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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 Oct 17. 2022

제주의 밤을 밝히는 것들

- 오징어배, 노인성, 반딧불이, 그리고...

제주의 밤바다에는 오징어배가 뜬다.


창밖으로 그 배를 보고 있자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밤에 깊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밤을 지새며 어둠을 밝히겠구나.


아이는 해질무렵 오징어배가 나오는 것을 보고 잘 준비를 시작하고, 나 또한 오징어배를 보고 오늘 밤에는 날씨가 괜찮겠구나 싶어 마음을 놓는다.


남쪽 바다 끝에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오징어배는 때때로 잠에 들지 못하는 내게 어서 잠들라며 채근하기도 한다.


너무 환한 불빛을 쫒지 말라고, 돈 벌 궁리에 그리 아등바등해봤자 오징어처럼 잡혀서 말라비틀어지기 밖에 더하겠냐고.


스마트폰은 내려두고 그저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밤바다를 바라보다가 쓰러져서 긴긴 잠을 자도 좋다고.


원고 마감 때마다 밤을 지새다보니 나는 오래전부터 불면증에 시달렸는, 신기하게도 오징어배를 보고 있자니 최면에 걸린 듯 스르르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는 서귀포에서만 보인다는 노인성을 찾아보려고 밤하늘을 올려다보곤 하는데, 날이 더 추워져야 하는지 아직은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날이 좀 더 추워지면 서귀포 천문과학관에 가서라도 꼭 아내랑 아이와 함께 노인성을 보고 싶다.


나이가 드는 것은 별처럼 빛나는 일이라는 것을, 내 스스로에게 그리고 아이에게 얘기해주고 싶다.


그러고 보니 노인성은 오징어배보다 더 오랜 세월을 밤바다에 나와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지구에 없을 때부터 조각배를 띄웠을 테니 말이다.


이제 잡생각 그만하고 자야지 싶어 거실 창문을 닫는데, 단지 수풀에서 반딧불이 풀풀 피어오른다.


서귀포의 밤을 밝히는 작은 빛들이 좋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작은 빛살이 될 수 있을까.


아이는 오늘도 이불을 걷어찬다.

가만히 덮어준다.

다시 차 버린다.


아내도 이불을 걷어찬다.

둘이 잠버릇이 같다.

덮어준다.

차 버린다.


그래서 나는 또 깨닫는다.


빛이 되는 것은 이불을 덮어주는 게 아니라

같이 잠들고 같이 이불을 걷어차는 것임을.


거실 불을 끄려는데 책상에 놓인 무언가가 하얗게 반짝인다.


어제 처음 실로 뽑아준 아이의 아랫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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