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가 갈렸다.
잡지 출간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해외 작가들로부터 연락이 온다. 그림책에서부터 포트폴리오까지 보내온다. 국내 일러스트레이션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에이전시가 덩달아 탄력을 받고 있다.
기쁜 일이 분명한데 한편으로 걱정스러운 마음이 끓는다. 해외 작가들과 달리 국내 작가들이 생각보다 더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둘의 성향 차는 극명하게 갈린다. 해외 작가의 경우, 우리 쪽에서 한 가지를 요청하면 두 개, 세 개를 얹어준다. 우리를 적극 활용하려고 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에이전트라는 시스템에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국내 작가의 경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설득을 거듭해야 한다. 모든 프로세스를 세세히 설명하고 크고 작은 목표를 분명히 전해야 한다. 그럼에도 부담을 느끼고 두려워 한다. 제일 많은 이유가 준비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다 보니 수중에 해외 작가들의 포폴은 쌓여가는데, 정작 국내 작가들의 포폴은 가뭄에 콩 나듯 난다. 해외 작가들의 포폴은 수려하다. 분명 입맛에 맞는 출판사를 만나는 것은 시간 문제이고, 그러는 동안에도 그림책 더미를 만들어 계속 문을 두드릴 것이다. 우리는 그런 훌륭한 포트폴리오를 미룰 이유가 없고, 훌륭하기에 적극 홍보를 할 것이다. 그래서 걱정이 되는 것이다.
에이전시는 작가들이 우아하게 작품 활동에 전념하도록 모든 대외 활동을 전담하는 곳이다. 못 믿을 이유도 없고, 있으나 마나 한 곳이라고 생각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리고 작가들의 준비는, 이미 펜을 잡은 순간, 한 사람이라도 그의 이름을 아는 때부터, 이미 되어 있는 것이다. 완벽한 준비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과거가 부끄럽고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다.
모두의 과거는 촌스럽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 품었던 것들이 촌스러운 것이 아니라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에 어색해 보이는 것이다. 세상에 진화하지 않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있을 수 있을까. 완벽한 채로 멈춰 있는 것보다 다양하게 변화하고 진화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훨씬 재미있다.
누군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당신은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때를 미룰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