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솔 Nov 20. 2023

선물 적당학개론

반짝이 양말 한 켤레에, 과한 의미 부여 한 스푼

물건이 넘쳐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선물은 참 흔하고도 어려운 행위다. 비싸고 진지한 선물은 부담스럽고, 값싸고 성의 없는 선물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진지함'과 '적당한 성의' 사이 중간을 맞추는 게 참 어렵다.


'선물 적당학개론'이라는 야매 논리의 창시자인 필자가 생각했을 때, 선물에는 삼 요소가 있다. 바로 {타이밍, 실용성, 상대성}이다.

(여기서 상대성이란, '상대방을 얼마나 생각하고 골랐느냐'를 의미한다)


친구 생일을 뒤늦게 알았게 되었을 때, {타이밍}을 중시하는 혹자는 바로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케이크나 치킨을 보낼 것이다. 또, {실용성}을 중시하는 혹자는, 급한 와중에 핸드크림이나 캔들 따위의 실용품을 골라 보낸다. 마지막으로 {상대성}을 중시하는 혹자는, 상대를 위해 가장 적절한 선물을 고민하다가 보낼 타이밍을 놓친다.


필자는 마지막 타입의 인간에 속한다.




선물을 고민하다가 정작 선물을 줄 타이밍을 놓치는 일이 잦다 보니, 부담 없이 줄 수 있지만 기분은 좋은 '소소한 선물'을 조금씩 베풀기 시작했다. 사실 마음이 협소했던 어린 시절에는, 베푸는 만큼 돌려받지 못해서 상처를 받을까 봐 두려워 잘 표현하지 못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고마운 사람들이 생겨났다. 가장 크게 느낀 건 아버지 부고 때다. 마음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을지 몰랐다. 이렇게 큰 일 말고도, 나이가 드니 그저 나를 좋게 봐주거나, 시간 내서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처음에는 고마운 일이 있을 때 밥을 샀다. 하지만 늘 성에 차지 않았다. 밥을 산다는 건 너무 일회적이고 부족했다. 소고기처럼 비싼 메뉴를 사지 않는 이상, 사준 사람도 기억 못 하는 일회성 이벤트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흐지부지하다가 상대가 커피라도 사게 내버려 둔다면, 결국 밥값이나 커피값이 크게 차이 안 나서 감사함의 의미도 흐려지는 시추에이션이 펼쳐진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표현할 일이 있을 때 주로 소소한 선물을 한다. (물론 밥을 살 때도 있다. 염치없는 인간으로 오해 말길.)






나는 나라는 존재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책임져야 하는 '1인 가구의 가장'이다. 게다가 자수성가까지 해야 한다. 고로 비싼 선물은 어렵다. 그래서 소소한 선물로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적당 선물학개론}을 보유하고 있다.


1) 심미성의 영역에 들어가는 선물은 되도록 하지 않는다. 심미성은 주관의 영역이기 때문에 곤란하다. 그런 이유로 향이 들어간 선물은 선호하지 않는다. 향은 취향을 심하게 탄다. 여차하면 좋은 의미로 선물을 줬음에도, 창고에 처박히게 될지도 모른다. (상대는 향이 맘에 안 들어도 드는 척할 테니 믿을 수 없다)

단, 상대가 좋아하는 향이 분명하다면 선물하도록 한다. 얼마 전, LUSH의 로즈잼이란 향을 좋아하는 친구가 생일이길래 로즈잼향 고체 향수를 선물했더니 반응이 좋았다.



2) 선물용이라는 이유로 원가보다 비싸게 받고 있지 않은가 체크하는 것도 중요하다. 선물하기 시장에는 거품이 존재한다. 예쁜 박스 하나 추가됐을 뿐인데 가격이 오천 원씩 뛰는 식이다. 특히 편리해서 많이들 사용하는 '카카오톡 선물하기'의 경우, 인터넷 최저가와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필자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네이버 쇼핑이나 11번가 같은 종합 쇼핑몰의 쇼핑하기 기능 이용한다. 카카오톡으로 보내지 못할 뿐, 배송지 입력 등 편리한 기능은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

(21년 기준 카카오톡 선물하기 거래액 규모는 무려 3조 3천억 원에 달한다)



3) 소소한 선물은 3만 원을 넘지 않는다. 특별한 경우 그 이상도 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것이라면 현금으로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선물 적당학개론 2조와 3조 항목이 모두 비용과 관련된 내용이라고 해서, 비용만 적당하면 막무가내로 선물하는 무지성인은 아니다. 앞서 얘기한 {상대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소소한 선물이라도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어떤 면에서 상대를 위했는지가 중요하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몇 개 풀어보고자 한다.






{태초의 선물, 푸우 인형}


아마 이 태초의 선물이 나의 선물 관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 같은 반 친구가 키즈카페에서 생일파티를 열었다. 그때만 해도 롯데리아가 아닌 키즈카페에서 열리는 생일파티는 매우 생소하고 고-급스러운 파티였다. 그 친구는 얼굴이 도화지마냥 말갛고 길쭉한 남자아이였는데, 반 아이들을 거의 다 초대했다. (아무래도 부잣집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조용한 반 친구 1'이었던 나도 초대받을 수 있었다. 


엄마와 홈플러스에 가서 함께 선물을 골랐다. 내가 원하는 장난감도 맘껏 골라본 적 없는데, 친하지도 않은 친구의 장난감을 고르자니 미칠 지경이었다.


장난감 코너에 걸음을 멈추고 서 있는 나에게, 엄마는 '원래 선물은 내가 갖고 싶은 거 주는 거야. 그러면 아마 친구도 좋아할 거야‘라고 말씀해 주셨다.


이 말을 들은 이후로, 모든 선물을 줄 때 '내가 이 선물을 받는다면 어떨까'로 치환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의미 부여의 시작, 선인장}


푸우 인형이 어떤 선물을 살까에 대한 고민이었다면, 이번엔 ‘어떻게 선물에 의미 부여를 하게 되었는지' 대한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초등학생 때 일이다.


뭐든지 첫 번째는 특별한 법이다. 1학년 화성반이었던 나는, 첫 담임 선생님과 첫 이별을 했다. 전학 같은 특별한 이별은 아니고, 그냥 일반적인 종업식이었다.


하지만 첫 헤어짐이었으니 특별한 것은 당연했다. 헤어짐이 익숙치 않았던 만 7세의 나는 첫 담임 선생님께 선물로 선인장을 준비했다. (아마 엄마 돈으로 산 거겠지) 그리고 연필로 괴발개발 편지를 썼다.

선생님, 물을 조금만 줘도 잘 사는 선인장처럼 이제 저를 자주 못 본대도 저를 잊지 말아 주세요.

소소한 선물에 과도한 의미 부여하기의 시작이었다.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 디지털카메라}


내가 10살 때, 그러니까 2000년대 후반쯤엔 닌텐도라는 신문물이 유행이었다. 닌텐도로 강아지도 키우고 리듬게임도 하고 두뇌게임도 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도 찍고 게임도 하는 요새 애들은 모를 것이다. 사진을 찍기 위한 카메라, 전화를 걸기 위한 핸드폰, 게임을 하기 위한 게임기, 영어 단어 검색을 위한 전자사전이 모두 별개의 기계로 존재했다.


그 시절에 우리 부모님은 동생과 나에게 디지털카메라를 하나씩 선물해 주셨다. 좋은 카메라는 아니었다. 하나에 10만 원 정도 하는 일반적인 똑딱이 디카였다. 딱히 카메라를 사달라고 한 건 아닌데, 사주셨다. 무얼 갖고 싶냐고 물어봤다면, 아마 MP3나 닌텐도, 전자사전을 대답했을 텐데. 갑자기 디카라니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만의 카메라를 가져본 것은 최고의 경험이었다. 카메라는커녕 개인 핸드폰도 없던 그 시절, 초딩에게 카메라가 있다는 것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었다.


스파게티 만드는 사진을 찍어서 지식인에 올리기도 하고, 달팽이 키우는 모습을 블로그에 올리기도 하고, 원더걸스의 Tell Me 춤을 춰서 오디션에 나갈 거라는 반 친구들의 영상도 찍어줬다. 이 기억들이 쌓여, 지금처럼 브런치에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고, 사진을 찍는 어른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가 사달라고 하지도 않은 선물을 한발 앞서 사준 부모님도, 어쩌면 선물의 삼 요소 중 {상대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이었을지 모르겠다.




{연말 선물, 반짝이 양말 다섯 켤레}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친구가 있었다. 같은 학교 동아리 출신이고 같은 업종에서 종사하고 있던 터라 의미가 남달랐던 친구인데, 회사에 치여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안 좋았다. 연말을 맞아 그 친구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바로 '반짝이 양말'이었다.


올해 MZ 세대 사이에서 개성 있는 양말이 유행한다는 글을 본 적 있다. 예쁘길래 '나도 하나 살까' 했는데 한 켤레에 3~4천 원대라 사지 않았었다. 하지만 선물용으로 너무나 적합했다.


Q.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인가? YES.

Q. 취향 타지 않는 물건인가? YES.

Q. 실용적인가? YES.


세 질문을 던져본 뒤, 여러 색의 반짝이 양말을 구매했다. 그리고 과대포장 같은, 다소 과한 맛이 있는 의미를 부여했다.

반짝이 양말은 신어도 티가 잘 안 나. 하지만 그렇다고 반짝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

너도, 나도 마찬가지일 거야.

우리 모두 반짝이는 사람들이지만, 회사에서는 그 반짝거림이 보이지 않아.

하지만 양말처럼 우리는 반짝이는 존재라는 걸 잊지 말자.

오늘 어떤 양말을 신었는지는 나 자신만 안다. 남에게 보이진 않지만, 예쁜 양말을 신은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남몰래 반짝이 양말을 신은 날에, 힘을 북돋아 주고 싶었다. 


올해는 수면양말 세 켤레를 선물할까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모자}


나에게 모자 쓰는 즐거움을 알려준 회사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나보다 한 기수 후배인데, 함께 나갈 사람이 없어 포기했던 국제 광고제를 마침 이 친구가 함께 나가자고 제안하면서 친해졌다. 공모전을 준비하는 과정도 재밌었는데, 운 좋게 수상까지 했다. 덕분에 재밌는 경험을 했다는 고마움에, 이 친구를 위한 선물을 줘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친구가 어느 날 이런 얘기를 한 적 있었다.

'저는 모자 쓰는 걸 좋아하는데, 회사에서 모자를 쓸 순 없으니까... 대신 퇴근할 때 모자를 탁 쓰면 자유로워져요'


앞서 말했듯, 심미성이 들어가는 선물을 위험하다. 향도 향이지만 디자인도 취향을 많이 타는 요소다. 하지만 한번 딜(Deal)을 걸어 보기로 했다. 스트릿 브랜드에서 그 친구 피부톤에 맞는 연한 민트 컬러 비니를 구매해서 선물했다. 도박이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이후로 나도 모자를 쓰는 재미에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모자에 빠진 지 6개월 만에 무려 모자 4개를 사 모았다. 모자는 위험한 취미다.)




1) 내가 갖고 싶었지만, 친구에게 선물했던 푸우 인형. 2) 10살짜리 초딩에게 디카를 선물해 준 우리 부모님.
3) '네 안의 반짝거림을 잊지 마'라는 다소 과한 의미 부여를 한 반짝이 양말. 4) 친구 초상권 문제로 인해 제가 모자 쓴 사진을 첨부합니다.







이 외에도 온열찜질기, 장갑, 그립톡, 페퍼민트 티백 등 뻔하지 않고 FUN한 선물을 주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다.


상대를 위하면서도

뻔하지 않은 선물을 하기 위한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쭈~욱~!






주간 에세이 {이솔 올림}

인스타도 놀려오세요

@solusis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