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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 Oct 11. 2022

#9 아파트에 당첨되셨습니다.

- 집을 선택할 권리

진짜 아파트 당첨이라고?!



“세상에, 남 일인 줄만 알았던 아파트까지 분양받게 되다니!”    

  

우리는 경기도 파주 운정의 아파트 분양에 당첨이 되었고, 제반 심사를 거쳐 확정까지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간 정신없이 달려온 덕분에, 얼추 대출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우리는 더더욱 마음이 뛰었다.

   

내.집.마.련.      


한평생 집 없이 살아온 내게 그것은, 그 자체로 꿈같은 일이었다. 집이 없어서 어린 시절부터 다섯 식구가 얼마나 많은 지하 단칸방과 쪽방을 전전했던가.      


그 상황에서 우리 세 자녀를 키워내기 위해 부모님께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오셨던가. 막상 아파트 당첨 소식을 접하고 나니, 오히려 부모님께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그 사이, 서귀포에 찜해둔 집은 깨끗이 잊어버렸다.     


이렇게 된 마당에 서울은 아니더라도, 경기도에 아예 눌러살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비록 입주까지 2년에 가까운 시간이 남았지만, 아이가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했기에 뭔가 빨리 눌러앉을 곳을 결정해야겠다는 압박감도 들었다.     


"그럼 그렇지. 우리가 무슨 제주야. 차라리 파주에 전셋집을 구해서 입주 전까지 미리 살아볼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이튿날 우리 부부는 곧바로 파주 운정으로 출발했다.      


한창 공사 중인 입주 예정 아파트 단지도 살펴보고, 아이가 다니게 될 초등학교도 들여다보았다. 몇몇 부동산을 통해 인근 아파트 전세 시세를 따져보고, 직접 대여섯 곳의 집을 보기도 했다.      


운정은 일산에 가까운 신도시답게 서울보다는 집도 도로도 널찍널찍했고, 인구 밀도도 적어서 한결 여유로운 느낌을 주었다.      


가까운 곳에 파주 출판도시가 있어서 책이나 원고 작업을 할 때 오가기도 편할 것이었다. 출판도시 인근에는 예쁜 카페나 책방도 많아서 근방에 작업실을 구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꿈에 부풀어있던 것도 잠시, 어딘지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다.     


나는 이내 하나, 둘 눈에 거슬리는 것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아이 학교가 너무 멀지 않을까? 게다가 길이 좁은 편이라 통학할 때 위험할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 아이 혼자 다니게 될 때는 어떡하지?”     


아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걸어서 십 분 거리면 충분하지 않나? 길은 뭐 이만하면 서울과 다르지 않고, 어느 시점에는 당연히 학교에 혼자 다녀야지. 너무 과민한 거 아니야?”     


그때부터는 하나부터 열까지, 아내와 평행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의 푸념은 이어졌다.      


“이 집은 전세가는 괜찮은데, 너무 크지 않아? 너무 크면 괜히 어수선한 느낌 들고, 우리 방이랑 아이 방도 멀고 말이야.”

“널찍널찍하게 가구도 배치하고, 오가는 데 여유도 있고 외려 좋지 않나? 이런 집 흔치 않은데 망설이다가 나가버리면 어쩌려고?”     


그렇게 하루 이틀 주저하다가 집이 나가버리기 일쑤였다. 한참 날이 더웠던 6월 말, 이사 예정 날짜로부터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급기야 아내는 짜증을 냈다.     


“언제까지 그렇게 우물쭈물 재려고? 이러다가 아무 데도 못 가면 어쩔 건데?”

“자기한테는 별 거 아니지만, 나한테는 중요하다고! 좀 기다려보자.”     


나는 주말까지 딱 사흘만 더 기다려달라고 하고, 숙고에 숙고를 거듭했다. 아무리 봐도 좋은 환경에, 좋은 집들이 많은데 왜 다 내 마음에 차지 않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지금 내 마음은,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찬찬히 곱씹어보니 답은 오직 하나로 귀결되었다.      


‘퇴거 통보’로 인해, 이미 지금처럼 사는 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챈 상태에서 – 영화로 비유하자면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자신이 살던 세상이 진짜가 아닌, 기계가 주입한 꿈속의 세상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순 없었던 것.     

  

이미 내 마음 깊숙이 앞으로의 삶에 대한 방향성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랄까. 다시 이전처럼 전속력으로 앞만 보며 내달리고 싶지 않았다.      


아파트를 분양받는다면 비록 대출을 덜 받더라도 다시금 빚에 시달려야 했고, 여유자금이 다 소진된 상태에서 빚을 갚아나가는 자체로 불안에 휩싸일 게 분명했다.      


그건 아내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고심 끝에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자꾸만 제주가 눈에 밟히네. 자기도 그래?”

“그렇긴 하지만, 지금 시간도 없고… 그렇다고 어렵게 당첨되었는데 물리기도 그렇고…”

“그래그래, 어쨌든 내 집 하나는 가지고 가는 게 맞겠지. 다만 입주까지 약 2년 정도가 남았으니, 한번 제주에서 제대로 살아보는 게 어떨까?”

“흐음…”

“그러고 나서 파주로 돌아오든, 계속 제주에서 살아가든, 그때 가서 결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한참 부동산 열풍이 꺾이고, 하락 추세로 접어들던 시점이라 아파트에 대한 미련이 크지 않았다.  

    

아내 역시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볼까?”

“그래… 보자.”     


나는 다시금 마음을 단단히 굳히고, 다음 날 아침, 서귀포 집을 보여준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그래, 오히려 잘됐지. 이제 집에 대한 미련도 남지 않았으니, 더 홀가분하게 여러 일들을 내려놓고, 제주에서 느릿느릿 살아가야지.’     


제주에서 올라온 지 열흘쯤 되었을 때였다.     


- 뚜르르르르     


그러나 부동산 사장님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라? 설마?’     


급히 부동산 앱을 켜서 그 매물이 남아 있는지를 확인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분명히 매물이 남아있었기에, 아침에 바로 전화하면 계약 일자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사장님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앱에서는 매물이 내려갔다.     


‘아뿔싸!’     


우리 가족과의 필연인 줄 알았던 서귀포의 그 집이… 나가버린 것이었다.



서울에서는 사실 집이 전부였다.


집에서 생활을 했고,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일하는 시간이 늘었고, 집으로 자산을 불리려 했으니, 집이 곧 자신을 나타내고 드러내는 하나의 기제로 작용한 셈이다.


근대 이후 핵가족이 늘어가면서, 이제 사람들은 가족 단위로 깃들어 사는 집으로 자신을 보여줄 수밖에 없게 되었고, 자연스레 집들과 집들 사이에 격이 생기면서 친구들 간에도 거리가 생기지 않았나 싶다.


어릴 때는 그저 작은 집의 창문을 두드리며 "누구야, 노올자~~"라고 소리치면, 이내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 쪼르르 쫓아 나와, 우리들과 함께 또 다른 친구의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나 역시 친구들이 정겨운 음정을 붙여서 내 이름을 불러주는 소리가 참 좋았다. 창문 밑에서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자면, 엄마한테 꾸중을 듣고 나서도 씨익 웃으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래서인지 서귀포에 오면서 동네 아이들이 무람없이 아이에게 말을 걸어주고, 일면식도 없는데 길에서 마주치면 같이 놀자고 해주는 모습이 참 좋았다.


그러더니 일곱 살짜리 아들 역시 어느 날부터는 동네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에게 먼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안녕? 너 몇 살이야?"

"일곱 살…"

"어? 잘됐다! 같이 놀래?"


쪼르르, 손을 잡고 달려가는 아이들. 몇몇 아이들은 나한테도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응? 안녕?"


격의 없이 먼저 말을 걸거나, 지나가다 내가 아들과 나누는 얘기를 듣고 대화에 끼어드는 경우도 많았다.


"오늘도 유치원에서 달리기 잼있게 했어?"

"응, 근데 오늘은 두 번 이기고, 세 번째는 졌어."


시무룩하게 걷는 아이의 얘기를 듣고는, 지나가던 초등학생 형이 말을 거는 것이었다.


"어? 너희 집은 어디야? 우리 집은 저기인데? 어느 유치원이야?"

"저어기!"

"그래? 나랑 한번 달려볼래?"


두 아이는 이내 귤밭을 지나 마을회관 앞을 쪼르르 달려간다.


그러더니 그 통통한 아이가 말해준다.


"우리 집은 저기야, 잘 달리네. 다음에 또 달리자."

"그래, 형!"


그리고는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사라지는 아이.


이제는 나 역시 마을 아이들을 만나면 아들과 함께 자연스레 인사를 건넨다.


"안녕?"

"안녕하세요?"

"안녕!"


이런 게 '마을 주민'이라는 것인가?


그래서 나는 이제 생각해본다. 앞으로는 집보다 길이 더 중요한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하고.


앞으로는 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이전 08화 #8 서귀포, 어디가 더 살기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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