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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 Sep 21. 2022

#1 마흔넷, 조기 은퇴 후 제주로 왔습니다.

대기업 3년, 프리랜서 10년, 지금부터는 바다거북이

전세금 2억, 올려줄 수 있어요?


2022년 3월 1일, 삼일절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며칠째 밤을 새워가며 글을 쓰고 있었다. 마감을 앞둔 칼럼과 기사, 인쇄소에 넘겨야 할 지역 스토리 책자 원고, 새롭게 연재하게 될 웹소설의 기획안까지, 하루에 쓰는 글자 수만 족히 1만 자가 넘었다.


그날도 나는 마감에 쫓기며 작업실에서 원고와 씨름하고 있었는데, 집주인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아내와 나, 그리고 일곱 살 난 아들은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에서 벌써 4년째 전세로 살고 있었다. 지난번 2년째 되던 해에 전세 계약을 연장할 때는 집주인과 전화로 가볍게 합의를 봤기에, 막상 직접 만나자는 전화가 오니 '올 것이 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잠시 쓰던 글을 멈추고, 집주인이 무슨 말을 할지를 생각해보았다. 지난 2년 간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기 때문에 집주인이 어떻게 나올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어머니랑 직접 들어가서 살려고요."


주말에 자신이 사는 단지의 작은 도서관으로 우리를 부른 집주인은, 믹스 커피와 티백 녹차를 건네며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가족의 사는 모습을 얼추 들여다보니, 그 사이 집값만큼이나 폭등한 전세금을 맞춰주지 못할 거라고 판단했는지 아예 들어와 살겠으니 나가라고 선언한 것이었다.


만에 하나 우리가 임대차법을 들먹이며 지금 전세가의 5%만 올려주고 계속 살겠다고 주장할까 봐, 이래저래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나는 일단 알겠다고 답한 뒤에, 헤어질 때쯤 슬그머니 이렇게 물었다.


"만약 이 집을 내놓는다면 얼마에 내놓을 생각이세요?"


순진한 젊은 부부가 알겠다고 답하자 정말 순순히 나갈 거라고 생각했는지, 집주인은 그제야 씩 웃으며 이렇게 답하였다.


"전세금 5억 아니면, 지금처럼 보증금 3억에 월세 80만 원을 더 받을까 해요."


그 말인즉 직접 들어와 살겠다는 말은 핑계고, 일단 우리를 내보내고 세를 높여서 부동산에 내놓겠다는 소리였다. 너무도 스스럼없이 속을 드러내자, 우리 부부는 잠시 황당한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는 엄연히 임대차법에 위배되는 사안이었기에 얼마든지 문제 삼을 수 있었으나, 우리는 일단 한 발 물러서기로 했다. 그리고 우선 집으로 돌아와 우리의 현 상황, 무엇보다 재정 상태나 직업 문제, 그리고 아이의 학교 문제 등을 따져보고 다음 시나리오를 짜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는 머지않아 더 큰 고민에 봉착했다.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은, 단순히 집이나 이사의 문제이기 전에, 세상살이에 대한 가치관과 그에 따른 삶의 방식에 대한 문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부모의 슬하에 있을 때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였는데, 그것을 결혼하고 7년이 되어서야, 그것도 살던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서야 깨닫게 된 셈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심은 깊어졌다. 마치 재미있게 보던 영화에서 반전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진 관객처럼, 우리는 지금까지의 삶을 다시 돌려보며 혹여 빠뜨린 퍼즐이 없는지를 짚어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필름을 되돌려보면 되돌려볼수록 나는 점점 미궁에 빠졌다. 왜냐하면 지금껏 그저 남들이 사는 모습을 좇아서 살아왔을 뿐, 남들처럼 살기 위해 아등바등 달려왔을 뿐, 한 번도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게 좋은지를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제야 우리는 잠시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서로에게 진중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앞으로 우리, 어떻게 살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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