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에서 재택근무가 처음 시작된 것은 상당히 늦은 시점이었다. 2020년 초에 발발한 코로나가 너무도 당연해졌을 때, 모두가 마스크 쓰기에 익숙해져 벗는 게 어색한 지경이 됐을 때에야 우리 회사는 재택근무를 겨우 시작했다. 3개 조의 재택근무조가 3일씩 재택근무를 이어서 하는 식이었다. A, B, C조로 얼마 되지도 않는 부서원을 나누고, 워킹 데이 20여 일을 살뜰히 나눴다. 월·화·수 3일은 A조, 그 주 목·금과 다음 주 월요일을 B조, 다시 화·수·목 3일을 C조가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나누다 보면 한 달에 8일을 하는 조가 생기고, 6일을 하는 조도 생겼는데 8일인 조에 속하기 위해 모두가 조금씩 눈치싸움을 했던 재택근무 초반의 긴장감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회사에 속한 인력이 몇 명 되지 않거나, 또는 회사의 보안 시스템이 조금 가볍기라도 했다면 모두의 재택근무는 아마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 회사는 둘 중 하나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인간들이- 정말이지 너무 많았고, 보안 시스템은 내가 들어본 곳 중 최고로 무거웠다. 특히 보안 시스템에 관해서라면 할 말이 참 많아진다. 우리 회사의 보안 시스템은 ‘센싱’이 아니라 ‘결박’에 가깝기 때문인데…… 가령 다른 회사의 보안 시스템이 회사의 기밀이 외부로 새는지 모니터링하는 쪽에 가깝다면, 우리 회사의 것은 모래주머니를 양발에 100킬로그램씩 매달고 비밀을 쥐고 외부로 달려 나가지 못하게 막는 쪽이다. 이런 형태의 보안 시스템을 인력 규모로는 빠지지 않는 수준인 우리 회사에 접목하면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의 서막을 화려하게 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당연하게 예상되는 혼선이 매일 연이은 사실로 돌아왔다. 누구 집에서는 몇 번이나 튕겨서 원격 근무 시스템에 접속조차 하기가 어려웠고, 누구 집에서는 화상 회의 시스템과 원격 근무 시스템을 동시에 가동할 수 없었다. 사무실에선 원활하게 브라우징할 수 있던 웹페이지들이 원격 근무 시스템으로 접속하면 너무 느려 새 페이지 로딩까지 수 초를 기다려야 했다. 근무 환경의 차이가 극심한 탓에 더러는 재택근무를 포기하고 사무실 근무를 택하기도 했다.
그 힘겨움 위에 재택근무가 만들어낸 새로운 낙원도 함께 열리고 있었다. 당시 편도 2시간을 자랑하던 나의 통근 시간은 재택근무에선 단 5분도 필요하지 않았다. 느릿느릿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눈곱도 떼지 않은 채로 컴퓨터 부팅을 하고 가만히 하품하면서 접속을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안방에서 서재의 PC까지 단 5미터. 도보 수 약 여덟 걸음. 그게 재택근무 시절 나의 통근의 전부였다. 평소에는 7시 반이면 끊기는 막차를 타기 위해 5시 40분에는 일어나 준비를 시작해야 했지만 재택근무를 할 때는 시스템 접속에 필요한 5분여의 시간만 투자하면 되었다. 8시 25분에 일어나면 8시 30분에 출근할 수 있었다. 머리를 감지 않아도 되었고, 옷도 정갈하게 입을 필요가 없었다. TV 속 유튜브 앱을 띄워서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모니터 속 활자에만 집중했다. 업무 효율이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놀라울 정도로 개선되었다. 출퇴근에 드는 에너지를 전부 아낀 덕에, 또 싫은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재택근무를 시작한 지 반년 정도 지나니 코로나가 갑자기 기승을 부렸다. 회사에서는 3개 조가 돌아가면서 3일씩 재택근무를 하게 하던 정책을 바꾸어 부서 정원의 3할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재택근무를 허용했다. 스무 명 남짓인 우리 부서에서는 하루에 여섯 명 정도가 재택근무의 행운을 쥘 수 있었다. 코로나 확진자 수 그래프가 급격히 상승세를 띠게 되자 재택근무는 주 2회에서 주 3회가 되었다. 매주 3일씩 행복이 확실하고 착실하게 주어졌다.
부서원 모두가 재택근무에 만족했던 건 아니었다. 사내 식당에서 밥을 꽤 잘 챙겨주는 편이라 집에서 끼니를 놓치게 되어 불편하다는 프로님도 있었고, 재택근무를 하면 집에서 애를 같이 돌봐야 해서 부산스럽다는 프로님도 있었다. 재택근무에 가장 불만족했던 건 우리 상무님인 것 같았다. 상무님은 화상 회의 시스템에 적응하는 데 오래 걸렸고, 화상 회의에 참석한 참석자가 마이크를 켜고 끄기를 조금이라도 버벅대면 이래서 재택근무는 불편하다며 푸념하기 일쑤였다. 별로 보고 싶어 한 적도 없을 것 같은데 재택근무를 하다가 출근한 부서원을 마주치면 재택근무를 하도 하다 보니 얼굴 까먹겠다는 소리를 하셨다.
재택근무의 평온함과 안락함 속에 젖어 든 나와 몇몇 부서원들은 상무님의 눈총 아래 재택근무가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할 때마다 왜 그가 저렇게나 재택근무를 싫어하는지 유추하기 시작했다. 자리에 없으면 일하는 게 티가 안 나서 그렇다, 그냥 자기는 재택근무 못 하는데 아랫것들이 재택근무 한다고 집에서 시스템 접속하는 게 보기 싫어서 그렇다 등등 여러 논의가 오간 끝에 우리는 그가 ‘오랄 때 오고, 가랄 때 가는’ 부서원의 모습을 바라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지나가다 무언가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자리에 불러서 그걸 물어보고 싶은 거였다.
한 달에 최대 12번이던 재택근무 일수는 몇 달 전 반토막이 되더니 3월에는 반의 반토막이 되었다. 현재 우리 부서 사람들에게 주어진 재택근무 일수는 월 2회가 전부이다. 혹자는 월 2회는 뭐냐고 묻는데 그건 생색이다. 재택근무를 아예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는 조금 머쓱해서 겨우겨우 짜낸 일수인 것이다. 그사이 나는 인생 최대의 스트레스가 있던 2018년에 터지고서 5년 만에 다시 터진 뒤 몇 번이나 재발하는 입술 수포를 견뎌야 했고, 브라 후크를 채우지 못할 때까지 어깨가 망가졌다. 사무실에서 매일매일 상무님과 부장님들을 만나다 보니 휴먼 디톡스가 되지 못해 온몸에 울화가 가득 쌓였다.
오늘은 재택근무가 전면 폐지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 달에 단 두 번 주어진 재택근무의 행복이 내일과 모레 예정되어 있지만 여느 때만큼 후련하게 즐겁지 않다. 언젠가는 5분 만의 출근도 없어지고 말겠지. 회사에 나가는 동안 매일매일 메신저로 해도 될 말을 굳이 자리에 불쑥 찾아와서 하기를 즐기는 부장님 차장님들이 한 번 자리에 다녀갈 때마다 수명이 줄어드는 기분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때그때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면서. 묻는 말에 재깍재깍 대답이나 하면서. 얼굴에 괴로움을 한 겹씩 얹었다 주말에는 얹힌 괴로움을 급하게 벗어내 보겠다고 있는 힘껏 애쓰면서. 재택근무가 일상이던 시절 반짝 내게 함께하던 업무 효율이란 건 그저 코로나가 잠시 불러일으킨 봄철 아지랑이 같은 게 아니었나, 그런 생각을 꿈꾸듯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