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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 Sep 26. 2022

#3 조기 은퇴하려면 얼마나 있어야 할까?

정량적 관점에서 먼저 따져보기

플랜 A와 플랜 B


나는 한때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시험을 준비하려고 사놓고, 한 번도 안 쓴 재무계산기를 야심차게 꺼내왔다.     


- 톡톡, 톡톡톡 

    

“일단 은퇴하려면 얼마가 필요한지, 정량적으로 먼저 따져볼까?”     


내가 교보에 이어 동양그룹에서 일할 때, 종종 경제교육과 은퇴자금에 대한 교육을 했는데, 지금은 거의 다 잊었지만 아쉬운 대로 공인재무설계사(AFPK)로서 어렴풋이 남아있는 기억들을 헤집어보았다.     


당시 나는 시인이면서 경제교육 담당자로서 조금 특별한 관점에서 강의를 펼쳐나갔다. 지금 생각해도 영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그 덕분에 시와 경제 이야기를 접목한 <경제 카페에서 읽은 시>*라는 책도 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은퇴자금에 대한 교육은 아무래도 금융상품 판매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결론은 은퇴 이후 평균 수명에 이르기까지 쓸 돈의 총액을 합산하고, 연금상품에 가입하여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보통은 이런 은퇴자금 마련을 위해서 저축이나 연금을 강조하곤 하는데, 사실 인플레이션이 가중되고 돈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면서, 이런 방식이 점점 더 매력이 떨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어쨌든 은퇴 이후를 대비하는 가장 정석적인 방법이라는 점에서, 우선은 이 방법으로 은퇴 이후 필요자금을 정량적으로 따져보기로 했다.       


- 툭, 툭툭툭?     


그러나 이내 재무계산기는 ‘빠때리’**가 나갔을 뿐 아니라, 나 역시 사용법조차도 까먹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냥, 종이에 쓸까?”     


나는 이내 이면지에 '153볼펜'으로 이것저것 그려가며 아내 앞에서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큼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약 485만 원, 지출은 약 350만 원이 나오는데요.”

“얼추 우리 가족이랑 비슷하네, 둘 다.”

“이는 전년 대비 각각 44만 원, 20만 원이 증가된 수치로, 인플레이션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서 점점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리 벌어도 돈의 가치가 점점 줄어든다는 얘기잖아.”

“단순 계산으로 은퇴를 55세, 평균 수명을 85세로 따져본다면, 은퇴 이후 고정수입 없이 살아가야 하는 기간은 총 30년입니다!”     


우리 둘은 이 대목에서 머리카락을 부여쥐었다.     


“세상에, 수입 없이 무려 30년이나 살아야 하다니!”     


지금은 오히려 오래 사는 것이 큰 문제가 되는 시대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30년이나 고정수입 없이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자금은 단순 계산으로 가구당 월평균 지출인 350만 원에 30년, 즉 360개월을 곱하면 된다. 이를 산출하면 총 12억 6천만 원이 나온다.     

 

그러니까 우리 나이가 지금 어떻든, 정년퇴직 전까지 최소 12억 6천만 원을 모아야 한다는 소리다. 이마저도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지 않은 수치!      


당신의 나이가 어떻든 정년인 55세까지 월급을 저축하는 것만으로 어떻게 12억 6천만 원을 모을 수 있겠는가?      


저축이나 연금으로는 택도 없는 소리다. 극단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통계의 월평균 소득과 지출의 차이인 135만 원을 25년 간 모은다고 해도, 아무리 금리를 좋게 대입하여 산출한다고 해도 사실상 12억 6천만 원은커녕 그 반액을 모으기도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저축만 할 것인가? 차도 사고, 결혼도 하고, 집도 사야 한다. 아이가 생기면 교육도 시켜야 하고, 대학도 보내야 한다. 그뿐인가? 내가 은퇴하고 나서 아이가 결혼을 한다면, 결혼자금까지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나이드신 양가 부모님도 생각해야 하고. 부동산 가격은 물론 생활 물가까지 천정부지로 치솟는 지금, 이 모든 일을 감당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저 대안없이 아등바등 돈을 벌고, 아끼고 아껴가며 가족을 위한 소비를 한다. 언젠가는 내 주머니가 바닥이 나서, 은퇴고 뭐고 비상이 걸릴 것을 잘 알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운 좋게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해서 대박이 나면 좋지만, 쪽박을 차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갔다.      


정년퇴직해도 은퇴자금을 감당하기 힘든데, 조기 은퇴가 가당키나 한 일일까? 보통의 은퇴자금만 12억 6천만 원이 되는데, 조기 은퇴를 하면 얼마나 더 있어야 하나?      


내가 제주에 내려온다고 했을 때, 대다수는 부러워하며 축하해주었지만, 개중에는 꼭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었다.      


“너희 혹 부동산 부자니?”

“NO!”

“아니면 타고난 금수저였어?”

“NONO!”

“그럼 대체 뭔데?”     


나는 타고난 흙수저이며, 은퇴자금은 12억 6천만 원의 반에 반수도 안되는 전세금과 차, 그리고 글 써서 죽도록 모은 예금이 전부다. 


이를 종합하면 1/3수준인 4억 정도. 그런데 어떻게 조기 은퇴를 할 거냐고?    

 

우리는 정량적 질문은 집어치우고, 플랜B, 즉 정성적인 관점에서 상황을 다시 짚어보기로 했다. 


     


각주 1. <경제 카페에서 읽은 시> (2014, 실천문학사)

각주 2. 빠때리 : 내가 ‘빠때리’라고 말하면 일곱 살짜리 아들은 꼭 이렇게 정정해준다. “아빠! 빠때리 아니고 배터리, 혹은 건전지! 아빠, 작가 맞아?” 한두 번 그렇게 정정해줬는데, 무선조종 자동차의 건전지를 바꿔주다가 무의식 중에 또 ‘빠때리’라고 그랬더니, 이제는 그저 “휴-” 한숨만 내쉰다.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가던 아이. 미안하다,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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