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의 향수병

세계는 나의 놀이터

by 손예림

가장 친했던 친구가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초등학생이었던 우리는 핸드폰이 없었고, 시차에 대한 개념도 없어서 서로의 집 전화기를 밤낮없이 울리게 했다. 새벽에 걸려오는 전화에도 서로를 반겼고, 동시에 자고 있는 애꿎은 가족들을 괴롭혔다. 원래도 멀게 느껴지던 외국이었는데, 어린 나에게 외국은 한 번 가면 다시는 못 만나게 되는 감당하기 어려운 곳이 되었다.


그 무렵 부모님 손을 잡고 영어마을에 놀러 갔다. 친구와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곳이 참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외국이어서 좋았다. 미국에서 살 수 없으니 영어마을에서라도 살고 싶었다. 그해 겨울, 부모님을 졸라 방학 프로그램에 신청하고 2주 동안 영어마을에 살게 되었다. 그런데 부모님 품 안에서만 살아왔던지라, 오랜 기간 집을 떠나고 나니 전에는 마주한 적 없었던 이상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아마 향수병이었던 것 같다. 그때 처음으로 어렴풋하게 향수병을 앓았다. 사람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달라진다고, 내 마음은 변덕 부리는 데에 느긋함이 없었다. 일주일쯤 지났던가. 집에 전화를 걸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울며불며 떼를 썼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해외여행 인솔자라는 직업과는 어울리지 않게 유난히 집을 못 떠나던 어린아이였다.

태어난 곳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동네에 사는 친구들, 그 친구의 친구들을 새로 사귀어가며 자라왔다. 고등학생이 되니 행동반경을 넓히고 싶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온 낯선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고, 나만큼이나 그들도 낯설어할 법한 환경에서 지내고 싶었다. 친구들이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를 갈 때, 나는 타 지역에 있는 전원 기숙형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경기도 전 지역의 학생들이 모인다는 점이 매력 있었다. 하지만 호기로웠던 결정과는 달리 현실의 나는 아직 그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마음이 생각을 바짝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집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이 코끝을 자주 찡하게 했고, 나는 그 향을 끝내 참아내지 못했다. 결국 1학년을 채 마치기도 전에 또다시 집에 전화를 걸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토로했다. 고등학생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나는 부모 곁을 떠나기 무서워하고 있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하던가. 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지어버리면 인생을 무슨 재미로 살까. 나는 부모의 품을 벗어나 보려 끊임없이 시도와 실패를 반복했다. 새로운 선택지가 찾아오면 주저하지 않았다. 그게 변덕으로 보일지라도. 변덕이 기승을 부리던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어느 날. 나는 해외여행 인솔자가 되었다. 하지만 인솔자는 집만 떠나는 게 아니라 한국을 떠나 낯선 대륙에 다녀오는 게 주 업무인 직업이다. 성인씩이나 되었으니 집에 가고 싶다고 울 수는 없었다. 달라져야 했고 그러려면 향수병을 이겨내야 했다. 마음속에 자리 잡은 향수병을 치워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면 익숙한 향으로 채워보는 건 어떨까 싶었다. 그리움에 눌려 향수병에 잠기기 전에 낯익은 향을 뿌려보는 거다. 이 방법은 꽤나 잘 통했고 다행히 22일 출장에도 끄떡없었다.

원래 나는 향수를 잘 쓰지 않았다. 내 몸에서 인위적인 향이 나는 게 어쩐지 자주 의식되었기 때문이다. 좀처럼 손을 잘 대지 않았지만, 간혹 정말 좋아하는 향수를 만나면 잠들기 전에 침구류에 뿌리며 만족해하는 정도였다. 그런 부담스러웠던 존재가 향수병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주는 치유제가 되었다. 출장 중 한국을 향한 향수가 짙어져 간다 깊으면 익숙한 향을 맡으며 낯선 타국의 향을 몰아냈다. 향이 다 날아가버릴 땐 한국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함께 사라져 버리기를 바라며... 집 떠나기를 무서워했던 어린아이는 자라나서 감당 가능해진 외국이 훨씬 많아졌다. 심지어 세계를 놀이터처럼 돌아다니게 되었다. 전 세계 모든 향에 익숙해지는 어른으로 더 자라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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