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하 Oct 21. 2022

#12 제주도 입주 첫날밤

- 제주살이의 명(明)과 암(暗)

처음 제주의 집에 들어서는 날, 저녁.    

  

제주공항에서 내린 우리는 차를 탁송한 상태였기에 버스를 타고 서귀포 중문에 내렸다.  

    

늦은 밤이었지만, 특별한 밤이기도 했다.     


미리 받아둔 비밀번호를 누르고 막 아파트 현관에 들어섰는데, 무언가 빛나는 벌레가 엘리베이터 앞을 날아다니는 것이었다.     


“우와- 반딧불이?”     


나 역시 반딧불을 바로 코앞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가만히 날아오르던 반딧불이 날개를 접고 난간에 내려앉자, 빛이 깜박이기 시작했다.    

  

“이게 반딧불이야?”     


어린아이의 눈도 환하게 빛났다.     


나는 재차 출입구를 열어서 반딧불이 무사히 밖으로 나가서 길 옆의 수풀에 날아들도록 도와주었다.     


“이게 바로 제주살이의 낭만이란 것일까?”     


잔뜩 기대와 환상을 가지고 다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우리 집 문 앞으로 가려던 찰나.

    

“으악!”     


아내가 짧은소리를 내질렀다.     


“왜왜?”     


바로 앞을 보니, 이번에는 바퀴벌레가 기어가고 있던 것이다!    

 

그때 우리는 깨달았다.      


반딧불과 바퀴벌레.     


제주살이에는 명(明)도 있지만, 암(暗)도 있다는 것을.     




사실 앞에서 얘기했던 조지 버나드 쇼 묘비명의 영어 원문은 이렇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나 역시 선인들의 묘비명에 대해 다룬 인 <인생의 마지막 한 줄>(2017, 교보문고)을 쓰면서 발견한 사실이었지만, 이 뜻을 해석하자면 “우물쭈물하다가 내가 이럴 줄 알았지”란 의미가 아니라, “내가 비록 이 땅에 오래 머물렀지만, 결국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지”란 의미다.      


이 둘은 큰 차이를 지니고 있다. 전자대로 해석하면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전력으로 앞만 보고 달려라’란 의미가 되지만, 후자를 놓고 생각해보면 ‘죽음은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이니 좀 더 웃으며 살자’란 뜻이 된다.


나는 이 묘비명을 떠올리면 어디서고 잠시 멈추게 된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려 내가 누구인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 옆에는 누가 있는지를 생각해본다.  

    

서귀포의 바다와 구름은 언제나 내게 이렇게 화답한다.     


‘그러니까 결론은 우물쭈물해도 좋다는 얘기야.’       


이제부터는 정말 우물쭈물해도 좋을까?


거실을 서재로 만들고 싶었는데, 놀이방이 되었다.


이전 11화 #11 제주도 이사 비용, 이렇게 나왔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