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의 겨루기(上)

by 손예림

인솔자 일을 쉰 지 어언 1년이 넘어가는 지금.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의 사건이 있다. 남미 출장에서의 일인데, 이 사건에는 두 남자가 등장한다.

착하고 말 잘 들었던 학생보다 말썽꾸러기였던 학생이 기억 남는 법. 학창 시절 나는 둘 중 전자에 해당하는 모범생이었던지라 이런 세상에 퍽 서운다. 받침하는 증거의 일부 되어 이 사실을 실제로 체감한 언젠가부터는 보통의 삶을 바라지 않게 됐다. 겪어본 사람으로서, 나는 나를 괴롭혔던 손님보다 그렇지 않았던 손님을 기억 속에 더 오래 붙잡아두려고 애쓰는 편이다. 나의 세계에서 지켜지고 있는 나름의 권선징악 규칙이랄까. 하지만 이런 의도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두 남자는 질긴 존재감을 뽐내며 기억 속에서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여행에서 먹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 그 중요한 행위를 매끄럽게 진행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식사 자리 배정'이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다 큰 어른에게 무슨 자리까지 정해주냐는 볼멘소리를 내는 손님들도 더러 계신다.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치만 다 이유가 있었다. 패키지여행 상품이 기획되는 데에는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얽혀있다. 호텔, 레스토랑, 버스 등 수배해야 하는 업체도 많고, 현지 랜드사와의 협력 또한 중요하다. 뭐 이런저런 사정이 있겠지만, 모르겠고, 일단 나에게는 당장 손님들이 식사를 해야 한다는 게 더 중요하다. 뱃속 알람시계가 그들의 신경을 건드리기 전에 머릿속에 펼쳐진 식당 좌석 배치표를 완성시켜야 한다. 테이블 별 의자에 가상의 이름표를 부착해야 한다. 빨리도 아닌 빨리빨리여야 하는 한국인들이라서 식당 입장과 동시에 엉덩이 붙일 자리를 안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식당 좌석이 어떤 식으로 비치되어 있는지 알기 위해 먼저 지난날 출장 기억을 더듬어본다. 기억에 의존해 식당 구조와 테이블 형태를 빠르게 상기한다. 여의치 않으면 인터넷 검색의 도움을 받는다. 이때 제일 많이 활용하는 건 구글맵. 전 세계인들이 사용하는 구글맵은 여러 이유에서 인솔자 필수 어플이다. 지도에 등록된 사진과 리뷰를 참고하다 보면 이미 여러 번 레스토랑에 들락날락했던 단골손님이 된 기분이 든다. 생전 가본 적 없는 곳이지만 오랜만인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로 폭풍 검색을 하면서 철저히 준비한 초창기 시절도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 우린 일반 손님이 아닌 패키지이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들어가서 앉고 싶은 자리에 앉을 수가 없고, 이용 시간도 제한되어 있으니 말이다. 계약된 테이블과 의자 개수까지 정해져 있다 보니, 손님 중 어느 한 명도 방석 뺏기 게임에서 지게 해서는 안된다. 일행끼리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만 같은 관광지라도 날이면 날마다 같은 식당을 가는 게 아니며, 운 좋게 같은 식당을 가더라도 상황이 달라 매번 변수의 연속이다. 식당에 대한 사전 정보가 취합되면 손님 리스트와 의자 개수를 두고 정교한 셈의 원리를 적용하기 시작한다.

여행마다 손님 인원이 다르고, 모두가 짝수로만 놀러 오는 게 아니라서 경우의 수는 무한대다. 그렇기에 매번 업무 스킬이 업데이트됐다. 특히 홀수로 온 손님이 있을 때 더 높은 능력치가 요구되는데, 혼자 온 손님, 홀수로 이뤄진 단체 손님은 늘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유형이다. 좌석 배치는 이런 식으로 하게 된다. 예를 들면, 4인 테이블인 경우에는 3명 팀과 혼자 온 손님을 한 테이블에 몰아서 앉히는 식이다. 만약 5명 팀이 있다면 의자를 하나 빌려다가 앉히는 게 제일 베스트. 만약 의자를 끌어올 수 없다면 5명 중 1명은 다른 테이블로 갈 수밖에 없는 난감한 상황이 펼쳐진다. 하지만 일행들과 떨어져 혼자 다른 테이블에 있는 게 멋쩍을 수 있으므로 5명을 3명과 2명으로 쪼개는 센스를 발휘할 수도 있다. 이렇게 식당 좌석 배치가 완성되고 나면 마치 테트리스 게임에서 블록들이 빈틈없이 채웠을 때와 같은 쾌감이 든다.

유럽 패키지에는 가족 손님이 많고, 혼자 오는 젊은 손님도 많은 편이다. 어떻게 홀수 팀들을 합쳐 짝수로 만들지에 대해 고심할 때면, 유럽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당의 첨탑만큼이나 뾰족하리만치 예민해지곤 했다. 셈에 능숙하지도 않고 잔머리도 없는지라 인솔자의 수많은 업무 중에서도 이 작업이 가장 골칫거리였다. 한편 남미 패키지는 가격대가 높아서 그런지 대체로 연령대가 높았다. 그리고 부부 단위로 오는 손님들이 많아 유럽 패키지와는 다르게 홀수의 늪에 빠질 일이 드물었다. 따로 식사 자리를 정해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식사 전부터 식욕을 잃는 일이 적었다. 그렇게 여느 날과 다름없이 순조롭게 식사를 시작했던 남미 출장, 볼리비아에서의 점심이었다.


그날은 더 여유로운 식사 시간이었다. 뷔페였고 4인 테이블로만 예약된 레스토랑이어서 크게 신경 쓸 없었다. 테이블 구역만 정해드리고 자리는 자유롭게 앉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손님들은 전부 부부 단위였고 마음에 맞는 부부끼리 앉아 드시길 벌써 며칠이 지난 후였다. 제 역할을 다 끝내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던 중, 갑자기 어디선가 우당탕- 강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말리는 듯한 가쁜 말소리가 오가더니 큰 고함소리까지 들렸다. 곧이어 손님 한 분이 내게 오셨고, "인솔자님이 말려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말씀하셨다. 뭔가 잘못돼가고 있었다.


다음 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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