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우유 Oct 22. 2023

안쓰러운 이유들이 가득한 토양을 딛고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입사 10주년을 앞둔 직장인인 내게 묻고 싶은 질문이 있을지를 인스타그램으로 받아보았는데, 그중 한 분의 DM 앞에서 오래도록 숨을 죽였다. 그러게요, 어떻게 제가 이럴 수 있었을까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모두 사라진 이때라지만 사실 둘러보면 20년 30년 꾸준히 자기 일을 해온 분들도 많다. 다만, 한 직장에서 오래간 버티는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이전보다 적어졌다. 이직을 하면서 몸집을 키워 나가는 어떤 생존 또는 성장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떤 직장에서 벌어지는 부조리를 감당하기엔 각자의 인생이 너무 소중했을 수도 있겠다. 나의 경우엔, 나의 경우엔……. 내가 버텨 온 세월은 극한의 자기 방어기제에 기원하고 있다. 내가 살아내기 위해서는, 내 한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회사가 꼭 필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어른으로 불리는 나이를 지나가며 회사가 가장 절실해졌던 순간은 이사를 앞둔 때였는데, 그 절실함은 은행에서 대출 심사를 앞두고 이런 갖가지 서류와 정보를 요구해서 생겨난 것이었다. (1) 신분증(이미 있음) (2) 임대차 계약서(확정일자 직인이 찍힌 것 또는 주택임대차 신고필증) (3) 계약금의 5% 이상 납입했음을 확인하는 계약금 영수증 (4) 임대인 내용증명 통지서를 본인이 직접 수령 가능한 주소 (5) 주민등록등본(모든 정보 공개가 필요함) (6) 주민등록초본(과거 주소, 변동내역 포함) (7) 가족관계증명서(상세) (8)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건강보험관리공단에서 발급, 주민등록번호 표시 필요) (9) 재직증명서(회사 직인이 찍힌 것) (10) 현 직장의 작년 기준 갑종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역시 회사 직인이 찍힌 것)…….


   오늘 오후엔 지금 사는 집으로 들어올 때 썼던 계약서에 쓰인 정보를 필요로 한다는 반려자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무더기로 쌓인 서류들 사이로, 황갈색 서류 봉투에서 계약서와 앞서 언급한 갖가지 서류들을 분류하는데, 서류를 들춰보다 발견한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는 잠시 나를 생각에 빠지게 했다. 내 최초의 건강보험 자격은 아빠에게서 비롯한 것이었다는 걸, 그때야 알게 되어서였다. 나의 생년월일이 자격취득일로 적혀 있었고 바로 그 옆에,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아빠의 직장명이 쓰여 있었다. 그로부터 5년이 채 되기 전에 그 자격을 득한 사업장이 엄마가 재직하던 학교로 바뀐 기록이 보였다. 아빠가 아빠로서의 자격을 거의 상실한 시점일 테지. 또 그로부터 10년이 채 되지 않아서, 엄마는 그런 생활력 없고 자신보다 훨씬 덜 성실했던 아빠를 포기하게 된다.


   실직을 하고, 다음 직장을 어렵사리 구하고, 그 직장에서마저 성실하지 못해 조금씩 삐걱거리던 내 청소년기의 아빠……. 나는 아빠가 아빠의 자격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순간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바라보고 있던 몇 사람 중 하나였다. 동시에 아빠의 무수한 잔 부탁을 칼같이 거절하며 가장으로 우뚝 서는 엄마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기도 했다. 가난한 시절에도 어떻게든 인생이 살다 보면 살아지리라 믿었던 엄마, 돈을 아끼면 티끌이나마 쌓이리라 가르쳤던 엄마.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엄마의 자신감은- 교사였던, 절대 월급이 끊길 일이 없었던 공직자의 신분에서 비롯되었음을. 직장에서 해고당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적으며, 신분이 확실하여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가 수월한, 정년이라는 것이 보장되는 신분을 가진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었던.


   아빠가 망가뜨린 살림살이가 엄마의 근면 성실함으로 조금씩 일으켜 세워지는 것을 보면서, 아빠 때문에 졌던 모든 빚을 탕감하고 시원하게 웃던 날 엄마의 입꼬리가 올라가던 각도를 기억하면서, 취직을 하기 이전부터 직장인으로서 나의 자아도 조금씩 형성되었을 것이다. 궂은날이 있어도, 눈앞이 흐려지는 순간들 앞에 조금씩 무릎을 꿇으면서도, 월급을 놓치면 순식간에 초라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불쑥 퇴사해 버리고 나면 여기보다 더 좋은 조건의 직장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어디 가서 유니버설하게 통용되지 못하는 내 일에 대해 부족해질 수밖에 없는 자신감. 내가 10년을 버틴 토양엔 그런 안쓰러운 이유들만이 가득하다.


   ‘가장 뿌듯했던 때가 언제일까요? 예를 들어 나 이제 어른이구나 했던…!’


   어떻게 10년을 버틴 것인지 묻던 질문에 이어 이런 질문도 받았다. 나는 그 질문에 진급하면서 연봉이 제법 올라 준 덕분에 이사를 앞두고 크게 대출을 받을 수 있었을 때라고 답했다.


   큰 회사의 개미만도 못하게 작은 직장인으로 일하면서, 내 일로 누군가에게 자랑스러웠던 적도, 내가 자랑할 만한 성과를 낸 일도 없었지만- 내가 입을 옷, 내가 먹을 것, 내 몸 뉘일 집 한 채 빌리는 것까지 내 한 몸 건사하는 것만큼은 누구에 못지않게 성실히 잘 해내며 살아왔다고.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이혼에도(안 할 것이다. 걱정 마시라…….) 의연할 만큼, 사고 싶은 게 눈에 밟혀도 눈에 진물이 나기 전엔 원하던 걸 살 수 있을 만큼, 좋아하는 작가님을 만나러 북토크에 찾아갈 때 선물할 꽃다발의 사이즈를 가격과 타협하지 않아도 될 만큼은 잘 버텨왔다고. 그런 얘기도 답해드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못다 한 그 답을 이 화면을 빌려 여기에서 마친다. 안쓰러운 이유들이 가득한 그 토양을 딛고 여기까지 왔으니 그래도 제법 잘 버틴 것 같다고. 내 곁의 누군가를 안쓰럽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또 최선을 다해 버티겠노라고.

이전 02화 현장에서 보면 사고, 지나고 보면 해프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