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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우유 May 23. 2023

면접 날과 모나미 볼펜

 기억이 맞는다면 2013년 4월 29일. 아침 여덟 시였나, 일곱 시였나. 정확한 것은 돼먹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서울이라는 곳도 누군가의 정다운 고향일 텐데, 서울놈들 지들밖에 모르고 싸가지 없는 시간대에 지방 사람들을 집합하게 하는군. 하지만 오게 해주셔서 눈물 나게 감사합니다, 하는 버릇없고 짠한 생각들을 했다.


 여덟 시 집합을 위해선 네다섯 시에 깨야만 했다. 언제 또 있을지 몰라 초조하고 귀중해지는 기회였으므로. 조금은 고르지 못한 피부에 두껍지만 얇아 보이게 화장품을 덮고, 머리칼이 긴장에 흔들리지 않게 화학 제품의 효능을 빌려 고정시켜 두었다.


 종합운동장역에 내린다. 똑같지 않은 옷을 입고 있지만, 똑같이 표정이 없는 사람들의 군무 같은 동작에 둘러싸인다. 핸드폰 스크린을 몇 번이나 고쳐보며 예정된 출구로 나와 큼지막한 버스에 올라탄다. 버스는 훗날 우리를 옭아맬 우리에 도착해 나를 포함한 수십 명의 운명 공동체를 내려놓는다.


 귓불에 내려앉은 크지 않은 크기의 모조 진주 귀걸이를 만지작거린다. 입술에 혈기가 자꾸 죽는 것 같아 자꾸만 화장을 고치게 된다. 이상하군. 면접 날치곤 제법 초연했다. 큰 불안함과 동요 없이 대기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이겨야 할 사람들 사이에서, 초조하지 않은척할 수 있었던 것은 우습게도 어제, 오늘의 긴장을 이기지 못해 한껏 예민해진 여자친구였던 내게 이별을 고했던 남자친구 때문이었다. 미친 거 아냐? 내가 억울해서라도 오늘 꼭 잘하고 말 거다 생각했다. 괘씸함에 정신이 또렷해졌다.


 생각대로 잘했다.

 죄다 재미없는 쥐색, 빛바랜 은색 정장을 입은 아저씨들과 생기를 잃은 대가로 경력을 얻은, 훗날 나의 선배들이 될 사람들 앞에선 어쩐지 별 긴장이 되지 않았다.


 그날 나는 위아래 다 합쳐 십만 원이 채 되지 않는 재미없는 한 자루 모나미 볼펜 차림이었다. 재미없게 입어서였을까, 내 안의 모든 모서리를 없는 척 감추어 푹신한 구체 안에 어떻게든 욱여넣었기 때문이었을까. 동그라미나 별 모양은, 또는 사다리꼴은 없어야 한다고 믿는 네모난 곳에서는 고맙게도 몇 주 후 합격통지를 띄워 주었다.


 아쉽게도 합격통지를 받던 그날의 짜릿한 추억은 빛이 쉽게 바랬고, 햇수로 8년 차가 된 회사 생활에선 여전히 둥그런 마음을 다쳐오기 일쑤다.


 나 어떻게 생겼었더라.

 내 성격 왜 이래졌지, 나 왜 싫다고 못 하지.

 우유부단하던 내 성격은 왜 8년 차가 돼도 고쳐지질 않지.

 내 잘못 아닌 거라고, 그 새끼가 싸지른 똥 내가 치웠는데 왜 나만 모질게 혼내느냐고 왜 말 못 하지.


 역시, 그날 너무 재미없게 입어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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