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솔 Oct 18. 2023

생활비 80만원으로 먹고 사는 비결

꾸밈 비용과 식비를 줄이는 나만의 절약 꿀팁

{EP17}


서울살이에서 배운 것
5. 적게 쓰고 많이 행복하기


서울에서 자취하는 1인 가구라면, 월세 포함 얼마의 생활비를 쓰는 것이 적절할까. 한 조사에 따르면, 작년 기준 청년 1인 가구의 월평균 생활비는 161만 원이었다고 한다. 그중 식료품비(48만 원), 주거비(22만 원), 연금/보험료(13만 원), 교통비(12만 원) 순으로 비중이 높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요새 청년들은 그냥 먹고 자고 출근하는 데만, 그러니까 숨만 쉬어도 나가는 비용이 82만 원이나 되는 것이다.

* 출처: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청년(만 19~34세) 대상)


돈을 대단히 많이 번다면, 달에 161만 원 써도 아무 걱정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처럼 나쁘지 않은 수준의 봉급을 받는 데 자수성가까지 해야 하는 타입의 인간이라면, 말은 달라진다. 몇십억 아파트는 꿈도 꾸지 않는다. 그저 내 몸 뉘일 집 하나 사기 위해 티끌 하나까지 악착같이 모아야 한다. 다행히 필자는 스스로의 경제적 사정을 정확히 인지하며 사는 객관적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적게 벌어 적게 쓰는 삶을 실천 중이다.


그래서 한 달에 얼마 쓰냐고? 돈 아끼기에 꽤나 도가 튼 짠순이로서 매달 80만 원을 쓰며 살고 있다. 요새 짠테크가 붐이어서 유튜브만 봐도 생활비 100만 원 쓰는 4인 가족이 허다하다 보니, 1인 가구치고 특별히 적게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소심하게 어필해 보자면, 80만 원에는 집세와 교통비가 포함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끔 모자니 폰 케이스 같은 소소한 선물 금액도 포함된다. 자칭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부족함 없이 사는 월 80만 원 생활자'라며 나름 자부심을 갖고 있다.

 

1인 가구는 스스로 먹여 살리고 놀아주고 교육시켜야 하는 셀프 가장이다. 가장으로서 살림을 꾸리다 보니 적게 쓰고 많이 행복하는 법을 배웠다. 그중 생활비를 아낄 수 있는 몇 가지 생활 습관을 공유하고자 한다. 기본적인 의식주 비용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돈을 잡아먹는 두 가지 카테고리, 바로 <꾸밈 비용>과 <외식 욕구>에서 돈을 아낄 수 있는 법이다.



Pt1. 꾸밈 비용 아끼기

사실 사람이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는 큰돈 필요 없다. 쌀 살 돈만 있으면 최소 굶어 죽지는 않는다. 그런데 가끔 스팸 먹어줘야 하고 치킨도 먹어줘야 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꾸며주지 않으면 죽는 건 아니지만 인생이 재미가 없어진다.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을 만들 수 있는 꾸밈 비용은 필수는 아닐지언정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항목이라, 가치 대비 효율이 높은 소비에 속한다. 하지만 월 80 생활자가 되기 위해서는 줄여야 할 항목이기도 하다. 나는 패션에 무심하고 옷도 잘 못 입는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중요하지 옷가지가 중요하냐!' 하는 반항 심리도 크고, 원체 패션에 무심한 성격이기도 하다. 그런데 말이다, 패션테러리스트도 옷은 산다. 


모방 소비 조심하기

'사람은 물건을 왜 살까?' 나는 '무언가를 갖고 싶다'는 생각 자체에 항상 의심을 품는 편이다. 광고전공에 광고회사까지 다니는 이의 직업병일지도 모르겠는데, 이 세상 모든 메시지가 전부 광고 같다. 광고 표시 없이 TV에 노출되는 화장품 하나도 의심하고 본다. 분명 저 물건이 저렇게 매체를 타는 것은 안 보이는 곳에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쨌든 그런 탓에 내가 느끼는 욕구가 정말 온전히 나의 욕구인지 아니면 마케팅에 의해 심어진 욕구인지 항상 확인한다. 진짜 내 스타일이어서 갖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바이럴 마케팅에 휩쓸려 남들 다 쓰는 것 같아서 따라 사고 싶은 것인가. 그래도 정 모르겠으면, 나중에 이사를 갈 때도 챙겨 갈 물건인가를 생각해 본다. 열에 아홉은 '아니'라는 대답이 나온다.

내 생각에 특히 사회생활을 하면 모방 소비를 쉽게 하게 되는 것 같다. '버는 거 비슷할 텐데, 나라고 저걸 못 사?' 식의 마인드가 육신을 지배해서 진짜 갖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따라서 사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를 '겉치레 비용'이라고 부른다. '나 이만큼 재력 있어' 혹은 '기죽지 않기 위해서'와 같은 이유로, 진짜 갖고 싶은 게 아닌 겉치레 물품을 사는 것이다. 그럴 땐 쇼핑을 하는 손가락을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을 가지길. 내 심장이 물건에 반응하는지, 이걸 사는 이유가 온전히 나 때문이 맞는지.


패션 핫딜 커뮤니티 활용하기

헤비 인터넷 유저인 나도 패션 핫딜 커뮤니티의 존재를 안 지 얼마 안 되었다. 식재료나 생필품 초특가 정보가 공유되는 곳이 있다는 건 알았는데, 패션 핫딜이 공유되는 커뮤니티가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심심할 때마다 눈팅하다 보면 브랜드의 폭탄 세일 정보가 간간히 올라온다. 디자이너 브랜드가 망했다거나, 유명 브랜드의 화끈한 시즌 오프라던가의 이유로 7-80% 할인된 가격에 옷을 살 수 있는 찬스다. 이 사이트를 알고 나서 옷의 원가는 허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초특가와 패션 둘 다에 몹시 진심인 사람들이 친절히 핫딜 정보를 쉴 새 없이 물어다 주니, 내가 할 일은 그저 골라서 쇼핑하는 일뿐이다. 단, 저렴하다고 필요 없는 것을 사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나도 몇 번 당했다. 가격에 혹하지 말아야 한다. 싼 옷을 여러 개 살 돈으로 비싼 옷 하나를 사는 게 나을 때가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참고로 오늘도 50% 이상의 할인 찬스로 만칠천 원에 득템 한 재킷과 이만 원 주고 산 청바지, 육만 원짜리 스니커즈를 신고 길을 나섰다. 

*패션 핫딜 커뮤니티를 구글링하면 몇 곳 나온다. (네이버 카페, 독립 사이트 등)


빈티지 옷 사기

앞서 말했듯, 나의 패션 철학 중 하나는 바로 반항이다. 회사에 때깔 좋은 명품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 속에서,  절복 바지에 풍덩한 티셔츠를 입고 지나갈 때면 짜릿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니크하고 질 좋이 좋으면서도 저렴한 옷이 필요한데, 역시 답은 빈티지다. 처음엔 나만의 옷 취향을 찾고 싶어서 빈티지를 사 모으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어느덧 빈티지 고수가 되었다. 동묘, 동대문, 황학동은 주말 필수 코스가 되었고, 경주 여행을 갔을 때도 심지어 태국 여행을 갔을 때도 빈티지 가게를 들렀다. 빈티지 가게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날아온 구제옷을 건지기도 하고 가끔은 국내 브랜드에서 재고 털기로 버린 새 옷을 건질 때도 있다. 빈티지 쇼핑은 마치 낚시하는 것처럼 쾌감까지 있다.

동묘 벼룩시장, 아름다운 가게, 빈티지 쇼핑몰, 지하철 구제 가게...

그냥 빈티지가게가 눈에 보이면 들어가서 보석을 건지기 위해 휘적인다. 얼마 전엔 아름다운 가게에서 누군가 발리여행에서 샀던 것으로 보이는 초록색 크로스백을 샀다. 발리에 다녀오지 않았어도 누군가의 시간이 담긴 가방을 산 것이다. 빈티지는 정말 매력적이다. 게다가, 저렴하다.

지난여름 최고의 원피스, 빈티지 쇼핑몰에서 2천 원에 득템.
아름다운 가게에서 4천 원에 건진 발리풍의 크로스백, 여름과 잘 어울린다.


Pt2. 식비 아끼기

아아 한국인들을 왜 이렇게 먹는 거에 진심일까. 좋은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화나는 일이 있어도 모두 맛있는 밥으로 해결을 보려고 한다. 물론 필자도 한평생 한국에서만 살아온 코리안으로서, 무슨 건덕지만 생기면 맛있는 음식을 찾는다. 스트레스받으면 마라탕, 축구하는 날엔 치킨, 집밥이 당길 땐 김치찌개, 몸이 안 좋을 땐 쌀국수나 순댓국...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하는 변명도 참 가지가지다. 시도 때도 없이 먹을 것을 찾다 보니 식비가 생활비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허나 요즘처럼 외식 물가가 어마어마한 시대에 짠순이들은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 


외식을 참는 나만의 룰 만들기

나는 외식을 참는 룰이 하나 있는데, 바로 장사의 신에 빙의하는 것이다. 돈을 아껴야 하는데 외식을 하고 싶은 맘이 든다면, 백종원에 빙의하여 '이 메뉴는 원가율이 너무 낮고, 배달료가 너무 비싸고, 매장이 어수선하고, 어쩌고저쩌고' 속으로 전문성이라곤 1도 없는 품평을 해본다. 그럼 외식 욕구가 뚝 떨어진다. 식당에서 먹는 식사가 무조건 맛있을 거라는 기대보다는 약간의 불신과 의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외식 참기가 쉬워진다. 


번외. 카페 편 (아메리카노는 4,500원)

더 깐깐한 게 구는 건 카페 쪽이다. 엔제리너스에서 2년간 아르바이트하면서 각종 메뉴의 원자재를 보며 원가율이 높은 메뉴와 그렇지 않은 메뉴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뷰나 인테리어가 특별하지 않은데 아메리카노가 4천5백 원 이상인 카페라면 가지 않는다. 그 이상이라면 짠순이인 나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진 카페라고 여긴다. 여행에 가서도 지키는 나만의 룰이다. 아메리카노를 6천 원 내고 파는 카페도 있던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런 카페에 가게 된다면 6천 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실 바에 7천 원 주고 라테를 마신다. 맞다, 원가율이 아메리카노보다 높은 라테를 먹는 것이다. 

테이크아웃 커피는 무조건 테이크아웃 전문점을 찾아 천오백 원짜리를 마셔야 하는 나와 달리, 내 동생은 그냥 눈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4천5백 원짜리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나온다. 나는 순간의 편함을 위해 돈을 소비하고 싶지 않은 인간이고, 동생은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돈을 소비하고 싶어 하는 인간이다. 잔소리해도 소용없다.


수육 해 먹기
스스로의 외식 욕구가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단 것을 향한 욕구일 수도, 탄수화물을 향한 욕구일수도 있다. 나의 경우 항상 먹고 싶은 메뉴가 족발이었는데, 이를 통해 외식 욕구의 본질에 고기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 외식 욕구는 간단히 앞다리 한 근으로 해소한다. 

식자재 마트에서 100g에 1,400원 하는 앞다릿살을 한 근 산다. (가끔 극도로 돈을 아끼고 싶을 땐 후지(뒷다리)를 사기도 한다. 후지는 보통 100g에 500원인데 우리 동네 마트엔 신선한 양질의(?) 후지라서 900원을 받는다. 껍데기도 붙어있어서 후지여도 수육으로 했을 때 맛이 좋다) 정육점에서 받은 월계수 잎 두 개와 된장 쪼금, 그리고 카누 하나를 넣고 20분간 끓인다. 그럼 잡내 하나 없는 맛있는 수육이 완성된다.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올린 쌈장과 수육 하나면 외식 욕구가 단번에 사라진다. 막국수니 보쌈김치니 하는 반찬이 없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사 먹는 수육보다 지방이 적어 건강에도 좋고 무엇보다 직접 요리했다는 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엄마의 곳간

혼자 살기 시작하니 쌀 한 톨 사는 것도 다 돈이다. 다행히 참기름, 들기름, 고추장, 된장은 할머니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얼마 전에 처음으로 슈퍼에서 고추장을 샀다. 지금까지는 할머니가 엿기름부터 손수 만드신 수제 고추장만 먹고 자랐는데, 이젠 슈퍼에서 파는 시판 고추장을 먹는다. 뭔가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먹고살자니 방도가 없다. 쨌든 엄마가 주는 식재료는 무조건 받아온다. 그렇게 받아와서 냉장고에서 썩어 나는 경우도 많지만(예를 들어 잔멸치, 비트차... 엄마 미안) 대부분 바닥을 비울 때까지 다 먹는 편이다.


(좌)최고의 동반자 수육. 버섯과 양파를 곁들여주면 좋다. 비록 자른 모양새는 형편없지만, 맛만 좋다. (우) 가끔은 다진 돼지고기를 사 멸치액젓을 부어 만든 태국식 덮밥도 괜찮다





이렇게까지 돈을 아껴 쓰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예를 들어 내 동생) 천 원 아껴서 뭐 하냐는 식의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 생활을 궁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월 80만 원 생활은 나의 선택이다. 인생의 퀘스트라고 생각하면 나름의 재미도 있다. 옷 사는 것보다, 맛난 음식을 먹는 것보다 신나는 게 돈 모으는 재미다. 재산의 규모와 상관없이 현재 상태에 만족하느냐 마느냐는 개인의 선택이니까, 그리고 부가 영원하지 않듯 가난도 영원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