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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Nov 27. 2023

한국인의 일 년이 짧은 이유

사계절은 피곤해

한국 사람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이번 봄은 유난히 짧은 것 같아”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운 것 같아”

“이번 가을은 유난히 짧은 것 같아”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운 것 같아”


이 마법의 문장을 몇 번 말하다 보면 어느새 계절은 끝나있고, 일 년도 후딱 지나가 있다.


생명력을 잔뜩 응축한 채 조심스레 여린 잎을 틔워내는 봄, 맹렬한 햇빛과 비를 맞아 단단한 푸른빛을 만드는 여름, 마치 인생을 이제야 조금 알겠다고 너털웃음 짓는 중년처럼 바람에 저항하지 않고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가을, 그리고 매서운 눈바람을 그저 묵묵히 견디는 겨울까지.


마치 우리네 인생과도 같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계절마다 제철인 나물과 과일은 또 어찌나 많은지! 사람들에게 시각적 즐거움과 함께 먹는 즐거움을 선사해 주기도 한다. 봄에는 쑥국, 여름엔 삼계탕, 가을엔 전어, 겨울엔 과메기… 어쩌면 사계절은 한국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핑계가 되어주기도 하는 고마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대화 주제가 되어주기도 한다. '안녕하세요' 말고는 할 말이 없는 상대와 함께 있을 때, 괜히 '오늘 춥지 않으세요?' 라든가, '가을 단풍놀이는 다녀오셨어요?' 라든가, '내일은 더 추워진대요' 따위의 말을 하면서 손쉽게 인스턴트 유대감을 쌓을 수 있는 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사계절은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다.


우선 한국인들의 옷장은 반팔부터 롱패딩까지 사계절용 옷을 보관하느라 터질 지경이다. 옷의 유행이 바뀌는 것도, 사계절에 한 번씩만 바뀐다 해도 일 년에 네 번이다. 유행을 따르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대세를 따르기 위해 지출하는 금액도 주기적으로 발생한다.

계절마다 온도에 맞는 옷을 꺼내는 것도 일이다. 특히 부피가 크고 관리가 어려운 겨울옷을 정리할 때면 항상 ‘왜 나는 일 년 내내 여름인 호주에서 태어나지 않은 걸까’ 한탄이 절로 나온다.


알레르기 비염 환자로서 환절기는 또 얼마나 최악인지! 멈출 수 없는 무한 기침이 시작될 때면 또 계절이 바뀌는구나 체감한다.

환절기마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건 언급할 가치도 없다. 날씨가 급격히 바뀌는 환절기 때는 평소와 똑같이 살아도 면역력이 떨어진다. 감기는 기본이고, 입술 포진이 나기도 한다. 아마 계절 바뀌는 환경은 인간이라는 동물 종(Human Species)에게도 무리 되는 환경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계절이 있지만 사실상 계절들이 중첩되어 있기 때문에 막상 계절을 즐길 시간은 매우 짧다. 예를 들어 여름을 즐기려면 물놀이만 한 것이 없을 텐데, 초여름이나 늦여름엔 하지 못한다. 가을의 풍류를 즐길 수 있는 단풍놀이도, 이르면 초록 잎만, 늦으면 앙상한 가지만 보게 된다. 즉, 이전 계절과 중첩되는 시기가 있기 때문에 막상 각 계절을 즐길 시간은 부족하다는 말이다. 이렇게 짧디짧은 피서철에, 혹은 단풍철에 계절을 즐기기 위해 나가면, 같은 생각을 한 수~많은 사람에게 치이는 것밖엔 할 수 없다. 그래서 결국 계절은 제대로 못 즐기는. 일종의 패러독스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개중에서도 최악의 단점은 일 년이 짧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위에 정렬된 단점들을 몇 번 반복하고 나면 일 년이 지나있다. 

그러니까, 옷장 정리하느라 며칠을 소요하고, 알레르기 비염 때문에 며칠을 고통받고, 감기와 입술 수포로 면역력 저하 상태로 며칠을 보내고 나면 얼레벌레 일 년이 지나있다는 말이다. 유난히 일 년을 짧게 느끼는 한국인들, 사실은 사계절 때문이 아닐까라는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이상,

겨울옷 정리하다가 시작된 푸념이었다.



보풀 제거기로 니트 정리하고, 코트 클리닝하고, 빨래하고, 내가 이렇게 옷이 많았나 놀라고, 옷을 개키고 시곌 보니 6시간이 지났다.













주간 에세이 {이솔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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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us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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