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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난다 Feb 05. 2022

사랑에 속고 난 이후

귀엽고도 가여운 환상에 관한 고찰

함께 있으면 혼자 있고 싶고,
혼자 있으면 함께 있고 싶다.
함께 있다 혼자 있게 되면 그립고,
혼자 있다 함께 있게 되면
작은 일로도 서로 다툰다.
그렇게 얼고 녹고 다시 얼고 녹으면서
마침내 한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혹은 그녀가 또한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움이며 질투이며 욕설이며 상처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지루함이며 떠남이며 귀환이며 눈물이다.
누구도 사랑이라는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이렇게 다이내믹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둘러보라.
사랑만큼 환장하게 못살게 하는 것이 있는지.
그릇된 사랑도 있고 인고의 사랑도 있다.
그것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또 있겠는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지닌 인생처럼
행복한 것은 없다.
그것은 축복이다.

- 구본형의 <떠남과 만남>중에서


분명히 '더' 행복하고 싶어서 한 선택이었습니다.

행복이란 화사하고, 따뜻하고, 흐뭇하고, 든든하고 등등 몸이 편안해지는 그 어떤 감각일거라고 상상했기에,

'사랑'하기로 선택하면 저절로 그런 감각들이 찾아와 주리라고 기대했던 것도 같습니다.


한 두 번 '사랑'에 속고 난 이후 생각했습니다.

사랑이 실패한 이유는 충분히 신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어떤 이유로든 가슴이 열리기 시작하면

앞뒤 분간없이 풍덩 뛰어들곤 하는

미숙한 패턴이 문제라고 진단했던 겁니다.

대상을 고르는 신중함과 스스로 준비가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신중함을 갖추고 나면

상상하던 '완벽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신중하려고 애쓰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고르고 고르고, 따지고 또 따져서

선택한 것이 지금의 저를 이루고 있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일까요?

그리 끔찍해 다시는 제 삶에 들이고 싶지 않았던 진상패키지가 어김없이 재현됩니다.

뼈를 깎는 수련을 통해

충분히 우아하고 평화로워졌다고 믿었는데,

그 인고의 시간이 말짱 도루묵이었던 걸까요?


제 생에 궁극적인 목표였던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믿었던 사랑과 평화는

끝내 공존할 수 없는 가치일까요?

이런 제겐 행복 역시 신기루에 불과한 걸까요?


그럴리가요.

하지만 이 양립할 수 없어보이는 두 가치를 연결하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이 있습니다.


'행복', '사랑', '평화'의 의미를 다시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필요한 것은 점검이 아니라 '경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어떤 가치라도 온전히 경험하고 나면

행복의 반대편이라고 여겼던 그것 역시

행복의 다른 측면임을 저절로 이해하게 되니까요.

그렇게 모든 가치가 빛과 어둠을 품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운신의 폭이 훨씬 넓어집니다.

지지고 볶는 사랑의 다이나믹 속에서도

평화를 느끼고 있는 스스로를 만나게 됩니다.

어둡고, 춥고, 못마땅하고, 불안한 상태를

미워하지 않고 보듬어 않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마침내 행복해졌다는 얘기일까요?

어김없이 어두운 밤과 추운 겨울은 찾아옵니다.

그러나 이젠 밤과 겨울이 전처럼 부끄럽지는 않더라구요.

딱 그만큼 편안해졌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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