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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Apr 22. 2017

줄리언 반스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소설

이 책은 날 놀래킬 거야. 그게 언제일까? 이제 서서히 놀라게 될까? 조짐이 올까. 혹시 지금 이 부분이 놀라게 할 단서가 될 부분인가? 복선? 아 뭔가 놀라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혹시 내가 놓친 것은 아닐까. 이미 엄청 놀라고 있어야 했던 건 아니고. 아 뭐지… 형체를 알 수 없지만 특정 감정의 폭발을 기대하면서 이야기를 대하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못하다. 많은 이들이 경험으로 체득한 진리가 있다면 기대의 높이는 그 반대의 높이와 비례할 수 있다는 점. 줄리언 반스가 문장과 단어 곳곳에 숨겨놓았을 비밀의 관계, 단서들, 예고들, 이미지들, 나는 아직도 다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이 글에 옮길 수 있는 것도 매우 일부분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이것은 에이드리언, 나, 베로니카의 이야기다.


하나의 자살이 있었다. 모두가 비웃었다. 시간이 지난 후, 또 한 명의 자살소식을 들었을 때 아무도 웃을 수 없었다. 에이드리언. 하지만 그는 자살했다고 했다. 나(소설의 화자, 토니)의 인생에서 (최소한 가시적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는 갑자기 전학 왔다. 도발적인 발언과 태도로 헌트 선생의 지적 수준을 압도하며 교실 분위기를 휩쓸었다. 나랑 사귀던 베로니카를 빼앗아갔고, 그리고 죽었다. 천재 친구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에이드리언은 빠지지 않고 언급될 인물이었다.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가 남겼다는 일기장도 끝내 건네 받지 못했다. 슬픈 일이었지만, 그는 잊혀졌다. 40년이 흘렀다.


그 사이 난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가정을 꾸렸다. 이혼은 했지만 아이와는 늘 가까이 지냈다. 전 여친 베로니카와 만날 기회가 생겼다. 그녀는 늘 그렇듯 무심하고 냉소적이었다. 세월은 그녀의 외형을 바꿔놓았지만 흔들리게 하기 충분했다. 모호한 원망과 짜증이 섞이던 태도를 보이던 베로니카는 편지를 한 통 건넨다. 오래 전, 그러니까 40년 전 내가 베로니카와 헤어진 후, 그러니까 베로니카가 에이드리언에게로 떠난 후, 그러니까 내가 친구 에이드리언에게 여친 베로니카를 빼앗긴 후, 둘에게 보낸 편지였다. 십대의 분노. 그 장문의 편지에는 극에 달한 저주로 가득 차 있었다. 마녀가 읽는다면 잠든 악마라도 깨울 것만 같았다. 내가 부족했어. 너희들의 새로운 사랑과 행복을 바랄게 따위의 쿨함은 어느 구석에도 없었다. 끝없는 비아냥과 외설적인 욕설, 둘의 현재와 미래, 주변을 싸그리 뭉뚱그려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사과 메일을 보냈다. 베로니카는 답했다.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 그렇지?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줄리언 반스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전체 이야기는 이 대사 하나로 관통한다. 초반부 교실에서 이뤄지는 헌트 선생과 에이드리언의 대화는 압도적이고 매력적이며 작가의 역사적 철학적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부분을 함축해 놓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만약에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 가장 결정적 순간, 수 차례 반복될 장면을 정한다면 저 대사가 차지할 거란 예감이 든다. 무려 40년이다. 토니(나, 화자)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에이드리언도, 베로니카도, 회상은 했겠지만 자신을 포함한 셋이 어떤 운명으로 엮여 있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베로니카를 반복해서 만나며 어느 순간, 비밀의 문을 열었을 때 그는 ‘모든 것을 이해’한다. 왜 일기장을 받지 못했는지, 왜 베로니카가 자신에게 그런 태도를 보였는지. 왜 베로니카가 자신과 만나려고 했는지.


분량에 대한 논란에 작가는 단언한다. 150페이지(원문 기준)의 소설이지만 반드시 두 번 읽게 될 거라고. 그러니 이는 300페이지 소설이나 마찬가지 일 거라고. 책을 읽기 전 이 부분을 알고 나서 웃었다. 설마. 그리고 그의 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이틀이면 충분했다. 작정하고 읽었다기 보다 그런 속도감으로 읽혀졌고, 단서와 복선을 찾기 위해 앞에서부터 모조리 뒤적거려야만 했다. 그리고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총동원해야 했다. 에이드리언의 죽음과 베로니카, 그리고 토니가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지. 개인의 기억과 밝혀지지 않은 역사는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 한 개인이 자신과 자신 주변에 얽힌 사건에 대하여 무심하고 망각하듯이 역사 또한 자신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오해와 거짓으로 포장해서 받아들여지는지. 작가는 마치 소설 자체를 비웃는 것 같은 인상도 들었다. 이야기를 이해하려는 시도들. 허구 속에서 자신이 믿고 싶은 진실의 단서를 찾는 모습들. 줄리언 반스는 어디까지 예상한 걸까. 겹겹이 배치해놓은 장치들 속에서 그가 진정 의도했던 것은 독자의 깨달음일까. 거기까지 의도한 자신에게 돌아올 또 다른 명성일까.  


화자 토니는 보통 사람처럼 다양한 욕망과 사고를 지녔지만, 이를 통해 그가 보여주는 태도와 행동들은 다소 실망을 준다. 수동적이고 무심하며 자기합리화를 잘하고 얼버무리기 또한 능하다. 불완전한 기억으로 회상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독자가 의지할 수 있는 부분은 그 불완전한 토니의 말들뿐이다. 토니를 통해 전해들은 말로 모든 사건과 관계를 유추해야만 한다. 실마리가 풀렸다고 해도 완전히 깨끗하게 덜어낸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 건 바로 이 토니의 성향 때문이다. 그에 반해 에이드리언은 고뇌의 깊이가 다르고 표현의 선이 다르며 생의 길이 또한 남달라 신화적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신화에 얽힌 슬픈 무게를 짊어지고 긴 시간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베로니카. 인물들과 사건 사이에 얽힌 수사들을 걷어내어 보면, 모두 섹스로 연결되어 섹스로 망했다.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여전히 감을 잡지 못했던 토니가 한 인물을 만난 후 깨달은 것은 너무 늦었거나 아님 영영 몰라도 될 것이기도 했다. 그 인물이야 말로 섹스의 가장 격렬한 피해자 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이 이야기에 대한 나의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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