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잠긴 문

2019년 12월의 기록

by 백승권

12월 4일

이제 새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두려움이 앞선다. 또 예상 밖의 충격과 고통과 절망으로 기력이 소진되어 동력을 상실하고 뒷걸음도 치지 못한 선 채로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제발 끝나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부들부들 떨게 될까 봐. 지난 프로젝트 때 5kg 빠져서 셔츠가 팔랑거렸다.

타율이 낮았다면 (타인의 평가가 절대적인) 이 업을 여기까지 끌고 오지 못했을 텐데 새로운 환경에서 제시하는 안마다 반대와 진행 단절, 불통을 겪는다면 이건 판단기준이 기존과 완전히 다르다는 건데 적응과 변화가 필요한 게 아니라 새로운 성향의 새로운 인력의 영입이 근본적 해결책 아닐까.

이런 고난이 내 커리어의 성장과 확장에 도움이 될 거라 여기지 않는다. 긴 고통에서 배움을 얻는 게 새로운 환경의 순리라면 거부한다. 더 이상 쥐어짜지 않는다. 멈춘다. 물러선다. 결국 나의 현재를 지금까지 응축된 기량의 총합을 경청하고 인정하고 도입하여 타협의 여지까지 끌어오는 곳을 검색한다.


12월 6일

내가 먼저 대화를 멈춘다

고통으로 배웠고 몸이 먼저 반응한다

상실과 소모는 없다

몇 달 전과 다른 나고

배움도 웃음도 없다

가만히 물만 따르고 있는 것 같다

컵도 없이 테이블 위에

남의 집이라 여기며

언젠가 젖은 양말로 신발을 신고

들어온 문으로 나가겠지

연락은 없고

문은 밖에서 잠겼다


12월 6일

최악이 아닌 하루였다고

긍정하는 건 매번 서글프다

그래도 좋은 일이 있었다

지인과의 대화

좋은 게 들어 있던 럭키박스

의외로 맛있던 냉동피자

애석한 연락도 있었지만

말투가 사려 깊어

다치지 않았다


12월 20일

수많은 책들과 문장, 명사들의 말속에서 '고통'은 뭔가 견디고 나면 좋은 것, 견딜 가치가 있는 것, 다르게 해석되어야 하는 것 등등으로 다뤄진다. 문제는 고통을 겪는 실시간 상황에서 저런 말들은 아무 효능이 없다는 거다. 다 지나갔거나 타인의 고통을 관망하거나 해석하려 할 때 저런 말들이 나온다.


12월 27일

습관적으로 착각을 경계한다.

스스로의 감정, 이성, 판단, 결정을

잘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


그럴수록 상대의 반응에 민감해지는데

상대도 나와 비슷할 거라는 가정이 생기면

기준이 모호해지고 소요시간이 길어진다.


나를 믿을 수 없고

상대를 믿을 수 없다가

사고의 고립에 이르게 된다.


12월 31일

올해의 사건과 사고: 이사와 이직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