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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Sep 05. 2017

엄마 두 살, 도로시 두 돌

그대가 있어 가능했다

2017년 9월 4일, 아내는 엄마가 된 지 2년이 되었다. 몇 주 전부터 도로시의 두 돌 파티를 준비하며 분주했다. 홈파티 재료를 주문하고 잘 때 몰래 풍선을 불었다. 저녁이 되기 전 아내는 음식을 하고 난 도로시와 여러 가지 버전의 생일 축하송을 같이 듣다가 이소라의 '생일 축하해요'라는 곡을 발견하기도 했다. 2, HAPPY BIRTHDAY, LOVE. 하얀색 블라인드에 두 돌을 축하하는 레터링 풍선을 붙였다. 그 앞의 천장엔 색색의 풍선을 붙였다. 원래는 헬륨가스를 넣어 알아서 떠다니게 하려고 했는데, 아내는 그냥 불기만 해도 풍선이 떠오르는 줄 착각했다고 했다. 무드등만 아주 약하게 켜진 거실에서 같이 풍선을 불다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작게 웃었다.


예정보다 음식 준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레이스가 화려한 빨간 드레스를 입은 도로시의 얼굴은 무표정이었다. 뭔가 여러 명이 뭔갈 준비하는 것 같은데 뭔지 모르겠으니 일단 주시하고 있어볼까 라는 듯 표정을 풀지 않았다. 커다란 별 모양의 노랑 분홍 민트색의 접시 위에 복숭아와 사과가 올려졌다. 오전에 도착한 떡케이크도 중앙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도로시는 아기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저녁 먹을(먹일) 시간이 조금씩 지나고 있었다. 난 떡케이크를 조금 떼어다가 조금씩 먹이며 달래고 있었다. 도로시는 의연했다. 징징거리지 않았다.


아내와 나와 처제는 옷을 갈아입었다. 홈웨어만 입고 축하할 수는 없었다. 작년 이날엔 만석꾼 같은 한복을 걸치고 화려한 조명과 공간에서 만인의 축하를 받고 있었다. 100D는 삼각대와 함께 세팅되어 있었고 우리는 부랴부랴 도로시 드레스의 품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스타일로 갈아입었다. 아내는 얼마 전 내가 사준 원피스를 입었다. '남자가 고른 여자 옷'은 위험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이번 선택만큼은 아내도 반품 및 환불을 하지 않았다.(사실 당시만 해도 그럴 시간은 없었다.) 아내는 아름다웠다. 홈웨어를 입어도 아름다운 여자였지만 화려한 디자인의 원피스를 입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우린 도로시를 둘러싸고 후다닥 촬영했다. 도로시의 뺨을 구기며 뽀뽀했다. 아내의 한쪽 어깨에 손을 올렸다. 늦은 밤 확인한 사진 속에 도로시는 동그란 눈과 보조개가 예쁜 뺨으로 귀엽게 웃고 있었다. 그 옆에 아내는 반짝거리는 눈빛을 동그랗게 뜨며 인형 같이 웃고 있었다. 작고 갸름한 얼굴과 야윈 뺨이 안쓰러웠다. 첫날 마주한 여전한 소녀 얼굴, 곱고 수려했다. 더 아름다워졌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첫돌과 두 돌 사이 도로시는 표현력이 많이 늘었다. 팔다리도 길어지고 몸이 부쩍 커졌다. 하지 말라는 것을 굳이 하려고 하면서 나와 눈을 지그시 마주치며 히히히 웃는다. '엄마 아빠가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너무 하고 싶고 지금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한번 봐주는 게 어때, 한번 그다음 또 한 번 더 한번 봐주는 것도 좋겠지.'라고 이마와 볼과 눈썹에 쓰여 있다. 어제 본 구름과 아까 본 자전거와 새와 포크레인, 할아버지 할머니 이름과 장난감을 제대로 조립하려면 어디에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오래전부터 강조한 휴대폰은 만지지 않고 커다란 화면(TV)으로 틀어준 아기 상어는 계속 보고 싶다고 말한다. 권선징악과 약속과 조건을 걸고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응아 기저귀를 갈고 외출을 한다. 인사를 가르친다. 도로시는 엄마 사랑해요. 엄마 미안해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빠 안아줘요. 아빠 도와줘요. 아빠 이거 해줘요. 도로시 못해요. 엄마 손 잡아줘요. 아빠 손 잡아줘요. 배게 갖다 주세요. 이불 갖다 줘요. 도로시 빵 좋아해요. 크앙...이라고 말하며 손을 잡는다. 자신만 아는 어디론가 향한다. 목을 끌어당겨 깊이 안아준다. 뺨을 비빈다. 목덜미와 가슴팍을 만지작 거린다. 닿으려 손을 뻗는다. 하마처럼 입을 벌린다. 입을 맞추며 쪽 소리를 낸다. 날아갈 듯 달려간다. 부딪칠 듯 달려온다. 목마를 해주면 귀에 손가락을 넣고 간지럽히거나 머리를 부스스 휘젓는다. 자기 머리가 부스스해지면 묶어달라고 앞에 깡총 앉는다. 스트레칭을 할 때마다 따라 하려고 난리다. 앞으로 뒤로 왼쪽 오른쪽 휘적휘적 젖히면 자기도 따라 한다고 갸우뚱갸우뚱 휘청거린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을 같이 보다가 광활한 평원과 넘실거리는 해수면, 높고 거대한 하늘이 나오면 "예쁘다."라고 중얼거린다. 창밖 멀리 커다란 트럭이 지나가는 육중한 소리가 들리면 달려와 "무서워요" 라며 안긴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며 손에 만져지는 모든 것을 같이 느끼고 설명해주고 공감하려고 한다. 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로 수십 분동안 중얼거리기 일쑤다. 엄마 아빠라는, 가장 가까운 사람과 한국어로 대화하기 위해 도로시는 조금 알고 있는 것은 더 많이 알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듣고 말하기를 반복하며) 아는 것으로 만들려고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이런 아이를 어떻게 낳았냐며 아내에게 자주 묻는다. 이렇게 신비로운 존재가 어떻게 우리와 이토록 가까운 곳에 있게 할 수 있었냐며.


수연, 그대가 있어 가능했다. 피, 땀, 눈물, 불면과 몸살, 실신의 730일, 나의 사랑, 나의 첫사랑, 나의 여자 친구, 나의 아내. 잠들어도 잠들지 못했고 먹어도 먹지 못했고 웃어도 웃지 못했다. 내가 곁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시간보다 홀로 피로와 외로움과 막막함과 분투했던 시간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표현의 모든 방식을 동원해도 지나간 시간을 재연하고 보상하며 개선하기란 불가능하다. 고마운 마음은 궁핍하기만 하고 함께하지 못한 물리적 시간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난 아마 더 해주지 못한 것들을 완전히 채워 우리가 만족할 만큼 배려하지 못할 것이다. 가정은 허황되었고 때때로 난 매우 무심하고 무례했으며 이해하지 못하고 괴로움을 가중시키기도 했었다. 생채기가 줄어들 날이 없었고 힘이 닿는 대로 다양한 시도들로 대신하려 했지만 얼마나 가닿았는지 효력이 있었는지 묻지도 알지도 못한다. 말과 글뿐인 남편, 연인, 아빠는 아니었을까. 거의 확실하게 그러할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좋은 점을 과장해서 알아주는 것만큼 난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다. 한 여자가 엄마로서 2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그 훨씬 이전부터) 자신과 우리의 생에 맞서 싸우는 동안 내가 어떻게 무엇을 함께하고 돕고 위로하고 비전과 가능성과 긍정을 보여줬는지 잘 모르겠다. 판단에 앞서 스스로에게 매주 낮은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아마 실제로 그랬을 것이다. 도로시의 두 돌은 오직 아내가 있기에 가능했다. 


우리는 불을 끄고 두 개의 초에 불을 붙였다. 애플 뮤직에서 찾은 배경음악을 틀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도로시의 생일 축하합니다." 손뼉 치며 큰 소리로 노래 불렀다. 도로시도 따라서 손뼉 치며 같이 불렀다. 후하고 초를 부는 법을 알려줬다. 도로시는 동그란 입으로 바람을 보냈지만 -행여 입술이라도 델까 초는 멀었고- 아내가 도와주고 나서야 겨우 끌 수 있었다. 배고팠던 도로시는 밥도 떡도 맛있게 먹었다. 조금 지나 배가 빵빵해졌다. 정리하는 동안 아기 상어 영상도 실컷 보여주었다.(원래 하루 2번 이상은 안된다) 도로시는 이제 피곤하면 고개를 기울여 기댈 줄 안다. 머리가 스르르 내 팔에 닿았다. 눈이 감기고 있었다. 다리를 배도록 눕혀주었다. 곧 속눈썹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눈을 감았다. 얼마 후 들어 올려 잠자리를 옮겨 주었고 우린 남은 공간을 정리했다. 다음 날 한번 더 조용히 파티했다. 도로시의 전부, 엄마 두 살을 맞은 아내를 기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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