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책 에이전트 Sep 02. 2018

노동의 강에서 낚는 인연

노동의 시간

4월 즈음 사무실 한 켠에 그림책방을 열었다. 책을 가져다둔 지는 더 오래되었지만, 좀처럼 여유가 생기지 않아 OPEN을 올리지 못 했다. 이러다가 올해도 그냥 지나가겠다 싶어 입간판을 냈다. 책방을 연 이유는 에이전트를 하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양한 책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


좋은 책이라도 이런 저런 이유로 한국어판 출간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원서로라도 보게 하자 싶어 많지는 않지만 다양한 해외의 그림책들을 가져다 놓고 있다. 그림책들이 독특하다보니 책방엔 젊은 층, 특히 일러스트와 그림책을 좋아하는 어른들이 주로 찾는다. 그리고 온 사람이 다시 찾고, 그 사람들이 친구들을 데려오는 흐름이다.


책방을 연 데는 목적이 하나 더 있는데, 이건 순전히 업무적인 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에이전시에 편안히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을 주고 싶었다. 요즘의 그림작가들의 무대는 세계다. 굳이 한 곳에 머물러 일을 할 필요도 없고, 한국의 그림작가들은 해외에서도 인정해주는 수준에 와 있다. 하지만 무작정 접근하는 것이 힘든 보수적인 곳인만큼 그들의 ‘문’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일러스트레이터들은 편한 때에 이곳에 와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동시에 그림책을 그리는 신진 일러스트레이터들을 위한 소사이어티를 만들어주고 싶은 속내가 끼어 있다. 그래서 그림책을 읽는 작은 모임을 꾸리게 되었는데 단골 인사들로 자주 만석이 된다. 무리를 해 새 반을 꾸리더라도 예술하는 젊은이들의 연대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림책 모임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다. 각자 가져온 그림책들을 공유하는데, 같은 그림책을 두고도 해석이 다양하다보니 결국 인생 이야기로 흘러간다. 아마 그래서 모임이 잘 유지되고 있는 것도 같다. 요즘엔 자기 이야기를 편하게 풀어 놓을 공간이 없지 않나. 단순히 SNS에 올리는 가벼운 것들 말고, 진짜 자기 이야기 말이다.


인연에는 우연이 없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좋은 사람 옆에는 좋은 사람이 있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비록 노동의 강 위에서 만난 인연들이라도 굳이 선을 그어 관리할 필요는 없다.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 기다리면 어디에서 무슨 이유로 만나든지간에 좋은 사람이 낚일 것이다. 메마른 사회 속에서도 단비 같은 인연은 있고, 그 단비는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작가의 이전글 가뭄에도 콩이 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