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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Feb 01. 2017

도로시에게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입을 크아아 벌리고 밥을 넣는다

도로시는 이제 숟가락을 직접 잡고 밥을 먹는다. 제대로 잡지 못하고 흘리며 그냥 놓아버리기도 한다. 숟가락이 입으로 들어가는 거리가 저렇게 멀 줄이야. 모든 게 처음인 도로시에게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는 눈치로 흘리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직접 먹이거나 아내가 먹이고 난 달래고 응원하며 지원해주는데 문득 도로시의 스푼을 잡은 손과 도로시의 입의 거리가 무척 아득하게 느껴졌다. 수십만 번 학습된 어른에 비해 방향도 목적도 낯선 초행길.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입을 크아아 벌리고 밥을 넣는다. 짧게는 15분 많이는 30분 이상도 걸릴 때가 많다. 하루 기본 세 번. 이제 우유와 간식은 수월해졌는데 밥을 먹이는 일은 여전히 난제다. 도로시가 표현력이 늘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하거나 입을 다물거나 먹은 걸 그대로 내뱉기도 한다. 난처해하면 재밌어한다. 곁에서 지금껏 기억하는 모든 응원 메시지를 뿜어내며 아이를 독려한다. 배가 많이 고프면 앙하고 빨리 먹기도 하지만 늘 그렇진 못하다. 새로운 반찬을 먹여야 하고 숟가락 연습도 시켜야 한다. 손과 입을 닦고 물을 먹이고 양치질을 시키고. 내내 웃음을 유도한다. 좀 시간이 걸려도 매번 거의 다 먹인다. 수백 일 동안 아내는 이 식사를 위해 수십 권의 책을 탐독하고 연습장을 까맣게 채웠으며 수천 개의 게시글을 참고하며 한 끼 한 끼를 만들었다. 끼니가 아니라 예술가의 고뇌와 노고가 담긴 작품이고 그에 맞게 소비되어야 했다. 시행착오의 최소화를 위해, 세상 모든 불운의 방지를 위해 아내는 모든 영혼을 끄집어내어 장작으로 지폈다. 한두 번 사 먹였지만 기대에 찰리 없었다. 도로시를 위한 나만의 영역이 없던 건 아니지만 도로시의 밥을 만드는 일만은 아내의 성역이자 성전 같아 보였다. 복잡한 목적을 향해 시간과 재료와 조리를 통제하는 그녀의 모든 과정을 아직도 난 세세히 파악하지 못한다. 다만 그동안 다른 즐거움으로 도로시를 기쁘게 한다. 그녀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을 최소화시키려 고민한다. 열거할 수 없다. 우리의 임무는 너무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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