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중요한 이유
고개를 들고 앞을 보자, 탐욕스러운 얼굴로 당신을 집어삼키려는 거인이 있다. 이 거인은 ‘성과사회’와 ‘주의력 산업’이다. 수백 년을 성장한 거인 앞에 당신은 한없이 작고 초라해 보인다. 무기력하게 먹히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자! 하지만 아직 좌절하긴 이르다. 한 번만 뒤를 돌아보자. 훨씬 더 거대한 거인이 지혜가 깃든 수염을 쓰다듬고 있을 것이다. 이 거인은 당신이 도움을 청하기만 기다리고 있다. 3000년에 걸쳐 성장한 거인이며, ‘소크라테스' ‘쇼펜하우어' ‘릴케' ‘소로' 등 당대 고독을 지켜낸 지성인들의 지혜다. 손을 내밀어보자. 탐욕 거인은 이제 수염 거인 어깨에 올라탄 당신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 본 이야기다. 우리가 한국에 태어났을 때 이미 성과사회와 주의력 산업은 너무 거대해져 있었다. 우린 마치 사탕 든 어른 앞에 아이와 같아서, 누군가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면 안 돼"라고 알려주기 전에는 거부하기 힘들다.
어떤 책들에서는 개인이 약해져서 외부에 휘둘린다고 말한다. 가령 앞에서 말한 책 <내면아이의 상처 치유하기>에서도 내면에 두려움과 공허함이 있기 때문에, ‘일’ ‘TV’ ‘휴대폰' 등에 빠진다고 하는데,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그런 문화와 산업이 있기 때문에 공허해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쇼펜하우어, 릴케, 소로의 시대보다도 점점 더 고독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고독하지 못한 것은 당신만의 잘못이 아니다. 누군가는 환경을 탓해서는 성장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나약한 사람들만이 환경을 탓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는 오히려 진정한 문제를 직시할 수 없다.
그 와중에 책은 우리의 삶을 지켜낼 수 있게 도와준다. 사유에 대해서 평생을 고민해온 지성인들이, ‘왜’ 고독이 없는 삶이 위험한지를 글로 남겨놨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의 연구가 담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4000주> <다시, 책으로>등의 책을 함께 보면 좋다. 성과사회와 주의력 산업이 인간의 심리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뇌가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왜'가 빠지면 진정한 고독을 유지하기 어렵다.
어디서 흘리듯 들었거나 자신이 스마트폰 중독이란 느낌이 들어 SNS 앱을 지웠다고 해보자. 그런 피상적인 방법은 결국 힘을 잃고, 고무줄처럼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 나도 한창 코딩 대회 준비를 할 때, ‘왜'를 모르는 상태에서 SNS를 지운 적이 있다. 하루 있다가 스마트폰 웹브라우저를 통해서 SNS에 들락거렸다. 결국 다시 앱을 설치하고 이전보다 더 빠져 버렸었다.
무작정 SNS 앱을 지우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런 행동이 중요한 게 아니다. SNS에도 유익한 것들은 있고, 좋은 역할을 할 때가 있다. 우리가 어떻게 쓰냐에 달려있다. ‘왜’ 고독이 필요한지 깊이 알게 된다면, SNS가 설치되어 있어도 필요할 때 말고는 사용하지 않게 된다. 강압이 아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 진정 변화를 만든다. 그리고 그 내면을 만드는 데 책이 도움을 준다.
고독은 불과 같다. 장작이 없으면 오래 타지 못한다. 좋은 책은 품질 좋은 장작이다. 고독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유튜브나 블로그에서 책 요약만 보는 것은 좋지 않다. 그것은 마치 속이 빈 장작 같아서 고독을 오래 유지할 수 없다. 책마다 다르지만 보통 한 권을 보는 데 3시간이 소요된다고 쳐보자. 책을 보면 3시간 동안 내용을 곱씹게 된다. 맥락도 온전히 이어져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고, 가슴에 오래 남는다. 그런데 유튜브에 “10분 만에 000책 읽은 것처럼 해드립니다.”라는 제목을 가진 영상만 보고 끝낸다면, 짧게 생각은 하겠지만 ‘와 내용 좋네~’하곤 다음 영상으로 넘겨버린다. 다른 영상들보다 고마운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단 이런 영상은 실물 책과 연결해 주는 가교 정도로 사용해야 한다. 이 영상만 보고 책을 읽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고독 속으로 책 문장을 하나씩 들고 들어가 내면아이와 토론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맥을 출시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알지 못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애플에서 혁신적인 것들이 나왔을 때 열광했지만, 나오기 전에는 우리가 그것을 원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알고 있었다면 우리가 먼저 백만장자가 되었어야 한다. 내면아이도 동일하다.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알지 못한다.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이 세계에서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니 수천 년을 거쳐 쌓인 생각들을 내면아이에게 보여주고 대화해야 한다. 그러면 점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 사회에서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좋은 재료로 내면아이와 토론하다 보면, 성인자아도 내면아이도 토론 기술이 향상된다. 나는 처음 고독을 알았을 때보다, 지금 내면에서 더 깊은 대화가 오간다는 게 느껴진다. 이런 과정으로 자아가 성장한다. 내면아이와 성인자아는 죽이 척척 맞아 협력하게 된다. 외부에서 벌어지는 문제들도 더 잘 처리할 수 있다. 이젠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리는 게 아닌 자신의 기준을 가지게 될 것이다. 선택한 일이든 사람이든 주위 환경과 자아는 점점 일치하게 된다. 이것이 자아실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