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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헷 Jan 06. 2021

오직 건강을 위한 여행을 떠나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지금 경상북도의 깊은 산골짜기에 와있습니다. 집에서 차로 쉬지않고 4시간이나 달려 도착한 곳이지요.

이곳은 암환자들의 자연치유를 도와주는 치유센터가 자리한 곳으로, 자연치유 생활습관을 익히고 효과적인 암치료 전략을 세우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3개월 전 진료차 처음 이곳왔을 때 저는 "당신의 병도 자연치유가 가능합니다."라는 말이 간절히 듣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공부해 온 책과 자료를 토대로 저의 병-자궁내막암-도 자연치유가 가능하단 걸 이론적으로는 알았지만, 머리와 가슴의 거리가 때론 삼천리 금수강산보다 먼 것이어서 그 기적같은 일이 '바로 나의 일'이 될 거라는 확신이 선뜻 생기지 않았거든요.


 현대의학 면허가 있으면서도 대체의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으로부터 확인을 받고 싶었습니다. 이 산골 의원 원장님이 딱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왕복 8시간을 달려 도착한 이곳에서 그토록 원하던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도, 자연치유가 가능할까요?"


 긴장해서 궁금한 것도 못 물어보고올까봐 잔뜩 적어간 질문지에서 눈에 띄는 질문은 사실 그것 하나였습니다. 20년 넘게 암환자를 만나온 원장님은 제 심중을 간파하셨던 모양입니다. 많고 많은 질문 중 유독 그 질문에만 제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씀하시더라고요.


"2년 정도 꾸준히 하면 가능합니다."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달려온 시간과 산길을 헤맨 노고가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었죠.





 그날 모든 것을 얻은 기분으로 집에 돌아갔지만, 돌아보면 그건 가슴에서 (실천)으로 가는 더 긴 여정의 시작점에 불과 했습니다. "2년 정도 꾸준히"라는 조건을 이행해야 했던겁니다. 집에서 자연치유를 위한 생활습관지켜보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실패하고 다시 시작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작하고를 반복하면서 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선생님이 말한 2년이라는 시간이 이런 패턴의 2년은 아닐 것 같았습니다.


 좀 더 타이트하게 몸을 관리하는 방법을 배우려는 생각으로 이곳에서 진행되는 암환자 캠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머물며 내 몸과 더 친해지고 앞으로 성실히 지켜갈 생활습관들을 익히는 시간을 가지려합니다.


 처음 아버지가 그런 시간을 가져보라는 권유를 하셨을 때는 두 손을 내저었습니다. 비용도 부담이었지만, 특별한 공간이 아니라 내가 평생 살아갈 익숙한 공간과 일상에서 실천력을 기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없지만 저의 지지부진한 발전과정을 보며 30년 간 유지해온 익숙한 생활패턴을 바꾸려면 특별한 계기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말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제 자신이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하고 집을 떠날 짐을 꾸리며, 내심 차오르는 기대감에 무척 들뜬 저를 발견했습니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유혹을 견뎌야 할 안좋은 음식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내 몸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니. 이보다 큰 호사가 있을까요. 왜 진작에 내게 이런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였습니다.





 첫 날인 오늘은 간단한 오티를 마치고, 첫 저녁식사를 하고 짐을 풀었습니다. 이 산골까지 택배차량이 오가나 싶어 치료에 필요할 것 같은 살림살이를 모두 챙겨왔더니, 짐을 풀어놓은 숙소는 꽤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이보다 아늑한 병실이 또 있을까요



 차에서 미처 꺼내지 못한 짐을 찾으러 깜깜한 밤 숙소를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길을 따라 설치해 놓은 태양광 간이조명이 아니었다면 그야말로 칠흙같은 어둠입니다. 귀신보다는, 고라니나 멧돼지 같은 것들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걱정되는 그런 공기. 후두와 폐부까지 시원하게 얼리는 산 속 공기를 한껏 들여마시며 고개를 드니 밤하늘엔 별이 선명하네요. 오리온 자리가 핸드폰에서도 찍히다니요. 아, 이렇게 되면 이곳에서 쏜살같이 지나갈 하루하루가 벌써부터 아쉬워지는걸요.


 아무쪼록 이곳에서 머무는 시간은 제가 앞으로 마주해야할 변화의 촉매가 될 것입니다. 치유에 가능한 모든 에너지를 집중할 생각이지만 보통의 암환자보다 체력이 좋은 저는 시간이 남으면 이렇게 이곳에서의 시간을 글에 담아 보려합니다. 비록 이곳에 함께하지는 못해도 글을 읽는 동안 만큼은 이 산골의 청량한 공기가 당신에게도 가닿기를 바라봅니다.


숙소 위에 떠오른 오리온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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