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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 Oct 18. 2022

#11 제주도 이사 비용, 이렇게 나왔습니다.

- 버리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제 마지막으로 짐 싸는 일만 남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결혼한 지 7년, 아이가 태어난 지 6년, 이제껏 집을 늘리는 만큼 짐을 늘리는 데만 급급했기에 막상 그것들을 덜어내려 하니 난감해졌다.     


제주로 가는 이삿짐은 보통 짐의 크기와 분량만큼 비용이 책정되었기에, 육지에서 이사할 때의 두세 배가 넘는 것을 감안하면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었다.     


보통 서울에서 제주로 이사할 때는 1박2일이 걸리고, 첫날 화물을 배로 태워 보내면, 다음날 제주항에 도착하여 본격적으로 이삿짐을 나르기 시작한다.     


기본 비용은 3~4인 가족, 이사 트럭에 실리는 짐의 크기를 미터로 환산하여 약 4m 정도, 300만 원 내외가 발생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뭔가를 쌓아둘 줄만 알았지, 한번도 제대로 버려본 적이 없었다.      


이것은 터전을 옮기는 일만큼이나 나에게는 어려운 문제였다.     


“무얼 버려야 하고, 어떻게 버려야 하지?”     


아내 역시 한동안 짐을 정리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우리는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을 결정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거실과 안방, 베란다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책들이었다.     


책 욕심이 큰 나는 이제껏 수천 권의 책을 사모았는데, 틈틈이 수백 권씩 팔거나 나누었지만 그래도 아직 집에는 책이 많았다.     


막상 그것들을 반수 이상 덜어내려고 하니 속이 아렸지만, 나는 이내 그것들을 솎아내기 시작했다. 아내 역시도 많은 책들과 함께 켜켜이 쌓아둔 세 식구의 옷가지들을 다 끄집어냈다.     


“이거 계속 입을 거야?”

“그건 이제 못 입을 듯?”

“그래도 저건 가져갈까?”

“근데 저건 버리자.”     


무엇을 가져가고 무엇을 버릴지 상의를 하다가도, 어떤 물건에 대해 얽힌 기억이 떠오르면 그때 얘기를 나누며 한참 웃기도 했다.     


우리는 심지어 에어컨 받침대까지도 직접 차에 싣고가서 고물상에 팔았고, 이제 더는 쓰지 않는 가전을 중고로 팔거나, 폐품 표시를 붙여서 분리수거함에 내놓았다.      


그러다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너무 꽉 움켜쥐지 말고 살아야겠다. 좀 더 나누거나 내놓을 줄도 알아야겠다.'     


언젠가 취재 일로 지방에 내려갔을 때, 작은 단칸방 숙소에 머물렀던 기억도 떠올랐다. 일을 마치고 방에 들어갔는데, 정말 작은 방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빈방, 혹은 맨방.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작은 빈방에 누워있는데, 가슴이 꽉 차는 기분이 들었다.


방에 아무것도 없으니, 홀로 내가 꽉 찬 기분.     


아무 데도 눈길을 주거나, 마음을 쓸 필요도 없이, 그저 나 하나 몸을 누이는 자체로 더없이 충만한 느낌.     


그때 알았다.     


마음이든 물건이든 비우면 비울수록 내 기운이 더 방에 가득 찬다는 것을.      


막상 제주로 이주하면서 살림살이를 덜어내다 보니, 몸도 마음도 홀가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외에 남은 책들과 몇몇 옷가지는 먼저 박스에 싸서 제주에 소포로 보냈고, 곰팡이가 서린 신발도 전부 솎아냈다.     


그러고 보니 또 한 가지를 깨달았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입던 옷만 입고, 신던 신발만 신고, 읽던 책만 읽어왔다는 것을.


생각보다 내 물건들 중에는 더 이상 내것이 아닌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들이 전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방치해 온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작 물건뿐 아니라, 내가 가진 생각이나 신념 등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었다.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관점들, 믿음들, 이상들. 그것들도 모두 버리고 가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마침내 단출하게 짐을 싸서 제주로 이사할 수 있었다.      


그때는 정말정말정말,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다.   

  

그해가 제주 역사상 가장 뜨거운 여름인 줄은, 그리고 한반도 역사상 가장 강한 태풍이 곧 상륙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총 이사비용을 정리해보자.     


서울 – 제주 이삿짐 보내는 비용 : 짐을 줄이고 줄여서 300만 원.

서울 – 제주 차(SUV) 탁송 비용 : 40만 원.

3인 가족 비행기 값 (편도) : 30만 원.

제주 전세 아파트 중개수수료 : 보증금 3억 × 0.3 = 90만 원.

각종 소포 및 짐 처리비용 : 약 10만 원.

입주 청소는 우리가 직접 해서 약 40만 원 정도 절약.

기타 커튼과 소소한 설비, 문구 : 약 30만 원 내외.

      

종합하니 단순 계산으로도 약 5백만 원 정도가 산출된다.     


만약 나중에 제주에서 다시 육지로 돌아올 것을 생각한다면, 똑같이 다시 5백 만 원 정도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까 제주에 한번 이사갔다가 나오는 데만 천만 원 정도가 드는 셈이다.      


그러니 제주로 이주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낭만적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나 같은 프리랜서는 직장에 구애받지 않기에 결정이 비교적 쉬웠지만, 일단 제주로 간다는 자체로 각종 미팅이나 취재에 제약이 있기에 일감이 줄어들 것을 감안해야 한다.     


그러니까 제주로 이주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나 많은 것을 내려놓았기에 더 가벼워지고,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나 역시 그 때문에 제주 이주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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