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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Jun 08. 2017

아내 사진, 정말 판빙빙 저리 가라구나

2016.12.27~2017.6.8 아내와 도로시에 대하여, 트윗

도로시와 아내가 있어 행복한 한 해였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전자보다 중요하지 않고 

개인적 욕망에 가까운 것들이기도 하다.

균형은 중요하다.

무엇보다 환경에 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도로시와 아내가 있어 진정 행복한 한 해였다.



도로시가 시가 되어 퍼지고 있었구나. 지난 연말부터 최근까지 몇 자 못 쓰고 있었는데. 지금 집에 가는 중인데 더 보고 싶어 졌다. 아내가 그랬다. 내 귀가 시간이 다가오면 잘 놀다가도 애처로운 눈빛과 목소리로 압빠.. 압빠... 하고 부른다고. 어휴.. 가여운 것.



도로시는 밤새 깨어 울었고/아내는 밤새 깨어 안아 달랬고/나는 밤새 깨어 둘에게 물을 먹였다. 모두에게 힘든 새벽이었고 아내는 도로시 곁에서 힙시트(허리에 채우는 아기 보조의자)를 한채 눈감고 있다. 나는 출근하고 아내는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낼 것이다.

아이의 성장을 돌보며 느끼는 환희와 행복의 표현도 중요하지만 그 뒤를 따르는-대부분 아내에게 불어닥치는-억겁의 고통과 괴로움의 기록을 지속하고 싶었다. 아이도 아이지만 무엇보다 첫사랑이자 아내인 내 여자의 표현 그대로의 위대함을 평생 추대하기 위해서다.



도로시 태어난 후 업로드해온 인스타 사진과 영상들을 훑어보다 보면 알게 된다. 도로시의 모든 표정을 좋아하지만 더 좋아하는 표정들이 있다는 것을. 내가 겪지 못했던 아내의 과거를 곁에 두고 사랑하는 것 같다. 나오면서 우유를 데워 먹였다. 180ml



짧은 복도와 신발장 사이

하얗게 칠해진 유리문이 있다

아침마다 도로시가 따라 나오고

난 신을 다 신고 가까이 선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입맞춤을 한다

콧김과 함께 도로시의

입술이 뾰족 닿는다

나란히 선 아내와 도로시가

점점 멀어진다

문틈이 좁아진다

안녕



아내가 문자 보내며 ‘부탁해요 미앙해요ㅜㅜ’라고 끝을 맺었는데 너무 귀엽귀…



도로시의 음색을 서술하기 어렵다

오래 생각해 겨우 떠오르는 

가장 가까운 표현이라면 

'애처로움'일 것이다

아이가 계속 찾아 걸었다는 

아내의 목소리 곁에 

압빠? 아빠...

도로시의 부름이 있다

아직 내가 누군지 모르는 난

그제야 비로소 아빠가 된다



고갤 돌리니 아내가 거실 소파 위에서 고요히 잠들었다. 아마 지금이 도로시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잠든 처음일 것이다. 혼자 잠들려 하지 않았지만 수백일 육아의 모든 피로에 잠식당한 채 단 한숨의 잠도 홀로 이루지 못했던 널 누구도 깨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10분도 채 넘기지 않고 눈을 떴고 다시 잠든 아기 곁으로 돌아갔다.



아내가 그랬다. 도로시가 하루 종일 아빠.. 아빠.. 찾는다고. 그 애처로운 목소리를 너무 잘 알아서 귓가 넘어 하루 종일 들리는 듯했다. 이제 돌아온 집은 침잠하고 도로시는 어둔 구석 잠들었지만 여전히 소리의 온기는 빈 공간을 떠돈다. 작고 가엾은 내 사랑.



압빠 엄마를 정확하게 발음하는 도로시는 언젠가부터 혼잣말처럼 아부지어무니를 읊조린다. 당장이라도 문안인사를 올릴 것처럼. 전화기 너머로 아부지아부지 아련한 목소리가  넘실넘실 들려온다.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 주고 내가 필요하고 내게 너무 소중하다. 너무.



도로시를 생각하면 자주 뭉클해진다. 얼굴이 뜨거워질 만큼. 처음 만났을 때 너무 작아서 부서질 것만 같았을 때 귓가에 속삭였던 온전히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껏 겪지 않은 아직은 상상조차 안될 일들을 해내고 싶다.



입금은 좋다

아내와

도로시의

선물을 샀다



알바 한 건을 했다. 입금이 되었고 아내는 고생했다며 내 몫을 챙겨주었다. 퇴근길에 백화점 1층에 갔다. 백화점 7층에서 에어맥스를 샀다. 아내 꺼. 프라다 지갑도 사고 싶었다. 아내 꺼. 진한 핑크색. 가격만 묻고 돌아섰다. 아내는 에어맥스를 좋아했다. 지갑이 떠오른다.



거실에 도로시 소파가 있고 모두 앉는 소파가 있다. 두 소파는 거의 붙어 있고 도로시는 두 소파를 넘어 다닌다. 오늘 넘어졌다고 했다. 매트가 깔리지 않은 바닥으로 이마 옆부분과 귀 윗부분을 부딪친 거 같았다. 많이 울었다고 했다. 들으며 나도 목이 잠겼다.



29일 후 아내와 만난 지 6000일이다.



지난밤 도로시가 아팠다. 감기를 앓던 중이었다. 콧물이 넘어가 목구멍에 달라붙어 숨을 못 쉬었다. 자다 그르렁거리더니 눈을 떴고 켁켁거리다 온몸을 바둥거렸다. 아내는 119를 불렀다. 구급차 안에서 도로시는 더 놀랐고 다시 차를 돌렸다. 밤새 아내와 곁을 지켰다.



도로시와 류이치 사카모토 새 음반을 들었다. 청초한 몇 개의 트랙이 지나고 유리알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도로시는 멈칫하다 무서운 듯 덥석 안겼다."무서운 거 아냐, 음악 소리야"도로시가 따라했다."으막또리?","으막또리?"이내 고개를 떨구더니 잠들었다.



결혼 다음 해 가족여행 사진을 챙기고 있다. 7년 전 이맘때, 내가 아내를 어떻게 바라보고 아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적나라하다. 지금도 장난 아니지만, 아내는 정말 이때도 인간의 영역에서 판단하기 힘들 정도로 눈부셨구나. 한 장 한 장 매료되고 있다.



도로시의 하얀색 나시와

도로시의 진한 분홍색 

여름 레깅스를 샀다. 

하얀색 슬리퍼도 샀다. 신난다.



첫 만남 6000일을 어떻게 기념해야 하나 고민하다 결혼식 사진을 뒤적거렸다. 아내 사진을 보다가. 정말 판빙빙 저리 가라구나 싶을 정도로 가공할 미모구나. 눈을 못 떼겠다.



와장창. 도로시가 스노볼을 깼다. 두 손으로 들어 올리더니 거실 바닥의 매트가 깔리지 않은 부분으로 집어던졌다. 안의 물과 겉의 유리가 밑의 플라스틱 덩어리와 함께 사방으로 흩어졌다. 난 도로시를 안아 올렸고 아내는 수건과 찍찍이와 청소기로 오랫동안 치웠다.

둥글고 커다란 유리조각과 흥건한 물, 문제는 어디까지 튀었을지 모를 유리가루였다. 오픈된 사방 모든 곳을 샅샅이 닦고 훔쳤다. 도로시는 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했고 더 어지르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눌렀다. 다 치운 아내에게 다가가 오물거리며 말했다.미얀해요~



방금 도로시가 멈머머머머머 잠꼬대했다. 멍멍이와 대화하는 꿈을 꾸는 것 같다. 이따금 자다가 새벽에 느닷없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흐흐으흑 울먹거리기도 한다. 아깐 귀가한 내게 한달음에 달려와 안겼다. 점점 말을 듣지 않아 힘들다고 아내는 토로했다.



6000일 선물을 주문했다. 결제 확인 후 발송 예정 메시지를 받고 나서야 다른 후보군이 막 떠올라 머리를 감쌌지만, 곧 도착할 것도 좋다. 부디 받는 사람도 좋았으면 좋겠다. 돈이 더 있었다면 더 나은 걸 주문했을 것이다. 지갑의 두께가 선물의 영역이다.



"모두 안녕~~!"

잠들기 전 두 손을 단풍잎처럼 흔들며

도로시가 말했다.

잠든 건 한 시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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