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솔 Jun 02. 2023

'저 성수동에서 자취해요'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인상을 준 것인가 싶어 어깨가 올라간다.

{EP.1}


프롤로그


‘저 성수동에서 자취해요.’ 

어디 사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할 때면, 가끔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인상을 준 것인가 싶어 어깨가 올라갈 때가 있다. 5-60억을 호가하는 일명 ‘대장급 아파트’가 즐비한 성수이기 때문이다.
 
꼭 나오는 연쇄 질문이 있다. 


 '월세 비싸지 않아요?' 

그럼 나는 그냥 웃어 버리고 만다.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간혹 생기는 이런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내가 사는 곳은 한강까지 걸어서 3분, 지하철 역까지는 10분 거리고, 강만 건너면 강남이지만. 흔히 생각하는 ‘부자동네’는 아니기 때문이다.


자취할 결심


나의 직장은 강남에 있다. 더 정확히는 가로수길에 있다. 많고 많은 광고 회사 중에 지금의 회사를 택한 것도, 그리고 잘 다니고 있는 까닭도 이 위치 탓이 크다. 입사 후 5개월 동안은 경기 북부에서 강남까지 출퇴근했다. 정확히는 편도 1시간 40분이 걸렸지만, 신입사원의 자세로 지각하지 않으려면 왕복 4시간을 잡아야 하는 거리였다. 
 
4년간 대학생활을 할 때도, 7개월간 두 번의 인턴생활을 할 때도 기나긴 통학 시간을 버텼다. ‘헤엑-! 그렇게 먼데 왜 자취를 안 해요?’라는 식의 질문을 참 많이도 받았더랬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충 표면적인 이유를 답해줬다.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게 편해서요~'

’아직 혼자 살 준비가 안되었어요ㅜㅜ’ 

'집밥이 너무 좋아서요!'


물론 이런 이유가 아예 없는 건 아니겠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역시 이었다. 나는 자수성가해야 하는 사람이다. 월세를 부담할 경제적 능력도 되지 않았을뿐더러, 엄마에게 부담드릴 생각도 없었다. 내가 조금만 더 고생하면 될 일이었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경기 북부와 서울을 부지런히 오갔던 나였기 때문에, 회사원이 되어서도 할만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집에 도착하면 녹초가 되어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육체적 피로’ 만큼이나, ‘정신적 피로’가 심했다. 

나만큼 긴 통학을 하는 친구가 있는 대학생활과 달리, 임시직이었던 인턴 생활과 달리, 신입사원으로서 사회화가 된 어른들과 부대끼며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자 정신적 대미지가 더욱 컸다. 안과 밖의 연결이라는 창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하는 7호선의 까만 창문을 보며, 나의 처지를 끊임없이 비관했다. 본가가 서울인 동료를 보며 자격지심에 시달렸고, 지하철 자리 하나 놓쳤다고 세상 사람들이 다 싫어지는 기분도 끔찍했다. 

가장 싫었던 것은, 소중한 시간을 아무렇게나 구겨 휴지통에 던져- 버리는 시간 같았다는 것이다. 이제 진짜 자취를 시작해야만 하는 인생의 어느 순간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결국 여름이 한창이던 6월의 어느 날, 자취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살기 위한 결정이었다.
 
애초에 강남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이유는 딱 두 가지 었다. 첫째, 월세 70만 원을 주고 고시텔 같은 원룸에서 살기는 싫었다. 둘째, 나름 낭만을 간직하며 사는 인간으로서, 비싼 돈을 주고 내가 속하고 싶지 않은 동네에 귀속되고 싶지 않았다. 속하지 ‘못’하는 동네 아니냐고? 어쩌면 그 말도 맞다. 항상 도시를 벗어나 귀농하고 싶다고 외치던 어머니,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일까. 도시보다 시골을 좋아하고, 번잡스러움보다는 고즈넉함을 좋아한다. 나의 첫 동네가 될 곳은, 대형마트보다 시장과 대형 슈퍼가 붐비는, 사람 냄새나는 동네이길 바랐다. 그것만 충족하면 되었다.






다음 편 미리 보기

인생에 100만 원 한번 허투루 써본 적 없던 나는, 계약금을 꼭 돌려받아야겠다고 다짐했다.(중략) 문자로 일명 ‘먹먹문*’을 보낸 다음에서야 100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