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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헷 May 20. 2021

그 새벽에 내가 알게 된 것

feat. 설레임

 집으로 걸어가다가 어떤 낯선 사람에게 팔이 낚아채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전에 가까이 지내던 친구였다. 같이 갈데가 있다고 했다. 조금은 들떠보였다. 그는 가면서 설명한다며 나를 이끌었다. 듣자하니 함께 재즈페스티벌에 가고싶단다. 조금 갑작스러웠지만 재밌을 것 같아 함께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그는 사실 1박 2일동안 나와 함께 하는 여행을 기획했다고 했다. 그리 충동적인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좀 의아했지만 '여행'이라는 말에 나의 이성은 이미 반쯤 나가있었다. 자신이 모든 걸 준비했으니 몸만 따라오면 된다는 말은 더 달콤했다. 이미 내 머리속은 오늘 안들어간다고 집에 둘러댈 각종 핑계거리를 찾느라 분주했다. 어느덧 버스는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늦으면 안된다며 시종일관 재촉하던 그는 급기야 뛰기 시작했다. 나도 별 수 없이 함께 뛰었다. 헐떡이며 게이트를 지나 가까스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리가 마지막 탑승객이었다. 자리에 앉자 이륙안내 방송이 시작되었다.


 '재즈페스티벌이라더니 비행기는 타는거지?'

속으로 한 말을 듣기라도 한듯 그가 짓굿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사실 대만에 가는거야. 한국이든, 대만이든 똑같은 1박2일이니까 괜찮지?"

 

 경악했다. 무슨 이런 봉변이. 아니 따봉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려고 했지만 입꼬리와 광대뼈가 하늘로 승천하는 것을 감추기 어려웠다.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같은 여행이었다. 설레는 마음에 출국심사를 안받았다는 사실은 떠올리지도 못했다. 이 긴박한 시츄에이션에 적응하느라 아직 집에 연락도 못했지만 그게 대수랴. 나는 지금 대만에 간다.


 계획이 있다던 그는 사실 아무 계획도 없었다. 대만에 도착해 첫 끼를 먹을때에야 그날 묵을 숙소도 잡혀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 상황은 어쩐지 내 흥미를 더 돋구었다. 핸드폰도 먹통이었으므로 나는 식당에서 아주머니를 붙잡고 근처에 묵을 만한 숙소가 있는지 물었다. 중국어가 잘 생각나지 않아 말문이 턱턱 막혔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한가. 짧은 시간동안 어떻게 신나게 놀까 하는 생각 뿐이었다. 


 거리에서 노숙을 하게 된더라도 무서울게 없었다. 그 또한 추억이리라. 이제 나가서 본격적으로 놀아보자며 그의 어깨를 잡아 이끄는데 익숙한 알람소리가 들려왔다.


삐리리리- 삐리리리-


5시 30분, 새벽잠을 깨우도록 맞춰놓은 알람소리였다.

눈을 떠보니 캄캄한 어둠속에 익숙한 천장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응? ............


 그러나 점점 선명해지는 알람소리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찬란한 거리의 모습이, 방금전까지 나를 사로잡았던 설레임이 모두 꿈이었다고 의식을 흔들어 깨웠다. 알람을 끄고 평소처럼 노트북을 켰다. 일어나면 기계처럼 하는 일이었다. 밝아지는 모니터를 보면서 우두커니 앉아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리는데 한참이 걸렸다. 


아냐, 꿈일리 없어. 아직 놀지도 못했는데.


 여전히 마음은 갑자기 떠나온 여행에 대한 설레임으로 두근거리고 있었다. 꿈인걸 알았차린 다음에도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말거라는 강력한 의지가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심장이 박동할 때마다 낯선 여행지에서나 느낄법한 긴장감과 기대감이 온 몸을 기분좋게 관통했다.


순간 그 신체반응(설레임)을 예전에도 종종 느꼈다는 것, 근데 참 오랜만에 다시 느끼는 감정이란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아, 이게 설레임이라는 감정이었지.'


 이 좋은 감정을 왜 잊고 살았지? 그 감정과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내 방의 익숙함 속에서 의식은 점점 더 자명한 현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설레임 만렙인 덕분에 지난 1-2년간을 내가 너무 재미없게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암 치유라는 엄중하고 막대한 책임 앞에서 설레임이란 감정은 사치라고 치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오랜만에 느껴본 설레임이라는 감정은 암환자 치료에 필수적인 감정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삶이 너무너무 신나고 기대되는 느낌은 암세포 수억개는 거뜬히 녹이고 정화시킬 만큼의 주파수를 가진듯 했다. 아니, 그 감정에는 암이란 자체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이 감정을 자주 느끼며 사는 게 치유의 핵심일 수도 있겠단 직감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이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이 감정은 어디서 온걸까? 


 설레임은 여행에서 왔다. 아무런 준비도 안되어 있었고, 말도 안통했고, 그래서 길거리에서 자게 수도 있었지만 모든 불편한 상황이 재밌게 느껴졌던 , 그게 암치료나 다이어트, 직장 처럼 성공과 실패를 구분해야하는 여정이 아닌 그저 순간순간을 즐기면 되는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여행 속에서 나의 의무란 그저 자신을 즐겁게 만들면 되는 거였다. 주어진 시간동안 나를 즐겁게 하고 새로운 것을 만나게 할 생각에 나는 들떴었다.



 

 실은 삶에도, 지금 내게 필요한 것도 이거란 생각이 들었다.

 성공과 실패를 따지지 않는다면 삶도 그저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다. 누가, 감히, 한 생명삶을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가혹한 일을 행할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자기자신뿐이다. 그러니 이쯤에서 우리는 겸손한 여행자로 돌아가기로 하자. 삶에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의무는 그저 자신을 즐겁게, 편안하게, 행복하게 해주는  뿐이다. 삶을 여행처럼, 정말로 그렇게 대할 있다면 우리는 항상 설레임 속에 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좋은 기분이 우리를 정말로 살게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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