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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 Sep 23. 2022

#2 어쩌다 보니 파이어족

마흔넷, 조기 은퇴 후 제주로 왔습니다.

내 속에 숨어 사는 것들   

 


한때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시인이 되고 싶었고, 대학 졸업반 때 등단하여 시집도 냈다. 그러나 내 시집 <내 속에 숨어 사는 것들>*을 봐주는 사람은 없었고, 몇 해 뒤 출판사 창고를 차지하고 있던 시집들을 내가 직접 거둬들여야 했다. 그래도 시를 쓰고자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가 써지지 않았다.     


나는 쫓기듯이 취업을 해야 했고, 이후로 3년 간 대기업에서 밤낮없이 일을 했다. 그러나 남들이 바라보는 것과 달리 대기업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고, 이직과 스카우트를 거쳐 누구나 선망하는 기업에 자리를 잡았지만 채 한 달이 되기도 전에 사표를 냈다.     


2012년 호기롭게 퇴사를 했지만, 막상 회사에서 나오니 앞이 막막했다. 지금은 조금 덜하지만, 10년 전의 한국 사회에서 퇴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낙오자'로 인식되었다. 부모님은 실망하다 못해 절망했고, 처음에는 자신만만했던 나도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에 잠식되어갔다.     


그러나 회사 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들이 많았다. 기획을 하고 제안을 하고 영업을 하고 홍보를 하는 일까지. 지난 3년 간 대기업에서 굴렀던 짬밥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 글 쓰는 일이면서 기업을 브랜딩하는 일이라면, 지금부터는 여러 지자체의 일을 직접 따서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나는 기획안과 제안서를 여러 회사와 지자체에 보내기 시작했고, 답이 없으면 또 다른 지역에 메일을 보냈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면서 골이 터지기를 바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그때 내가 깨달은 게 한 가지 있었으니, 바로 맨땅에 헤딩하더라도 백 번, 천 번 하다 보면 한 골 정도는 얻어걸린다는 것이었다.     


또 일단 한 골이 얻어걸리면, 그 한 골에 이어 두 골, 세 골까지 얻어걸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세 골이 터지면, 그 세 골을 함께 넣었던 업체나 지자체의 담당자들이 이직을 하거나 부서를 옮기면서 아홉 골을 어시스트해주고, 그 아홉 골을 넣으면 다음부터는 수시로 골을 넣을 기회가 찾아온다는 점이었다.    

   

첫 한두 해는 배를 곯았지만 3년째 되는 해부터는 원고 작업이 안정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5년째 되는 해부터는 프리랜서 수준이 아닌, 지역의 스토리텔링을 총괄하는 프로젝트 단위의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자연스레 사업자등록을 하였고, 회사 이름도 '이야기하다'라고 지었다.     


한 달에 약 10만 자, 한 해에 약 100만 자씩을, 프리랜서로 독립한 근 10년 간 거의 매해 써왔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내 이름으로 낸 시집, 소설, 에세이, 웹소설 등의 책들과, 지자체 명의로 낸 지역 스토리 책자, 그리고 이름을 숨기고 낸 수많은 인사들의 책들까지, 족히 70여 권은 넘을 것이었다.     


어느새 나는 '이야기를 파는 사람'이 되어있었고, 내가 만들어 파는 이야기는 나름대로 잘 팔렸다. 비록 회사 생활 3년, 프리랜서 생활 10년 간 글을 쓰면서 거북목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배 나온 거북이'가 되어버렸지만 그 덕분에 전세금 외에도 수도권에 대출 없이 집 한 채 분양받을 정도의 저축까지 해둘 수 있었다. 

    

거기에 별도로 웹소설을 세 질째 연재하면서 들어오는 고료도 상당했고, 칼럼이나 강연으로 들어오는 수입도 쏠쏠했다.     


“뭐 직장에 얽메일 필요도 없고, 현금흐름도 일정한데 그냥 확 서울을 떠나 어디 먼데 갈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호기롭게 던진 말에 아내의 눈이 반짝였다.     


“그럴까?”     


우리는 하던 일을 멈추고, 정말 뜬금없이 과연 조기 은퇴하려면 얼마가 있어야 할지를 따져보기 시작했다. 


비록 이제 직장인은 아니지만, 서울을 떠난다는 것은 어쨌든 수도권을 중심으로 촘촘하게 엮인 '업무 공동체'에서도 훌쩍 거리를 둔다는 의미였기에 아무래도 지금 하는 일들의 상당수를 멈추어야 했다. 

      

“일단 계산기부터 두드려보자.”     


나와 아내는 현 재정 상태와 파이프라인을 바탕으로 정량적‧정성적 관점에서 조기 은퇴의 가능성을 짚어보기로 했다.      


이내 우리 둘은 이마를 맞대고 앉아 계산기를 두드렸다.   


      



각주 : 시집 <내 속에 숨어 사는 것들> 이하, 2012 실천문학사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정말로 세상에 제대로 손 내밀지 못하고 내 속에 영영 숨어 살게 된 시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러나 너희는 영원히 내 맘속에서 별처럼 빛날 것이라는 말도. 하… 이런 말조차도 이리 진부하니, 시는 오죽하랴? 서귀포에 온 지금은 ‘별’을 ‘소라게’라고 바꿔서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아들도 직접 만져본 것이니까.


"안녕, 내 속에 숨어 사는 소라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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