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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 Oct 03. 2022

#6 제주도 이주를 결심한 이유

거북목에서 벗어나 바다거북이로

제주도와의 인연



사실 우리 가족한테는 제주에 대한 특별한 추억이 있었다.    

  

작년에 참으로 오랜만에 아내와 아이랑 제주도로 휴가를 떠났다. 한참 공룡과 바다생물에 빠진 여섯 살짜리 아이에게 너른 바다와 아쿠아플라넷을 보여주고 싶었다. 바다를 본 아이의 첫마디는 이랬다.     


"엄마, 아빠, 여기서는 소리 막 질러도 돼?"     


그 말을 들은 나는 갑자기 짠한 마음이 들었다. 서울 집에서는 층간소음 때문에 늘 아이에게 뛰지 말라는 말과, 목소리를 낮추라는 말을 자주 했다.      


어쩌다 TV나 라디오에서 노래나 CM송만 흘러나와도 엉덩이를 흔들며 춤추기 좋아하고, 한번 본 생물은 무엇이든 흉내내기 좋아하는 아이는 늘 눌려 지내야 했다.      


아내의 목소리도 떨려왔다.     


"그럼, 마음껏 소리 질러도 되지."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다짜고짜 공룡처럼 포효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     


그러면서 한참이나 바닷가를 내달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나도, 아내도 아이를 따라서 소리를 질렀다.     


"끄아아아아아-"

"나는 티라노다, 끄아아아아!"

"야아, 호오오!"     


아쿠아 플래닛에서는 늘 책에서만 보던 돌고래와 펭귄, 수달과 상어, 물범 등을 보았다. 나 역시 마흔이 넘도록 직접 보지 못한 생물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돌고래였다. 작은 수조에서 눈이 총총한 작은 돌고래가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이 참으로 신기해 보였다.     


돌고래는 왠지 수족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아쿠아 플래닛에서는 정기적으로 바다생물들을 데리고 공연을 열었는데, 공교롭게도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돌고래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안내를 듣기로는, 돌고래 중 한 친구가 아프다고 했다.      


그때 우리는 문득 돌고래는 물론, 바다생물을 수조에 가두고 전시하는 자체에 어딘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언젠가는 돌고래를 수족관이 아닌, 바다에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하나, 눈에 띄었던 녀석은 물범이었다.      


녀석은 그보다 큰 돌고래나 상어를 봤을 때와 달리, 헤엄을 잘 치고 있는데도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지느러미보다는 겹겹이 접힌 살결이 더 눈에 들어왔다. 아이를 보면서 "우와, 진짜 크고 뚱뚱하지?"라고 말하면서 웃기도 했다.     


그런데 이후 서귀포 색달 해변에 갔을 때, 아내가 찍은 사진에서 그 물범 한 마리를 다시 보게 된 것이다. 

  

모래밭에서 양산을 들고 서있던 커다란 물범 한 마리. 눈두덩과 볼살, 목살과 뱃살, 심지어 허벅지와 종아리까지. 살결이 축 늘어진 물범 한 마리가 바다에서 뛰쳐나와 안경을 걸친 채 서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였다.     


"어? 아까 그 물범 아냐?"     


나는 그 사진을 보며 우스갯소리를 던졌지만, 속으로는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그 물범은 온갖 성인병을 앓았고, '작은 수조'에만 들어앉아 온종일 앞발을 휘젓고 있었다. 세상이 주는 사료에 길들여져 관객이 좋아하는 글만 써댔고, 사육사가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더 좋은 쇼를 하기 위해 다시 수조에 들어가곤 했다.      


그러면서도 아이에게는 무언가 해보자는 말보다 하지 말라는 말을 더 많이 했고, 놀아주기보다는 드러누워 코를 골았다. 나만큼 힘들게 가정을 꾸려가는 아내의 푸념에도 귀 기울이기보다는 성부터 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구나.'      


그 물범은, 본래 자신이 살던 바다 앞에서 퍼뜩 놀랐다.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나 자신에게, 그리고 아내와 자식에게. 이렇게 살다가는 식량을 더 비축할 수는 있어도, 더 단단하고 좋은 수조에 들어앉을 순 있어도, 아무런 의미도 보람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진짜 나를 잊은 채, 보이는 내가 전부라고 굳게 믿으며 그렇게 평생 허울 속에서 살아갈 것만 같았다.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일을 그만두고, 아내랑 아이를 데리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 정말 제주도 바닷가에 작은 집을 짓고,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고 싶었다. '지금, 여기'에서의 변화가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조금이라도 바뀌어야 했다.      


그때, 우리는 결심했다. 언젠가는 꼭 제주에서 살기로. 그리고 제주에 가게 되면 반드시 다음 세 가지를 실천하기로. 첫 번째는 직접 바다를 노니는 돌고래를 찾아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내 속에 사는 물범을 그만 바다에 놓아주는 것이 그것이었다.      


무엇보다 사각의 모니터에 갖혀살다가 생긴 거북목에서 벗어나 진짜 바다거북처럼 살고 싶었다.     


공교롭게도 우리 부부는 태교여행 때도 제주 서귀포 색달해변에 왔고, 이후로 두 번 더 제주여행에 왔을 때도 아이와 함께 색달해변을 밟았다. 이 또한 인연이라면, 인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 가족은 집을 알아보기 위해 제주 서귀포로 가는 비행기에서,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제주에 살면 정말 좋겠다, 그치?”     


그러나 역시 터전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육지에서 섬으로, 서울에서 서귀포로.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꿈에 부풀어있을 뿐, 앞으로 어떤 고난이 닥쳐올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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