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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헷 Jan 08. 2021

산에서 산다는 것; 빈곤 속의 풍요

 이틀째 한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산 아랫동네도 이례없는 한파로 모두 꽁꽁 얼었다지요. 새벽 4시인 지금 밖에서는 공기의 이동속도를 짐작할만한 소음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휘오오오 덜컹 후오오오 콰르릉. 대지에 서있는 거라곤 나무와 흙집밖에 없는 이곳 어디에서 저런 간판이 날아다니는 소리가 나는지 의아하지만 창문 바깥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어 엄두는 나질 않습니다.


 수도권도 2000년대 들어 최강급 한파라지요. 이번 한파는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빙하가 많이 녹아 북극상공을 상회하던 찬 기류가 한반도까지 흘러들어온 거라고 합니다. 춥디 추운 겨울은 아이러니하게도 뜨거워진 지구의 한 단면인 것이죠.


 제가 잠시 머물고 있는 이곳은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봐도 산봉우리 뿐입니다. 탁트인 전경은 일품이지만 바람막이가 없으니 해발500고지를 지나는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곳을 바람골이라고 한다는데 제가 나중에 들어갈 산골은 바람골이 아니기를 두손모아 기도하게 되네요.

식당에서 바라본 전경


 갈수기에 한파가 겹쳐 이곳은 제가 온 첫날부터 부분 단수가 시행중이었습니다. 물도 부족한 시기지만 펌프도 얼어 물이 끌어올려지지가 않는다고요. 병원에 와서 단수를 경험할 것이라곤 예상조차 못했던 일입니다. 다른 숙소 같았으면 컴플레인이 빗발쳤을텐데 깊은 산속이다보니 다들 그런가보다 합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 자연에 왔으니 자연의 법을 따라야겠지요.


 덕분에 저는 하루가 다르게 갈수기의 생존패턴에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하루 두 세번, 서너시간씩 단수를 하는 탓에 물이 나오는 시간에는 재빨리 씻고 간단한 손빨래를 한 뒤 비상용 물을 작은 대야에 받아둡니다. 변기물을 못내리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시설과에서는 3일간 세탁기 사용도 자제를 부탁했습니다. 저는 한 술 더 떠 개인실에선 소변을 세 번 이상 본 뒤에 물을 내리고 있습니다. 정말 필요한 곳에 물이 부족하게 되는 상황을 방지하고자 나름의 방식으로 협조를 하는 셈입니다.



 그래도 이곳은 산속 치고 시설이 양호한 편입니다. 제가 나중에 지을 산장에 비하면 호텔급이죠. 그럼에도 자연이 주는 제약엔 속수무책입니다.

 

 치료를 하러 왔는데 어쩐지 귀산훈련소에 온 것 같은 기분입니다. 저에게는 다행한 일입니다. 덕분에 산속에 지을 집의 구조는 어떠해야하고 무엇을 대비해야할지 예상치 못한 배움을 얻습니다. 산에 가면 화장실은 반드시 물이 필요없는 생태화장실로 지을겁니다.


독일의 생태화장실 (출처 티스토리 My-ecolife / ⓒ김미수)


 누군가는 그렇게 불편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물을겁니다. 왜 거기까지 기어들어가 그런 궁핍을 감수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정작 제가 걱정인 건 물이 심하게 부족해져서 모두 퇴실하라는 결정이 내려오는 겁니다. 할수만 있다면 가능한 오래 머무르고 싶을 정도니까요.


 춥고 물은 좀 부족하지만 이곳엔 자연이 주는 더 큰 풍요가 있습니다. 24시간 산소가 가득한 공기를 공짜로 마실 수 있고 끼니마다 영양가가 살아있는 신선한 밥상을 마주합니다. 사은품으로 보기만 해도 힐링되는 그림같은 풍경도 제공됩니다. 그야말로 빈곤 속의 풍요입니다.


 한평생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는게 당연한 줄 여겼는데, 지금은 물이 쫄쫄쫄 흐르기만 해도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콸콸콸 나올때면 몸둘바를 모를 정도죠. 실은 이 감사한 마음이 물을 대하는 우리의 기본자세가 되어야 하는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온 국민이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가뭄의 단비처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일상의 풍경이 가 되기 전에요.



ⓒ커버이미지 출처 : 유투버 '나는수진' youtu.be/OPTluksTk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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