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자꾸 넘는다면 선을 자르는 수밖에

2020년 1월의 기록

by 백승권

1월 1일

좋아하는 광고를 계속 만들고
영어 공부를 계속하고
부당한 상황에 저항하고
너무 많이 생각하거나
너무 쉽게 단정 짓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계속 사랑하고
계속 글을 쓸 것, 계속
증오를 줄일 것
약자의 편에 설 것
아내의 선물을 계속 살 것
소리를 덜 지를 것
잘 듣고
더 신중히 말할 것

1월 4일
바이킹스 화법으로 말하면
최근 반년은 신이 내 운명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는 것 같다.

1월 7일
야근 택시 안에서 쓰는 글에 긍정과 희망을 담기란 어렵다. 특히 오늘 같은 날엔 더욱. 관계와 대화에는 선이란 게 있다. 선을 자꾸 넘는다면 선을 자르는 수밖에. 다리를 불태우는 수밖에. 오래전부터 관계를 절단하는 방식이 있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채 이제 모든 것이 정해졌다.

1월 12일
나를 연기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1월 12일
지금 회사로 이직 후
극심한 무기력증을 너무
여러 번 겪는다.

1월 13일
내가 꿈꾸는 미래에 당신의 자리는 없다.

1월 17일
많은 시도를 했고 모두 실패했다는 중간 결론

1월 18일
누구나 실패의 경험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여기는 총체적 실패의 공간이고
지금 시기는 총체적 실패의 시간이다

1월 19일
아무리 훈련해도
나쁜 상황이 지속되면
과녁은 내쪽으로 기운다.
내가 나를 찌르게 된다.

1월 21일
끝이 온다

1월 23일
잃어버린 물건을
잊고 있던 주머니 속에서
발견했을 때

내 모든 방황과 혼란이 결국
내 망각과 부주의 때문이었나
싶은 것이다.

1월 23일
자책이라는 소재 없이 글을 쓸 수 있을까.

1월 23일
싸우지 말자 와
피해자가 될 것인가 의
영원한 대립

1월 27일
며칠 진정하고 다시 읽는다. 어둡고 검붉은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상대가 진짜 전하려 했던 의도를 헤아리려 시도한다. 적의를 지운다. 당시 상황에 대한 관점과 해석들이 100% 일치하는 건 아니다. 건조하게 보면 상대 입장에서는 모두 맞는 말, 잔류를 거부 선언한 내 입장에서 보면 이젠 소용없는 말.


1월 28일

언어가 앞지를 수 있는 감정은 없다.
언어는 늘 늦는다.
늘 뒤에 있다.
감정의 저 편에.


1월 29일

모두가 말이 없고
모두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모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두의 모든 날들
모두의 세계
모두 행복해 보이지 않아서
모두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게 괜찮은 듯
말을 건다.
인사를 하고
모든 게 괜찮은 듯
헤어진다.
모든 게 보이지 않을
모든 마지막 날이 어서 오길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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