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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 Oct 30. 2022

#13 제주살이 3개월 해보고 느낀 점

- 제주살이의 장점과 단점 3가지

2022년 7월 말,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제주살이가 시작되었다.


"이제부터는 정말 고생 끝, 행복 시작이겠지?"


오랜 준비 끝에 마침내 서귀포 집에 들어선 첫날밤, 아직 짐이 들어오지 않은 빈방에 누운 우리 세 가족은 거실 통창을 올려다보았다.


멀리 밤바다 위로 띄엄띄엄 드리워진 오징어배와, 밤하늘에 드리워진 별들이 참으로 신기했다. 지금까지는 그저 '풍경'으로 남아있던 하늘과 바람과 별과 구름이, 제주에서는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단점 1 : 햇볕과 바람


그러나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그리고 정오가 되어 짐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숨이 턱턱 막히기 시작했다. 제주, 그것도 서귀포의 여름은 너무 덥고 습했다! 에어컨을 틀었지만, 습한 기운은 쉬이 가시지 않았고, 쨍한 햇볕은 맨살로 받아내기 어려웠다.


서울에서 온 '서울 촌놈'인 우리는 편의점에 가거나 잠시 외출할 때도 자외선 크림을 바르고, 양산까지 챙겨야 했다. 갑자기 습해지니 몸 이곳저곳이 욱신거리기도 했다.


밤낮으로 환한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다가, 초저녁만 되면 캄캄해지는 자연 속에 들어오니 살짝 겁도 났다.


제주여행이 아닌 제주살이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처음에 느낀 더위와 습도, 그리고 낯선 이질감은 채 사흘을 넘지 않았다. 우리는 이내 금세 적응하여 서귀포 곳곳의 해수욕장을 넘나들며 실컷 해수욕과 바다놀이를 즐겼다.


처음에는 새로운 유치원에 가기를 주저하던 아이 역시 생각보다 금세 적응했다. 서울에서는 조그마한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서 하는 활동이 많았는데, 이곳에서는 놀이공간도 고, 바로 옆에 널찍한 운동장이 있어서 하루 종일 뛰어논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자연 속의 생활에 적응하고 보니, 다소 무섭게 느껴지던 제주의 온전한 밤이 더 신기하고 특별하게 다가왔다. 거실 통창으로 해가 지고, 노을이 지고, 별이 뜨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좋았다.


서울처럼 창밖이 환하고 불빛들로 반짝이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작은 빛들을 지켜보았다. 날씨를 머금고 형형색색으로 변하는 구름을 관찰하는 것도 좋았고,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바람이 실어다 주는 이름 모를 풀 냄새를 맡는 것도 좋았다.   


나는 한동안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오전에 작업을 했고, 오후에는 바닷길이나 올레길을 걸었다. 여행자처럼 가방을 메고 걷다가 중간에 만나는 카페에 들어앉아 아무렇게나 글을 썼고, 아무렇게나 멍을 때렸다.


단점 2 : 태풍!


그러나 채 열흘도 지나지 않아 제주에 태풍이 들이닥쳤으니, 바로 힌남노였다. 힌남노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강했던 태풍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위력이 세다고 했다.


서울에 살면서 한 번도 태풍을 직접적으로 겪어본 적이 없던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박스를 잘라서 창틈을 꼼꼼히 메우고, 아내와 함께 물과 식량, 버너를 사놓는 등 철저히 대비했다.


힌남노는 며칠 뒤 서귀포에 상륙했다.


특히 중문 지역이 골이 깊어서 바람의 세기가 더 세게 느껴졌다. 가까운 대정읍 쪽은 비 피해가 컸지만, 내가 사는 쪽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태풍이 서귀포를 지나갈 때, 우리 부부는 큰 두려움에 떨었다.


쏟아지는 비보다는, 바람 소리가 더 무서웠다.


- 우우우우 우웅!


밤새 거대한 수장룡이, 거대한 울음을 쏟아내는 소리 같다고 할까?


비록 아파트 속에 들어앉아 있었지만, 태풍이 휘돌면서 일정한 간격으로 들이닥치는 거대한 바람 소리와 그 풍압이 어느 정도 피부로 느껴졌다. 태풍은 밤새 휘몰아쳤고, 창문은 밤새 들썩거렸다.


그러다가도 한 번씩 거실 통창이 심하게 흔들릴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는 이러다가 정말 창문이 깨질 것 같아서 창틀이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주기도 했다. 한 번씩 전기가 나가서 등이 깜빡거리거나, 잠깐 인터넷이 끊기기도 했다.


비록 직접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지금껏 책 속에서나 뉴스로만 보던 태풍이 어떤 것인지,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아이는 다행히 초저녁부터 잠들었고, 새벽까지 깨어있던 아내도 잠들었다. 아침이 되면서 서귀포는 직접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제주에 온 것을 후회했다.


지금 시대에는 사람이 콘크리트 속에 들어가 있으니 피해가 덜하겠지만, 예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태풍 때문에 집과 배, 가족을 잃고 비탄에 빠졌을까.


제주살이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아직도 적응하지 못한 것 역시 거센 바람이었다.


내친김에 단점을 더 나열해보자.


태풍은 지나갔지만, 때때로 태풍 못지않게 하루 이틀 밀려든 거센 바람. 그리고 들쭉날쭉한 비와 볕. 높은 습도와 벌레까지!


단점 3 : 너무 더움


게다가 이번 여름은 제주 역사상 가장 뜨거운 더위가 들이닥쳐서 온열 질환자의 수도 폭증했다고 한다. 이런 더위에 우리 부모님과 형제들까지 집으로 초대했지만, 결국 제대로 제주여행을 즐기지 못하고 본래 일정을 앞당겨서 서울로 돌아갈 정도였다.


나름 우리 가족이 잘 살고 있고, 제주살이의 낭만도 알려드리고 싶었는데 이게 무슨 민망한 상황이란 말인가!


아, 또 있다. 추석 때는 몇몇 업체들이 서귀포 집까지 선물을 보내기를 취소하며 양해를 구해왔다. 상하기 쉬운 음식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면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 같다.


아아, 또 있다!


아무래도 멀리 떨어진 남쪽 섬의 끝이다 보니, 친구를 만나기 좋아하는 외향형이면 다소 심심하거나 우울할 수도 있겠다.


아직 제주살이 3개월이라, 단점은 일단 여기까지다. 그렇다면 장점은? 사진으로 말하는 게 더 나을 듯하다.

  

3개월이 지났으니 딱 3개만 골라보자.




장점 1 : 아이도 나도 바다를 닮아가기 시작했다.


금릉 해변 / 함덕 해변


동서남북이 바다이고, 바다 별로 특색이 있다. 금릉에서는 얕은 바다에서 뒹굴기 좋고, 함덕에서는 개펄에서 물고기와 소라게를 잡기에 좋았다.


색달 해변 / 협재 해변


색달해변에서는 파도에 장단을 맞추며 놀기 좋았고, 협재에서는 하염없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생각에 잠기기 좋았다.



장점 2 :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멍을 때리게 되었다.

닭머루 해안 / 애월 해안


어디에도 바람과 바다가 있었고, 그 덕분에 내 힘을 덜 들이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힘을 덜 들이는 것에 대해 배우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멍도 더 자주 때리게 되었다.


산굼부리 / 중문관광단지


바닷길뿐 아니라, 산과 오름, 그리고 거리 곳곳에도 다채로운 풀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바람을 눈으로 만져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들은 마치 파도를 타듯, 바람을 타면서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흔들리는 것은 네 마음!'



장점 3 : 구름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퀴즈 : 이게 무슨 구름이게?^^;;


서울에서 구름은 그저 하늘에 떠서 흘러가는, 구름이었다. 그러니까 구름은, 그냥 적당히 솜붙이 같은 구름이었다. 그런데 제주에 와서 구름은 때마다 다채로운 그림을 하늘 가득 펼쳐놓았다.


어떤 날에는 고래가, 어떤 날에는 새가, 어떤 날에는 마치 추상화처럼, 보는 사람이 생각하는 무언가를 하늘에 풀어놓았다. 때때로 나는 저 구름이 무엇을 닮았는지, 아들과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구름을 보고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렇게 말했다.


"어? 저거 게 아니야?"


색달 해변 너머로 거대한 게가, 지는 노을 볕을 따라 집게발을 들고 마치 V자를 그리듯 떠있었다.


산굼부리에서 한라산 너머로 날개를 펼친 구름


이 구름을 보고 아들은 '큰 새'라고 했고, 나는 '봉황' 혹은 '대붕'이라고 했다. 아들은 아직 그런 새를 모르니 적당히 타협해서 '거대한 새'라고 하자.



하늘에 가득 드리워진 구름을 보고 나는 '구름 장막'이라 했고, 아들은 '솜사탕'이라고 했다. 저게 솜사탕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 종일 뜯어먹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추가로 길을 걷다가도 아무 데나 둘러앉아서 수다를 떨 수 있게 되었다. 커피숍이나 패스트푸드점이 없어도 말이다(물론 테이크아웃해서 먹었다).



※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제주살이의 장점과 단점이 사실상 동전의 앞뒷면처럼 같으면서도 다르지 않나 싶다. 같은 제주살이가 어떤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지만, 어떤 이에게는 힘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만약 제주살이를 꿈꾼다면,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 위해 딱 한 달만 먼저 살아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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