 서로에게

어떤 가죽도 남기지 않았어요


하지만 모든 고백이 암호여도 괜찮을까

난 수학에 약하지만 다행히 암산을 잘해요

모든 정답을 이미 알고 있다고 자신하지 못해도

주관식으로 풀어써서 가산점은 받을 수 있어요

다행히 신춘문예 당선자거든요

쌓아둔 상장은 힘이 없지만

어떤 타이틀은 인증서 같은 것

의심하는 자들을 위한 희미한 문신

전시할 필요는 없지만 역사에 만약은 없으니까

문제를 오래 읽고 해석이 이기적일수록

제출자를 넘어 문제 자체에 매료되기도 해

작가를 넘어 작품에 잠못이루듯

상상하고 목소리를 부여하고

가장 근사한 의자에 그림자를 앉혀요


그가 너를 구했나요

너가 그를 구했어요

지나간 것들은 되돌릴 수 없고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은 서로를 묶어서

화산이 덮쳐 뼈와 재가 되어

발굴될 때까지 같이 있게 돼


죽은 자들은 말이 없지만

사는 동안 행복했다면

누구보다 스스로가 그걸 알았다면

죽음은 빈 손으로 육체만 거둬가겠지

시간과 겨뤄본 적 없지만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어요

승리자의 미소와 함께


우리가 우릴 구했고

그렇게 불변의 증명을 거치며

어떤 어둠 속에서도

떨지 않을 수 있었다고


두려운 날도 오겠지

다시 구하러 갈게요

그때의 우리가 되어





*

이글의 제목은 이영훈이 작사 작곡하고

곽진언이 부른 <나의 해방일지> OST의 동명 곡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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