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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 Sep 28. 2022

#4 조기 은퇴를 위해 필요한 것들

프로 N잡러의 파이프라인



프로 N잡러의 파이프라인     


 

“가장 중요한 것은 현금 흐름이 아닐까?”   

  

결국 정량적으로 따져본 ‘12억 6천만 원’이라는 은퇴자금 역시, 은퇴 후 죽기까지 필요한 생활비를 환산한 것이기에, 만약 은퇴 이후에도 일정한 현금흐름이 들어온다면 그 전제가 바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기존의 은퇴자금 산정 방식은, 55세 정년퇴직 후 아무 일도 안 할 때를 전제한 돈이니까.”  


아내의 눈이 반짝였다.


"만약 퇴직 여부와 상관없이 일정한 현금흐름이 확보된다면?"

"은퇴자금 총액 12억 6천만 원이 없어도 되겠지."   


그렇다. 예전에는 55세, 또는 60세 정년퇴직을 하면 사실상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퇴직금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평균수명이 늘어난 지금, 퇴직금은 곧 은퇴 이후 사업자금을 의미했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 치킨집이나 편의점, 또는 개인택시 등을 운영하면서 적어도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돈을 더 벌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들어오는 돈은 회사 다닐 때 받던 돈에는 한참 못 미치고, 다른 일을 배우지 않았으니 영업을 하기도 쉽지 않아 사업을 접는 경우도 많다. 조금이라도 여생을 여유롭게 보내려다가 외려 절벽으로 내몰리는 격이랄까.   


그래서 나는 처음 신입사원이 될 때부터 은퇴를 조금 일찍 하더라도, 평생 영위할 수 있는 투잡을 갖고자 했다.      


서브잡에는 3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첫째는 “초기 투자금이 들지 않을 것”. 둘째는 “당장은 서브잡이지만 언젠가 메인잡이 될 수 있을 것”. 셋째는 “언제까지나 오래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사실상 조기 은퇴한다면 퇴직금이나 퇴직연금을 기대하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이제 당분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니, 굳이 리스크를 떠안고 사업을 벌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은퇴 이후에 주력으로 계속 이어나갈 수 있고, 업력을 쌓는 만큼 ‘지속가능한 수입’도 점점 늘어가는 N잡. 회사처럼 막무가내로 일을 부여받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싶은 만큼, 내가 즐길 수 있을 정도로 할 수 있는 일!      


아직 ‘프리랜서’니 ‘1인 기업’이니 하는 용어들이 생소할 때, 나는 일찍부터 투잡, 쓰리잡을 검토하며 여러 가지 파이프라인을 만들어놓을 생각을 했던 것이다.     


여러 고심 끝에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첫 번째로 시작한 서브잡은 ‘프리랜서 기자’일이었다.      


그래도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글쓰기였기에, 나는 주말마다 몇몇 업체들로부터 특정 과제를 부여받고 행사장이나 관광지를 취재하여 사진과 원고를 제공했다.      


이를 위해서 새벽부터 일어나 ‘사람인’이나 ‘잡코리아’ 같은 취업 사이트에 날마다 ‘프리랜서 기자’, ‘원고 모집’ 같은 키워드를 검색했다. 또한 자유기고가 카페에 가입하여 이따금씩 올라오는 ‘작가 모집’ 공고마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냈다.      


지금이야 ‘크몽’과 같이 프리랜서와 업체를 연결해주는 사이트가 많지만, 그때는 그런 게 없어서 일일이 일을 찾아다녔던 것이다.     


두 번째로 한 일은 ‘자기소개서 첨삭’이었다. 나 역시 ‘자소서 신춘문예’를 통해 회사 홍보팀에 합격한 상태였기에, 내 경험을 바탕으로 글쓰기와 스토리텔링을 접목한 자기소개서 컨설팅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자기소개서를 첨삭해주는 아르바이트가 성행해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취준생들의 자소서를 봐주고, 정성껏 피드백을 달아서 보내주곤 했다.      


세 번째로 한 일은 ‘책쓰기’였다. 대학교 졸업반 때 시로 등단했기에 틈틈이 시집도 준비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책을 많이 써서 나중에는 저자이자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소설을 쓰고 싶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보다는 소설이 더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부터 가난하게 자라왔고, 그 시절 우리 집 형편도 많이 안 좋았기에 나는 야근이 일상이던 회사일을 하면서도 닥치는 대로 글을 썼다.     


밤늦게 12시쯤 들어와서 새벽 3시까지 글을 쓰고, 다시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출근하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그때 회사 일과 함께 서브잡으로 시작했던 일들은, 이후 퇴사를 하고 프리랜서로 독립할 때 어느 정도 밑거름이 되어주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가지를 쳐가며 종내는 무성한 숲이 되어주었다.     


이후로 틈틈이 책을 펴낸 덕분에 전국의 학교로 강연도 다닐 수 있었고, 작가로서 여러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2019년에는 웹소설 작가로도 데뷔할 수 있었다. 


내가 파이어족으로서 조기 은퇴를 바라볼 수 있게 된 데는, 사실 웹소설 작가로서의 연재 수입과 전자책 수입이 큰 역할을 하였다.      


이는 오늘날 파이어족들에게 가장 각광을 받는 N잡 중 유튜브나 주식&부동산 투자, 블로그 등과 함께 가장 주요한 파이프라인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웹소설을 3질째 연재하면서 <나도 웹소설 한번 써볼까?>라는 웹소설 작법책을 낸 것도, 사실 많은 습작생들과 후배 작가들이 웹소설을 통해 경제적 자유를 누렸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책의 제목 역시 편집자와 함께 <웹소설 써서 파이어족으로 살기>라고 지을까 고심하기도 했다.     


어쨌든 조기 은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회사를 나와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고 싶을 때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아닐까 싶다. 물론 시대가 급변하고 있으므로 그 일은 말 그대로 N잡이면 더 좋다. 또한 무엇보다 내가 그것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완전히 은퇴하여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루에 서너 시간 이내로 곁들이며 작가로서, 또는 프리랜서로서 일의 보람을 느끼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렇게 현금흐름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면, 사실 정년까지 회사에 붙어있는 것보다 하루빨리 퇴사하는 게 더 경험을 축적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온라인 건물주의 시대     


요즘 유튜브에 보면 특정 주식에 가진 돈을 넣어두거나, 배당주에 분산해서 넣어두거나, 살던 집을 월세 주고 부부가 여행을 다니거나, 아예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여 최소한의 생활비로 시골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이들 역시 저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파이프라인을 마련하여, 자신의 생활 수준과 지속가능한 N잡에서 나오는 현금흐름을 맞추어 살아가는 경우에 해당된다.     


‘지속가능한 현금흐름 = 생활비와 필요경비’     


이 공식만 성립한다면 주저없이 ‘조용한 퇴사’를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예전의 방식으로 크게 돈을 벌거나, 부동산 투자로 건물주가 되지 않더라도, 비록 그 규모는 비교할 바가 못 되지만 저마다 웹상에 자신의 콘텐츠를 세우고 ‘온라인 건물주’로 살아가고 있다 .     


나는 그래서 대기업 생활 3년을 끝으로 주저 없이 퇴사를 하였고, 이후 10년의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 지속가능한 파이프라인을 만들어왔다.     


얼추 내 한 해 수입을 월 평균으로 나누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파이프라인 1. 책쓰기 -> 현금흐름 월 150만 원 

     

인세 : 월 50만 원 정도

강연 : 월 1회 정도, 약 50만 원 내외

작가 멘토링 및 칼럼 기고 : 월 50만 원 정도     


파이프라인 2. 웹소설&전자책 -> 현금흐름 월 400만 원 

    

세 질 연재로 인한 인세 : 월 300만 원 내외

전자책 수입 : 월 100만 원 내외     


파이프라인 3. 스토리에이전시 수입 -> 월 200만 원     


한 해 최소 두세 건 작업 시 비용 제외 후 순수익 약 2,400만 원     


보수적으로 산출한 수치이나, 종합하면 대략 월 750만 원의 현금흐름이 만들어진다. 


나는 여기서 조기 은퇴를 통해 지역 홍보책자 작업을 상당 부분 내려놓을 생각이었고, 웹소설 역시 연재 텀을 늘려서 ‘놀멍쉬멍’ 천천히 연재할 생각이었다.

     

단순 계산하면 ‘파이프라인3, 책자 작업’을 빼고 ‘파이프라인2, 웹소설 연재’ 역시 들어가는 품을 반수로 줄인다면, 매일 오전 서너 시간 이내로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확보할 수 있는 월수입은 대략 350만 원이 된다.      

이는 2022년 가구 평균 월 지출에 해당하는 금액이고, 우리 가족의 한 달 지출과도 엇비슷했다. 

    

이렇듯 ‘온라인 N잡’은 나이와 상관없이 지속가능하며, 필요시 작업량을 다시 늘려서 현금흐름을 더 확보하기에도 용이했다.      


나 역시 조기 은퇴 후 여건에 따라 작업량과 더불어 현금흐름을 다시 늘릴 여지도 남겨두었다. 실컷 빈둥대다가 지쳐서 다시 일하고 싶을 때도 분명 올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회사는 재취업이 불가능하지만, 디지털 N잡은 언제 어디서든 다시 노트북만 열면 된다.      


"집 걱정 없고, 차도 있고, 대출 없고, 현금흐름도 안정적인데, 굳이 더 벌겠다고 서울에서 아등바등 살 필요가 있을까?"     


요즘 파이어족들이 따져보는 기준으로 자산과 현금을 환산해보아도, 크게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문득 속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인파에 휩싸여서 어떻게든 그들이 걷는 속도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그들이 사는 비슷비슷한 집에서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살고자 했다. 그러나 막상 거주 환경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다 보니 그 모든 건 결국 상대적이고, 상대적이기에 허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굳이 파이어족으로 살지는 않았지만, 눈 떠보니 나는 파이어족으로 살아왔고, 이쯤 되면 전처럼 거북이처럼 타자를 치면서 살 게 아니라, 수도권 업무공동체에서 빠져나와 일을 반 이상 줄이고, 조기 은퇴해서 바다거북처럼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자 더 주저할 것도 없었다.     


우리 가족은 곧바로 서울과 헤어질 결심을 했다.               



서울에서 아이가 가장 좋아하던 곳은 동네에 있던 '롯데몰' 혹은 바로 옆의 '스타필드'였다. 도시 소년으로 자라다보니 자연스레 마트나 몰을 좋아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곳에서 장난감을 사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


정말로 그곳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소비하면서 얻는 만족 욕구에 일찍부터 눈을 떴다고 할까. 


나는 아이가 진작부터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 습관에서 벗어나길 바랐다. 자신의 욕구와 소비를 통제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적당한 수입으로도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아이가 몰 대신 자연을 만났을 때, 소비 욕구는 수집 욕구로 바뀌었다. 


아이는 종류별로 자동차와 로보트를 사달라고 조르는 대신 이름모를 해초와 조개, 소라게를 주어왔고, 수시로 무인 문방구를 들락거리는 대신 집 앞의 풀밭을 거닐며 여치를 잡거나, 구멍 숭숭 뚫린 돌을 주워오기도 했다.


"아빠, 이게 무슨 보석인 줄 알아?"

"응? 그게 뭔데?"

"이건 진짜, 진짜 귀한 거야."


까맣게 탄 얼굴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서귀포 소년. 

그 찰나의 순간을 무엇에 빗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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