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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 Oct 26. 2022

프리랜서가 일을 거절하면 생기는 일

- 내가 왜 그랬을까


마흔넷, 대기업 3년, 프리랜서 생활 10년을 끝으로 나름 조기 은퇴를 선언하고 서귀포에 온 지, 3개월. 얼추 서울에서 가져온 프로젝트들도 하나, 둘 마무리되고 있었다.


우선 내 첫 직장이기도 한 교보문고와 경기도교육청이 3년째 이어오고 있는 꿈의 책방 - 스토리공작소》 10회 차 강의를 두 달 사이에 마쳤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코로나19 때문에 작년, 재작년은 건너뛰었는데 올해는 줌(ZOOM) 온라인 강의로 강좌를 대체하면서 제주에서도 학생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두 달 간의 강의가 끝나고, 함께 펴낸 학생들의 작품집


그다음으로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비교하는 몇 개의 칼럼과, 습작생들을 대상으로 한 멘토링과 컨설팅 작업 등도 남아있었다.


한참 문피아와 네이버에 웹소설을 연재하고 있었기에, 당분간 오전에 4시간은 꼭 글을 써야 했다. 그래서 나는 제주에 오면서 오후에는 빈둥대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 최대한 새로 들어오는 일을 받지 않기로 아내 앞에서 선언했었다.


"아이랑도 더 놀고, 집안 일도 더 하고, 바다 보면서 더 멍 때리고 말이야."


호기롭게도 내 콘텐츠 스토리 에이전시, 그러니까 1인 기업 '이야기하다'에 들어오는 일도 받지 않기로 했다.


한 순간에 월 천 가까이 벌던 프리랜서 작가이자 1인 기업가에서, 생활비만 벌고 뒹굴거리는 아빠가 되기로 결정한 것이다. 물론 그것 또한 힘든 일이고, 가치 있는 일이지만 오랜 세월 과로한 만큼 몸이 여기저기 고장 나서 운동을 하면서 쉴 필요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즈음 3개의 일이 한꺼번에 들어왔으니, 저마다 지금껏 내가 쌓아온 커리어의 정점을 찍는 프로젝트들이었다.


하나는 한 기획사와 스토리텔링 프로젝트를 협업하는 일. 당장 매출만 3천에 달하는 매력적인 프로젝트였다.


초 나는 그 일에 너무 끌린 나머지 바로 착수하려고 했는데, 막상 제주에 오니 몇 가지 걸림돌이 생겼고, 고심 끝에 그 일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두 번째는 프리랜서 작가들에게 가장 큰 수입을 안겨주는 기업 사사 프로젝트였다. 이 역시 적게는 10년, 많게는 50년 이상에 달하는 기업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일이라 품이 많이 드는 만큼 첫 번째 일에 못지않게 수입이 꽤 큰 이었다.


잠시 흔들렸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하는 메일을 보냈다.


내가 미친 게 분명하다..


지금껏 10년 가까이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의뢰 메일에 거절하는 답변을 보낸 것이다. 


프리랜서로서 클라이언트의 제안을 거부하면 일단 다시 의뢰가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하나의 좋은 파이프라인을 걷어찬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흘 전에는 아직 내가 제주에 내려온 지 모르는 선배한테 전화가 왔다.


"하야, 잘 지내지? 내 후배 중에 방송국 작가가 있는데 이번에 다큐드라마 새로 들어가면서 같이 대본 쓸 작가를 수소문하고 있더라. 너 시간 괜찮냐? 일주일에 여의도 한두 번만 오가면 돼."


뜨악.


나는 일찍이 홍보 시나리오나 게임 시나리오 등 대본 작업도 많이 했고, 내 소설 <괴물사냥꾼>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을 소설' <BOOK TO FILM>에 선정되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 필름마켓에서 직접 피칭을 한 적도 있었다.


2016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 필름마켓


당연히 드라마 쪽으로도 관심이 많았다. 잘만 하면 비록 메인은 아니지만, 훗날 내 대본을 선보일 기회도 잡을 수 있을 것이었다!


"저 선배... 나 지금 제주에 내려왔는데..."


선배는 놀라면서도 부러워했다.


"정말? 언제 갔냐? 참 대단도 하지. 근데 이건 그럼 못하겠네?"


사실 오랜 세월, 글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꼼꼼하고 성실하게 수행해온 덕분에 그 선배는 중요한 일은 무조건 나한테 맡겼다.


그 선배 덕분에 나는 국회나 여러 공공기관의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들도 잘 수행할 수 있었는데, 내가 제주에 와있는 이상 그 일들을 바로바로 하기가 어려워진 것이었다.


"그래도 너는 좋겠다. 잘 생각했어."


선배는 이내 전화를 끊었다. 나는 직감했다. 앞으로 선배한테 프로젝트 제안에 관한 전화는 오지 않을 것이다!


불과 몇 주 사이에 다 더하면 총 계약 규모만 억 소리가 나는 일들을 걷어차고 나니, 처음에는 그럭저럭 홀가분했지만, 한 달째 되는 지점... 그러니까 이번 달 생활비가 빠져나가는 시점이 되자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가 정말 반백수 되는 거 아니야?'


마음이 급해지니 당초의 계획이나 다짐과 달리 멍 때리기보다 딴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과연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하루 이틀 밤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부터는 다시 중심이 잡혔다.


'내가 이러려고 제주에 온 것이 아닌가?'


다시금 제주올레 8코스 논짓물 구간을 걸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올레길을 걷다보면 종종 화살표를 벗어나서 걸을 때가 많다. 그런데도 길은 곧잘 찾아갔고, 때때로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사람이나 풍경을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은 늘 내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화살표가 나지 않은 길로 가기로 했다


나는 예전부터 늘 화살표가 나지 않은 길을 가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학창 시절에는 전교에서 손에 꼽는 등수를 하기도 했고(물론 끝에서), 대학교 때도 학고를 맞아 계절학기를 챙겨 듣고서야 간신히 졸업할 수 있었다.


남들이 영어사전 볼 때 국어사전만 파서 아예 토익 같은 영어점수도 없었지만, 그 대신 졸업반 때 시인이 될 수 있었다.


시인이 되고서도 주목받는 시는 쓰지 못했고, 중국으로 넘어가 3년 간 북경이나 상해의 한인타운에서 국어를 가르치면서 떠돌다가 서른이 되는 해에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그런 내가 교보문고 홍보팀에 합격하면서 전환점을 맞게 되었지만, 어찌 됐든 다시 프리랜서로 독립하면서 또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10년 전만 해도 프리랜서는, 말이 프리랜서지 그저 빈둥대는 백수 이미지였기에 어른들한테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화살표가 난 길에서 늘 벗어나서 걸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게 된 셈이다.


두 갈래 길, 멀리 산방산이 보인다.


나는 그래서 이번에도 다른 길로 가보려고 한다.


지금껏 다른 사람의 이야기, 다른 기관의 이야기를 써주며 살아왔다면, 지금부터는 스스로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 이제는 내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을 이곳, 브런치에서 내디디려고 한다.

 

브런치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



P.S 대표님들께 : 일을 거절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만 손가락이 그렇게 메일을 보내버렸네요.

따끔히 손구락들을 혼낼 테니 부디 일감을 다시 내려주시기를! 아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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