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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Apr 22. 2017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

헬렌 야페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라'를 통해 처음 마주한 체 게바라는 고뇌하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는 집안, 학구적인 성격, 명석한 두뇌. 의사로서의 진로가 전도유망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엄마 친구 아들'이었다. 영화에서 젊은 날의 그는 친구와 함께 떠난 긴 여행을 통해 인생의 지도를 다시 그린다. 쿠파의 현실을 목도하고 가까운 곳에서 신음하는 이들의 안타까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자신의 의지를 확인한다. 이후는 우리가 알다시피 그는 혁명가로 분하고 사회주의 국가로서 쿠바의 독립과 자립을 이끌어 낸 후 볼리비아 정글에서 정부군에 맞서 싸우다 사로잡혀 사살된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티셔츠로 상징되는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 지금 세대에 알려진 그의 이미지는 타협과 굴복을 모르는 영원한 젊음이다. 영화배우 같은 (표현력이 강한 직업군에 속한) 이미지로서의 우상화가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선택한 의지와 행동을 통해 다수와 국가의 운명을 바꿔놓은 체 게바라는 혁명가의 위상을 -국가 반역의 우두머리가 아닌 시대를 뛰어넘는 선망의 대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단단해 보이는 체구, 크고 짙고 깊은 눈, 코와 턱 주변을 덮는 수염, 빛이 드리워졌을 때 윤곽이 도드라지는 굵은 얼굴선, 할리 데이비슨이 어울릴 법한 마초적인 외모를 지녔지만, 이러한 외모적 강렬함에 가리워진 그의 다른 쪽 면은 수많은 기록을 남기고 해박한 지식으로 국민과 국가의 변혁을 이끌었던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은 굽히지 않는 패기와 무력투쟁으로 대표되는 혁명가 체 게바라의 숨겨진 면모를, 영국의 경제사학박사 헬렌 야페가 방대한 자료와 정보, 증언, 기록 등을 모아 옮긴 책이다. 사회주의 국가로서 쿠바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 그가 노동자의 태도 분석과, 경제학, 심리학의 적용을 통해 쿠바 산업을 이끌었던 수년을 고스란히 담았다.


‘쿠바 혁명 정부에서 산업부흥부장, 쿠바국립은행총재, 산업부장관 등 경제 분야의 중책을 맞아 쿠바의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데 일조했’던 그의 가장 매력적인 면모였다면 결코 인간 중심의 사회를 만드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든 자본주의 국가가 일찌감치 놓아버린 문제, 이제서야 복지를 부르짖고 자본주의의 냉혹한 단면을 비판하는 다큐멘터리와 주장들이 앞다투어 미디어를 메우고 있지만, 체 게바라는 애초 혁명과 모든 체제의 중심에 ‘인간’이 놓여있어야 함을 행동으로 추진했다. 마르크스를 탐구하고 신봉했던 그는 인간 중심의 정치경제체제의 실현을 위해 주변인들과 국민들의 동조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야 했다. 열정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고, 주변인부터 국민전체까지 배우고 익히는데 망설이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자신이 먼저 지식을 갈구하고 이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체 게바라는 교육이 혁명의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생산성 향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체 게바라와 쿠바 혁명정부의 일대 과제였다. 개인능력에 차등을 두고 지급되는 급여의 수준을 달리하는 자본주의의, 비인간적이나 생산성 향상엔 극히 효율적인 방식과 차별을 두기 위해 그는 도덕적 인센티브에 중점을 두었다. 이것은 물질로 부여되는 보상이 아닌 사람들의 인정과 국가와 모두를 위해 기여했다는 충성심에 근거를 두는 방식이었다. 이를 위해 체 게바라는 곡물을 누가 더 많이 더 빨리 수확할 수 있는지 직접 대결을 펼치며 민중의 이목을 이끌어냈고, 자신도 역시 어느 누구와도 다르지 않은 노동자중의 하나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의 무조건적인 반감 대신 부분적 도입을 통해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한의 생산효과를 내기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소수가 이익을 독점하는 자본주의의 방식과 같은 결과에 이르지 않기 위해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우리들의 목표는 모든 이들의 공평한 혜택과 평화임을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와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인간중심의 사회임을 강조했다.


무력을 통한 혁명은 단순한 독재자나 테러리스트로 오인 받을 지 모른다. 사담 후세인, 오사마 빈 라덴, 김일성 일가 그들이 초기의도는 달랐을지 언정, 자국민을 다루는 위협적인 방식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들에 의해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으로 지목되었다. 체 게바라의 쿠바 역시 미국에 의해 끊임없는 경제적 압박에 시달렸다. 하지만 체 게바라는 무력이 아닌 자국 국민들의 의지와 체제의 변화를 통해 자립에 힘썼고, 화폐를 개혁하고, 의사결정과정에서 늘 토론을 활용하고, 인재 교육과 등용방식을 바꾸는 시도를 통해 쿠바의 경제력과 정치의식 상승에 범접할 수 없는 기여를 했다. 그는 핵이 아닌 교육에 진정한 경쟁력이 있음을 간파했고 포기하지 않는 노력을 통해 주변은 물론 국가 전체를 바꾸는 과정에 기꺼이 중심이 되었다.


만약 쿠바의 기반을 닦아놓은 후 체 게바라가 조금이라도 흑심을 품었다면 아주 쉽게 독재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 테다. 그는 주변은 물론,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원한 건 관료가 아니라 혁명가였고 실제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저항과 혁명의 현장으로 다시 뛰어들어 볼리비아 정글에서 죽음을 맞는다. 시대를 관통하는 수많은 위인들이 그렇듯, 체 게바라 역시 쿠바의 열악한 상황이 만든 하나의 신화화된 인간일지도 모른다. 허나 특수한 상황에 처했더라도 방향을 결정하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고, 보다 쉽고 편한 길을 택하려는 건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이다. 그는 의사가 되었을 수도, 자본주의를 받아들였을 수도, 미국의 비호아래 독재자가 되었을 수도, 쿠바에 머무르며 편안한 노후를 보냈을 수도 있었다. 그것은 개인 ‘체 게바라’를 위한 선택이고 그때까지의 그의 업적으로 미루어 짐작하건 데 이러한 선택을 비난할 자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마치 프로그래밍이라도 된 것처럼, 기계처럼 일하고, 학문에 몰두하고, 다수를 안정과 번영으로 이끄는 데 힘쓰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했다. 그 오랜 시간 모든 시간과 노력을 투신하여 기틀을 바로 세운 뒤 다 버리고 떠났다. 죽음이 기다리는 전투가 벌어지는 볼리바아의 정글로. 누구도 그를 밀어 넣지 않았다. 스스로의 걸음으로 들어갔다. 쿠바의 경제혁명가이기도 했던 그의 행보를 보면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은 설득력이 약하다. 적어도 체 게바라의 경우로 보면 영웅은 타고나야만 한다. 타고나지 않았다면 도저히 이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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